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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미역국은 콩나물국과 함께 맛내기 까다로운 국 중 하나다. 소고기나 조개가 들어간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늘 갖추고 있지는 않으니까. 들깨가루를 넣어보기도 하고, 말린 홍합을 넣고 푹 끓여도 보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미역국은 내겐 늘 어려운 미션이었다.

몇 해 전, 요리사들이 요리로 경쟁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미역국에 액젓을 넣는 모습을 보고는 문화충격을 받았다. 액젓은 김치 담글 때나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국에 넣다니. 아주 끔찍한 비린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심사위원은 “액젓을 적당히 사용해 훌륭한 맛이 난다”고 했다. 오! 그렇단 말이지. 한식 요리전문가들의 요리법이니 틀리지 않으리란 믿음으로, 나도 미역국에 액젓을 넣어보기로 맘을 먹었다.

국간장과 소금으로 미역국 간을 해오던 것을, 소금 대신 까나리액젓을 넣었다. 조심스레 맛을 보니 정말 비리지 않고 해산물 맛 조미료를 넣은 듯 감칠맛이 나면서도 담백했다. 이렇게 훌륭한 액젓을 나는 왜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생각했을까. 아마 오래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액젓 마시기를 벌칙으로 정한 뒤부터인거 같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구역질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에 덩달아 나도 인상을 쓰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액젓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동안 오해한 걸 만회라도 하듯, 액젓의 쓸모를 발견한 그날부터 나는 음식을 할 때마다 액젓을 조금씩 넣어보기 시작했다.

액젓은 대체로 끓이거나 볶는 요리에 넣으면 맛이 좋았다. 국이나 찌개 등 국물 요리의 맛을 돋우었고, 계란찜과도 잘 어울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 요리에까지 어울릴 줄은 몰랐다.

카레가 몹시 먹고 싶은 날이었다. 집엔 감자와 양파만 있을 뿐 당근이나 버섯, 파프리카처럼 맛을 더해줄 재료가 없었다. 그 흔한 참치캔도 하나 없었다. 아주 오래전 먹었던 양파와 감자만 넣은 카레의 밍밍한 맛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게에 다녀오자니 몹시 귀찮았다. 나는 액젓을 떠올렸다. 언젠가 물오징어를 넣고 끓인 카레가 무척이나 맛있었는데, 액젓도 같은 바다 생물로 만들었으니 얼추 비슷한 맛이 나지 않을까, 내 맘대로 상상해보았다.

카레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양파다. 나는 주먹만한 양파를 네 개쯤 다져 기름 두른 팬에 갈색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래 천천히 볶았다. 그러면 양파의 단맛이 극대화된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맛을 위해선 포기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재료가 양파와 감자 둘뿐이니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갈색으로 냄비에 눌어붙기 직전까지 볶은 양파에 감자를 넣고 볶다가 물을 넉넉히 넣었다. 감자가 익은 뒤 카레 가루를 넣고 액젓을 반 숟가락 정도 넣었다. 미역국에 액젓을 넣었을 때보다 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맛을 봤다. 음, 역시나. 카레와 액젓은 훌륭하게 어울렸다. 양파와 감자만으로도 부족함 없는 맛이 나왔으니 이만하면 대성공!

액젓은 볶음밥과도 잘 어울렸다. 다진 대파를 기름에 볶다가 계란을 볶고, 건새우를 넣고, 밥을 볶았다. 대파와 계란의 수분이 어느 정도 날아가고 밥이 뜨겁게 볶아졌을 때 액젓을 반 숟가락 정도 팬의 가장자리에 흘려 넣는다. 액젓이 ‘치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끓으면 나머지 재료들과 섞는다. 짭조름한 맛이 강한 동남아식 볶음밥 맛이 난다. 입맛이 없을 때 자주 해먹는 요리다. 오일 파스타에도, 나물 무침에도, 심지어 라면에 실수로 물을 많이 넣어 싱거울 때 액젓이 들어가면 맛이 살아난다.

액젓을 사용할 땐 딱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많이 넣지 않는 것이다. 소금을 많이 넣었을 땐 물이나 다른 재료를 추가로 넣어 어느 정도 간을 약하게 만들 수 있지만, 액젓을 실수로 많이 넣었다간 비린 향 때문에 음식을 망쳐버릴 수 있다. 처음엔 찻숟가락으로 하나씩 넣고 맛을 보면서 액젓의 맛과 향을 익혀나가면 된다. 세상의 많은 것이 그렇듯, 액젓은 상상처럼 위험하거나 끔찍한 재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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