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지난해 한 학기 동안 서울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소설 속 여성의 모습을 분석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내용이라 관심이 갔다. 1주일에 한 번씩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나름 성실히 오간 건, 수업이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알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안 간다고 해서 누가 뭐랄 것 없는 강의에 열성을 다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강의실 근처에 맛집으로 소문난 일본라면 가게가 있어, 수업 가기 전 그곳에서 라면을 한 그릇씩 먹었던 거다.

처음엔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 한번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문 열기 30분 전에 줄까지 서서 맛본 라면은, 이 세상맛이 아니었다. 특히 라면에 다진 고기와 채 썬 양파, 쪽파 정도를 고명으로 올리고 양념장에 비벼 먹는 ‘아부라소바’는, 이 맛을 모르고 돌아가신 울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맛이 기가 막혔다.

매주 같은 걸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신비로운 맛!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벌써 다음 주 라면 맛을 상상했다. 도대체 라면 한 그릇이 뭐라고 이렇게 나를 들뜨게 했을까.

‘라멘이 과학이라면(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부키 펴냄)’에는 내가 라면에 빠질 수 없었던 ‘과학적’ 이유들이 조목조목 나온다. 우리나라 음식이 화끈한 매운맛으로 입맛을 붙든다면, 일본 라면은 감칠맛에 승부를 건다. 대표적인 감칠맛 성분은 글루탐산이다. 글루탐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일종으로 다시마에 많이 들어 있다. 인간이 가장 쉽게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물질 중 하나여서 세상의 모든 조미료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감칠맛 성분은 다른 맛 성분에 비해 혀의 미각 세포에 달라붙어 있는 시간이 길다. 음식을 먹을 때 나오는 침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묽고 줄줄 흐르는 장액성 침과 끈적끈적한 점액성 침이다. 레몬처럼 신 음식을 먹었을 땐 장액성 침이 나오지만, 감칠맛을 느낄 땐 점액성 침이 분비된다. 신맛이나 감칠맛이나 침이 다량 나오는 건 비슷하지만, 지속성엔 차이가 있다. 신 음식을 먹었을 땐 침 분비량이 급격히 올라갔다가 곧 급속도로 줄고 15분 후 입안이 원상태로 돌아오는 반면, 감칠맛이 나는 음식은 침이 많이 나오는 시간이 더 길고 입안이 원 상태로 돌아오는 데 22분 걸린다. 감칠맛이 혀에 머무는 시간이 긴 만큼 침이 많이 나오고, 그래서 구강건조증이나 미각 장애를 개선할 수도 있다.

감칠맛을 많이 함유한 재료는 다시마다. 내가 먹은 라면엔 채 썬 다시마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부재료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큰 역할을 할 줄이야.

뭐든 한 가지론 부족하다. 다시마만으로 그 맛을 낼 수 있다면 어느 라면집이나 맛집이 될 수 있을 거다. 감칠맛을 폭발시키는 성분이 또 있었으니, 바로 ‘이노신산’이다. 이노신산은 핵산의 일종으로 고기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이다. 이노신산과 글루탐산이 만나면 감칠맛이 7~8배나 강해진다. 이 마법 같은 이노신산이 많이 들어 있는 재료는 바로 가쓰오부시. 일본 라면의 육수를 내는 데 빠지지 않는다.

책에는 이밖에도 술을 마신 뒤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와 온도에 따라서 라면 맛이 달라지는 원리, 면발의 쫄깃함과 탄력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등, 맛있는 라면을 구성하는 과학적 비밀을 모조리 공개해놓았다. 이책 한 권을 제대로 읽으면 어쩐지 근사한 라면집을 차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나는 그냥 라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만족한다.

‘라면 먹으러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글을 쓰다 보니 자꾸 더 먹고 싶어진다. 왕복 3시간을 들일 충분한 가치가 있는 맛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 맛을 보러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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