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인천투데이] 얼마 전 처음 내원한 롤란딕 뇌전증 환자는 5세가량으로 수면 중 세 차례 반복적으로 경련했다. 뇌파 검사에서 롤란딕으로 추정되는 뇌파가 발견됐고, 담당 의사는 ‘증세는 심하지 않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단다. 만약 경련이 많이 불안하면 항경련제를 사용하되 약물 복용 여부를 부모가 결정할 것을 권유했단다.

항경련제 복용 여부 선택을 부모에게 넘긴 게 언뜻 무책임한 의사로 보일지 모르지만, 담당 의사의 조치는 매우 타당하다. 세 차례 경련만으로 항경련제를 처방하는 의료 관행이 잘못된 것이다.

항경련제에는 치료기능이 없다. 따라서 항경련제 복용 여부는 치료 가능성에 있지 않다. 경련으로 인한 위험이나 불편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투약하는 것이다. 즉, 경련 자체가 위험하기 보다는 경련으로 인한 사고 등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처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련 자체가 20분 이상 넘어가는 중첩증 양상만 보이지 않는다면 경련의 2차 위험성을 평가해봐야 한다.

간질성 경련이 없다면 제일 좋을 것이다. 간질성 경련이라도 수면 중에만 발생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면 중 경련은 침상에서 이뤄지기에 외적 사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 소아의 사례는 비록 뇌파 이상과 경련이 세 차례 있었지만 항경련제를 투약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성장기 어린이는 뇌 발달이 왕성하고 이때 항경련제 사용은 아이 성장과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또 다른 사례로 수면 중에만 경련하는 성인 뇌전증 환자가 있었다. 내가 직접 진찰했는데, 수면 중에만 1~2년에 한 번 대발작 경련을 하는 여성이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계속 됐다고 했으니, 10년 넘게 경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환자가 초기에 양방 치료를 받았지만 부작용을 걱정해 항경련제 복용을 중단하고 10년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상담하러 왔지만 환자는 치료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하는 이유를 물었다.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왜 치료받아야 하느냐고. 대답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한 뒤, 지금은 치료할 이유가 없으며 나중에 경련이 낮에 발생하면 치료하자고 했다.

항경련제를 복용한 임산부 아이들 IQ가 일반 아이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항경련제를 복용한 아이들 지능이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저하하는지 장기간 추적한 논문 보고는 없다. 즉 항경련제 위해성 정도를 충분하게 검토했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항경련제를 복용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중 누가 더 장기적으로 양질의 삶을 누리는가를 조사한 것도 없다. 오히려 항경련제를 복용한 아이들의 뇌파가 정상화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부정적 논문 보고도 있다. 즉, 항경련제 치료 효과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부작용 연구가 미약해 분명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 분명한 것은 항경련제 효과는 활동 중인 낮에 발생하는 경련으로 인한 사고 위험을 줄인다는 사실뿐이다. 그밖에 항경련제를 투약해야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정황을 무시한 채 항경련제가 대단한 치료제라도 되는 양 성장기 소아에게 남용되는 안타까운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사, 환자와 보호자 모두 각성이 필요하다.

※ 김문주 원장은 소아 뇌신경질환 치료의 선구자로서 국제학술지 E-CAM에 난치성 소아 신경질환 치료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뇌성마비 한방치료 연구에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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