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53> 알레포, 시타델

[인천투데이] 인간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길이 있다. 길은 점점 길게 뻗어나가 사람이 오가고 물건이 오가는 통로가 됐다. 인체의 혈관처럼 퍼진 길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그곳에는 인류의 흔적이 켜켜이 묻어있다. 이 흔적이 역사를 묶고 문명을 창조한다. 문명의 역사도 길에서 시작했으며, 또한 길이 있었기에 발전해왔다. 이러한 길은 누구나에게 관심거리다. 특히, 대동맥과도 같은 길을 차지하는 것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 것이다. 인류역사의 무수한 전쟁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길목 차지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황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실크로드는 최대의 금맥(金脈)이었다. 역사상 모든 제국은 실크로드를 차지했다. 제국 번영과 발전이 실크로드처럼 뻗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이 있을 수 없듯 실크로드 도시들도 영원히 번성할 수 없었다. 수많은 부침(浮沈) 속에서 생존의 길을 찾지 않으면 길은 곧 풀밭으로 변하고 새로운 길이 뚫리기 때문이다.

13세기에 세워진 중동 최대 규모의 알레포 시장.

팔미라가 로마제국에 대항한 것은 생존과 번영을 넘어 제국을 만들고 싶은 갈망이었다. 그 무모한 갈망이 팔미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팔미라의 멸망은 실크로드 대상(隊商)들에게 북쪽으로 길을 틀게 했다. 그리고 교통 요지인 알레포가 팔미라를 대신해 동서무역로를 연결하는 상업중심도시로 발전했다.

알레포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300만 명이 사는 ‘시리아의 진주’다. 알레포를 가려면 레바논과 시리아에 걸쳐 있는 안티레바논 산맥을 넘어야한다. 산맥을 넘으면 드넓은 평원지대가 펼쳐지는데,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알려진 베카계곡이다. 밀 수확을 끝낸 평원은 다른 경작을 위해 다시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데, 한눈에 보아도 비옥함이 넘쳐난다.

시리아 북쪽에 위치한 알레포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번성했다. 이는 비옥함을 바탕으로 지중해와 유프라테스강을 잇는 교통 요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알레포는 고대부터 외침(外侵)에 많이 시달렸다. 히타이트,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로마, 아랍, 몽골, 오스만튀르크 등 수많은 민족의 침입과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알레포는 요충지였기에 번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레포의 상징인 시타델.

당시 상업도시로 번성한 알레포의 흔적은 지금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알레포 성채부터 대사원에 이르는 거대한 시장(suq)이 그것이다. 알레포 시장은 13세기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세워진 중동에서 가장 긴 시장으로, 상점이 늘어선 골목 길이가 총 30㎞에 이른다. 알레포가 상업중심도시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에는 동서를 오가는 대상들의 하루 평균 낙타 수만 해도 3000여 마리에 달했다.

시장 안에는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 카라반싸라이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번성기 때에는 68개가 있었다. 당시 알레포 시장은 금ㆍ은ㆍ보석, 향수, 비누, 옷감, 향신료, 식료품 등 국내외의 모든 상품이 부분별로 특화돼있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도 냄새만 맡으며 장을 보러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알레포 시장의 거래규모는 당시 이집트 카이로 시장의 규모를 훨씬 능가했다. 카이로에서 한 달 상품 거래량이 알레포 시장에서는 하루 거래량에 불과했으니, 실로 중동 최대의 상업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 ‘알레포의 절름발이가 인도까지 간다’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최대의 상업도시 알레포를 오가는 상인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알레포가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다시 각광받은 때는 이 지역을 아랍이 차지한 7세기부터다. 그리고 10세기에는 예술과 과학, 종교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시타델의 해자(垓字) 위에 세우진 석교(石橋).
시타델의 화려한 내부 장식.

유서 깊은 도시가 그렇듯이 알레포도 신ㆍ구시가지로 구분된다. 구시가지는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우마이야 대사원과 성채, 대중목욕탕과 대상들 숙소 등의 건축물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알레포의 영화를 보여준다. 이중 알레포의 상징과도 같은 성채 시타델은 11~13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그 높이가 50여 m에 달한다. 알레포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한 시타델은 요충지인 알레포를 지키는 요새였다.

해자를 끼고 웅장하게 축성된 시타델은 입구가 오직 한 곳이어서 입구를 봉쇄하면 그야말로 난공불락이 된다. 그래서 이곳을 차지한 모든 민족과 국가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시타델을 증ㆍ개축해 사용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화려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인류가 도시를 만들고 수천 년 동안 하루도 폐허가 되지 않은 채 이어져오는 것은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도시를 아끼고 지켜온 수많은 사람의 혼이 면면이 배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시타델 내부 광장.
시타델에서 바라본 알레포. 지금은 폐허가 됐다.

하지만 이 모든 알레포의 영광도 2011년 시작한 시리아 내전으로 폐허가 됐다. 알레포의 시설을 복구하는 데에만 48조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건축물에 대한 산술적 계산일뿐이다. 실크로드 요충지로서 누린 번성과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값어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전쟁은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결실을 파괴한다. 인류가 건설한 문명을 인류의 손으로 파괴하는 모순의 역사를 오늘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난공불락의 시타델은 무사하겠지. 갑자기 시타델이 그리워진다.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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