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내가 아는 인천의 매력,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애경사 건물 철거 안타까워, 근현대 건축물 기초조사 시급”
“앞으로 인천 산업화 시기와 인천 섬 문화역사 조명할 계획”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인천시립박물관은 국내 최초 공립박물관으로 1946년에 개관했다. 처음에는 중구 자유공원에 위치한 제물포구락부에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다가 전쟁 후 바로 복원했고, 1990년에 지금의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으로 옮겼다.

인천은 선사 시대부터 산업화 시대까지 이어오면서 다양한 문화가 용광로에 담긴 것처럼 뜨겁게 공존하는 도시로 발달했다. 특히 인천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때는 조선의 개항과 일제강점기다. 인천은 역사적으로 경제사와 전쟁사, 이민사를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시다. 시립박물관은 이러한 인천의 역사를 발굴해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그 가치를 올바르게 해석해 미래 세대에 전해줄 의무가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에 최근 유동현 관장이 부임했다. 그 이전에 유 관장은 인천시정 홍보물인 ‘굿모닝 인천’ 발행을 20여 년간 맡았다. 인천이 고향인 유 관장은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인천의 근현대 역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인천만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노력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 15일 시립박물관에서 유동현 관장을 만나 인천과 박물관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 관장.

“인천의 매력 늦게 알게 돼”

유 관장은 인천 동구 송현동 출신이다. 부모가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피란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직장을 얻어 서른 중반까지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는데 사회생활하면서 통학과 통근을 하다 보니 주된 생활권이 서울이었다. 그러다보니 서울에 관심이 있었다. 인천에 관심이 많거나 자부심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1997년 인천시 홍보물을 만들면서 눈을 새로 떴다.”

유 관장은 1997년 최기선 인천시장 시절에 시 홍보직 공채로 시에 들어와 간행물 ‘내 고장 인천’에 시정 홍보 내용만이 아니라 인천이 가진 가치와 역사적인 장소와 사람들을 조명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시에 들어와 한 달간 상ㆍ하권으로 된 두꺼운 ‘인천시사’를 연이어 두 번 읽었다. 인천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인천에서 자랐지만 새삼 느끼는 인천의 매력을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볼만한 곳과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곳 등을 구석구석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굿모닝 인천’은 처음에 2만 권을 발행하다가 12만 권까지도 발행한 적 있다. 유 관장은 “인천의 원도심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다 신도시가 개발되고 강화도가 인천시로 편입돼 시민들에게 보여줄 것이 많아져 정말 신나게 일했다”고 말했다.

시정 홍보책자를 발행하는 것과 박물관 일은 서로 많이 다르지 않을까?

그는 “박물관 관장으로 올 때 평소 하던 책을 내는 일과 박물관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박물관은 학술연구 분야도 있지만, 학예사들과 협력하고 조사연구를 거쳐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로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잘 보존하는 것, 단순히 말하면 박물관이 그런 곳인데, 앞으로는 인천의 특색을 잘 살릴 수 있는 분야에 더 집중할 예정이다”라며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 후 급속한 산업 발달 시기가 인천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관장은 이러한 박물관의 역할이 낯설지 않다고 했다. 전문행정 분야도 있지만, 배울 것은 배우고 다른 도시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면서 전시 아이디어도 얻고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최근에 신흥초등학교에 있던 ‘제물포해전 러시아함 포탄’을 박물관 앞마당으로 가져왔다.

“근현대 건축물 보존 위해 기초조사 나서야”

유 관장은 최근 논란이 된 인천 동구 ‘신일철공소’를 얘기했다. 2017년에 애경사 건물이 철거돼 상당수 시민이 충격을 받았다. 신일철공소가 제2의 애경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다.

“신일철공소는 만석부두 등 인천의 어항 연구에 중요한 공간이다. 동구는 이른바 ‘달동네’ 문화도 있지만, 항구와 해양 문화도 있다. 만석부두ㆍ화수부두 등과 주변 공간은 인천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잘 보존할 필요가 있다. 철공소가 오래돼 낡고 아이들에게 유해하다고 하는데, 건축물을 안전하게 보수하고 활용하면 오히려 아이들 교육ㆍ체험 공간이 될 수 있다. 주민들에게는 동네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도 될 수 있다.”

유 관장은 화수부두뿐만 아니라 동구가 가지고 있는 인천의 전형적인 모습에 대해 설명했다. 애경사 철거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근현대 건축물 보존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구 개항장은 많은 연구와 이를 활용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고 미래세대에 전하려면 가장 먼저 기초조사를 해야 한다. 슬로건처럼 말하는 것인데, ‘홍예문을 넘어가자. 인천의 진짜 모습은 그곳에 있다’라고 자주 말한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동구로 밀려난 사람들과 한국전쟁 피란민, 그리고 산업화 시기 공장과 일자리를 찾아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의 삶이 동구에 있다.”

유 관장은 할 수만 있다면 시의 협조와 박물관 전문 인력을 활용해 앞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는 인천의 근현대 건축물과 유물의 가치를 조사하는 게 시급하다고 했다.

“물론 조합을 구성해 재건축하는 것 등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사라지는 유산에 대한 최소한의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기억하고자하는 노력이 있어야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신도시 등 인프라에 집중하던 시선을 돌려 원도심 재생과 역사적 조명을 해야 할 때다.”

인천시립박물관은 특별전시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은 인천의 소중한 민속이자 역사”

시립박물관은 현재 의미 있는 전시를 하고 있다.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광복 후 대한민국을 살찌우는 데 일조한 인천 공업의 역사와 산업화의 주역으로 희망을 노래하며 삶을 이어간 노동자들의 발자취를 조명한다.

“어릴 때 동구 송현동에서 자랐는데, 집 앞이 공장지대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면 잿빛으로 구름과 꽃, 동물 모양들이 보였다.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 바로 내 고향이었다.”

이 전시는 ‘2019 인천 민속 문화의 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으로 마련했다. 2017년 학술조사를 토대로 서울에서 먼저 전시하고 인천으로 옮겨왔다. 유 관장은 이 전시를 인천으로 옮겨올 때 유물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원했다.

“서울에서 전시한 유물들을 그냥 전시할 게 아니라, 재해석해 전시를 기획하자고 했다. 산업화 시기 인천은 어느 하나 최초이지 않은 게 없다. 물론 개항기에도 그랬지만. 그리고 노동자들의 애환이 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또, 시립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가 있는데, 그 이후는 없다. 산업화 시기와 그 이후 현재까지도 박물관이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상설 전시관을 리모델링할 때 일제강점기 이후 유물을 수집해 전시하고 싶다. 이번 특별전시도 상설전시로 이어갈 수 있게 하겠다.”

시립박물관의 두 가지 시선, 산업화 시기와 인천 섬

인천뮤지엄파크가 2022년 착공해 2023년 준공될 예정이다. 현재 시에서 예산을 조정하고 있고, 박물관 건립비용 국비 지원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을 앞두고 있다.

유 관장은 뮤지엄파크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뮤지엄파크는 인천이 생긴 이래 가장 큰 문화공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기 옥련동 공간보다 전시실만 해도 4배 이상 크다. 수장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만큼 시립박물관으로서는 큰 기회가 찾아온 것이고 충분히 준비돼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집단이나 단체에 치우치지 않게, 후세들이 사용할 공간인데 잘 만들었으면 한다.”

인천의 경제사와 전쟁사, 그리고 이민사는 특별하다. 유 관장은 이밖에 앞으로 박물관이 품어야할 가치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산업화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인천의 아름다운 섬 문화역사’다.

“산업화 시기 건축물과 같은 유산과 당시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고, 다음으로 눈여겨봐야할 것은 인천의 섬이다. 인천이 섬을 강조하는데, 문제는 기초조사와 역사 연구, 자료 수집 등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섬 문화역사 관련 자료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민간 영역에서 수년 전부터 섬을 다니면서 연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공공 영역에서 섬을 조사ㆍ연구하고 유ㆍ무형 사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할 필요가 있다.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로 지금 해야 하고, 관련 작업을 할 수 있게 시에도 지속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유 관장은 또 한 가지, 이주의 역사 중에서도 황해도 피란민의 기억 기록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 황해도 피란민이 인천으로 많이 내려왔다. 피란 과정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운명하신 분도 많다. 이 분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유물을 수집해 후대에 남겨야한다.”

인천의 역사를 말하는 유 관장의 눈은 빛났다. 인천은 한마디로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인천은 ‘몽(夢)땅’이다”라고 말했다. ‘전부’이자 ‘꿈과 희망’이라는 중의적 표현에서, 유 관장이 바라보는 인천이 시립박물관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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