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인천’ 10월 15일은 음력..."양력은 11월 17일"
인천시, “다른 기념일도 음력 그대로 인용… 문제없어”
한글날 등 기념일 대부분 양력 환산... "순 엉터리 해명”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인천시는 1993년부터 10월 15일을 시민의날로 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치르고 있다. 시가 10월 15일로 정한 것은 조선왕조 태종실록에 '태종 13년 10월 15일 인주(仁州)를 인천(仁川)으로' 바꾼 데서 비롯한다.

태종 13년(1413년) 10월 15일 자 기사를 보면, 태종이 좌정승 하륜(河崙)에게 완산부(完山府)를 전주(全州)로, 계림부(鷄林府)를 경주(慶州)로 고치자고 하니 하륜이 다른 지역도 고치자고 해서 각 고을의 이름을 고치게 된다.

당시 태종은 주(州) 자가 들어간 고을의 이름을 산(山) 자 또는 천(川) 자로 고쳤다. 인천, 울산, 과천, 제천, 옥천, 진천, 괴산, 금산, 서천, 익산, 양산, 합천 등이 모두 그때 생긴 이름이다.

사진 위부터 문학산 북쪽, 남쪽, 동쪽 전망대에서 각각 바라본 인천 풍경.

이렇게 현재 인천(仁川)이란 지명이 생기게 됐다. 인천 전의 이름은 인주(仁州)였다. 인천시는 이날을 기려 10월 15일을 ‘인천시민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역사 이해의 오류다. 태종 13년 10월 15일은 음력이다. 이는 마치 음력 8월 15일이 추석인데, 양력 8월 15일에 추석을 지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가 10월 15일로 정한 것은 1993년 인천시사편찬위원회가 태종 13년(1413년) 10월 15일에 인천이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됐다고 해서 정한 것인데, 명백한 오류에 해당한다.

인천과 사정이 비슷한 강원도 춘천시는 1413년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11월 8일’(음력 1413년 10월 15일을 양력으로 환산)을 시민의날로 정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1413년 음력 10월 15일을 1413년 11월 8일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월 8일’도 양력 환산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보식 전 영남대 교수의 ‘한국연력대전’에 따르면 율리우스역(歷)을 그레고리역(歷)으로 환산할 때 1400년대는 9일을, 1500년대에는 10일을 더해야 하는 것이다.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한보식 교수에 따르면 음력 1413년 10월 15일은 양력으로 11월 17일”이라며 “태종실록의 음력 10월 15일을 따르려면 양력 날짜로 환산해 바로 잡아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의미를 담아 다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천시는 음력을 양력으로 인용해도 문제없다고 했다. 시 관계자는 “조선왕조실록의 날짜는 모두 음력이다. 역사학자들도 음력인 것을 알고 있지만, 실록에 기재된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지 않고 바로 양력에 역사적인 날짜로 인용하고 있다”며 “인천시민의날을 정할 때도 이 사실을 알고 정한 것이라 문제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글날, 충무공탄신일, 신미양요 모두 양력 환산 기념일

그러나 시의 해명은 역사적 기념일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우선 훈민정음 창제일인 한글날만 해도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기념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일은 훈민정음 해례에 ‘1446년 9월 상한’으로 나온다. ‘9월 상한’은 상순(10일 주기 상순, 중순, 하순의 처음)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뜻하기에,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리고 있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 서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정인지가 썼다고 기록돼 있어 훈민정음, 곧 한글을 반포한 날이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는 일제 치하라 기념할 수 없었고, 1946년이 돼서야 10월 9일을 법정공휴일 한글날로 정해 거국적인 기념행사를 치렀다.

대표적인 기념일 중 하나인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도 정부는 양력으로 환산해 기념하고 있다. 충무공은 1545년 음력 3월 8일 태어났지만, 정부는 이를 양력으로 환산한 4월 28일을 탄신일로 정하고 매년 기념하고 있다.

정부는 음력 1545년 3월 8일을 기준으로 기념할 경우 매년 기념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양력 4월 28일로 환산해 정했고,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이 양력이 기념일로 지정돼 있다.

인천에서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도 마찬가지이다. 조선과 미국은 1882년 4월 6일 (음력) 조미수호통상을 체결했고, 인천시는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5월 22일을 체결일로 기념하고 있다.

인천의 기념일 중 광성보 전투(신미양요)도 기념일은 양력으로 지낸다. 광성보 전투는 1871년 음력 4월 24일이고, 양력으로 환산하면 6월 11일이다.

인천광역시사를 보면 양력으로 광성보 전투 날짜를 기술하고 있다. 인천시사에 “(1871년) 6월 10일 드디어 미군이 강화도 상륙작전을 전개하면서 격전 끝에 초지진을 점령하였고, 11일에는 덕진진까지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광성보 공략에 나섰다. 이때 어재연은 광성보에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하고 침공해오는 미군을 격퇴할 태세를 취했다.”

조우선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한글날 등 대부분의 기념일과 역사 사건은 옛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해 기념하거나, 기록하고 있다”며 “시의 해명은 순 엉터리 해명이다. 시의 해명은 과거 시사편찬위원회의 오류를 모면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편, 인천시민의날이 처음부터 10월 15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인천시는 1965년 6월 1일을 처음 시민의날로 정했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1974년 인천항 제2독(도크) 준공 다음 날인 5월 11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했다.

1981년에는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돼 인천직할시로 승격한 것을 기린다며 7월 1일로 다시 날짜를 변경했다. 그러다 여름철 우천 등으로 행사가 어렵다는 여론이 일자 1993년 태종실록을 근거로 10월 15일로 정했는데, 이는 역사의 오류로 드러났다. 역사적인 날짜를 바르게 인용하거나, 시민의날을 새로 정하는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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