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10월 9일 한글날. 한글날은 한글이라는 문자가 만들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인 동시에 그 문자의 창제자인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 비율이 99%. 현재 한국의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것이 반나절만 공부해도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든 세종대왕의 공이라는 것을 거의 모든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문해력의 문제로 가면 조금 달라진다. 2002년 발표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조사 결과에서 한국인의 실질 문해율은 22개 나라 중 20위였고, 2014년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 원인으로 독서율 급감을 지적했다. 실제로 2017년 문화부가 발표한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59.9%에 불과하다. 책을 읽는 사람 가운데서도 매일 혹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24.5%에 불과하다. 이는 국민 100명 중 40명은 1년 내내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며, 책을 읽는 60명 중에서도 주 1회 이상 읽는 사람은 15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연령대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독서로부터 더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초등학생 시절에 정점을 찍은 후, 나이가 들수록 현저하게 떨어진다. 학교와 집, 하다못해 사교육에서조차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우리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의아하다.

읽기와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쓰는 능력’이다. 언어란 곧 의사소통의 도구다. 의사소통이란 타인의 말을 듣고, 읽고, 이해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능력, 즉 말하고 쓰는 능력을 포함한다. 문제는 디지털 매체로 변화하면서 글쓰기의 기본적 규범이라 할 수 있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의식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단문 위주의 SNS라는 매체의 특수성에 맞춰 어문 규범이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신문기사조차 비문이 범람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이쯤 되면 문해율 저하가 과연 읽는 사람만의 문제인가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더해 세대 간 디지털 정보 격차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시대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손에 들고 다니는 컴퓨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선전화기에 불과하다. 60대 이상의 실질적 문맹자 가운데 대부분은 디지털 문맹 문제를 함께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는 이러한 디지털매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디지털 문해력의 불평등은, 국민 모두 마땅히 누려야할 복지와 권리로부터 누군가가 소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 한글날의 의미는 단지 ‘한글’ 그 자체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훈민정음의 서문에 기록된 세종대왕의 뜻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어야 한다. 잘 알고 있듯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목적은 그 처음도 끝도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한글날이 추구해야할 가치 역시 한글이라는 문자와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사고로까지 나아가야한다. 한글날의 의의가 한글이라는 문자를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디지털 정보의 평등이라는 문제로까지 확산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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