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

[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작년 초였나 보다. 최근 뭘 했는지 하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엄마와 전화로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친구와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는 내 말에 엄마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가게가 어디에 있느냐, 뭘 먹었느냐, 맛은 어떠냐며 아주 자세히 물어보는 거다. 엄마는 면 종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끼니는 무조건 밥이었다.

동네 칼국수 맛집이나 남북 정상이 만나 먹은 평양냉면에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쌀국수에 대한 속사포 질문이 내겐 낯설 수밖에. “고기 육수에 얇은 쌀국수가 말아져 나오는데, 국물이 진하고 맛있어. 숙주도 있고, 고기도 좀 들었어.” 입맛을 다시고 침을꼴깍 삼키며 엄마가 말했다. “나도 한번 거기 가보고 싶다.”

며칠 후 엄마와 부평시장역 근처 쌀국수집에 갔다. 이곳은 내가 친구들과 즐겨 가는 곳으로, 지금까지 맛본 쌀국수 중 최고였다. 저렴한 프랜차이즈 식당에 비하면 값은 조금 더 나가지만 충분히 제 값어치를 한다. 만족감은 솔직히 그 이상이다.

쌀국수 두 그릇에 짜조도 하나 시켰다. 짜조는 돼지고기와 버섯, 숙주 등 채소 섞은 것을 라이스페이퍼에 말아 튀긴 것이다. 만두와 비슷하지만 파, 마늘 같은 양념 맛이 강하지 않다. 뜨겁고 바삭한 짜조를 새콤달콤한 소스에 찍어 먹으면 아주 맛있다. 아무래도 금방 소화되는 면 요리만으론 엄마 성에 차지않을 듯해 주문했다. 아, 엄마의 쌀국수엔 고수를 넣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마가 고수의 독특한 향을 좋아할지, 싫어할지 아직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뜨끈한 쌀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짜조도 금방 나왔다. 엄마는 인생 첫 쌀국수를 앞에 두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젓가락을 잡을지 숟가락을 잡을지 망설이면서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뭐 쌀국수 먹는 법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나는 미끌미끌한 쌀국수를 숙주와 함께 후루룩 먹었다. 엄마도 곧 쌀국수에 적응했다. 특히 짜조가 무척 맘에 든다고 했다.

“어쩜 이런 맛이 있을까? 소스가 달짝지근하면서 새콤하니 입맛을 쫙쫙 당기네.” 고수를 넣은 내 쌀국수를 맛보고는 말했다. “다음엔 나도 고수 넣어야지. 향긋하니 참 좋네.”

‘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평소 지론이 무려 70년 만에 깨진 것이 신기했다. 엄마는 “밀가루가 아닌 쌀로 만들어서”라고 이유를 댔지만, 글쎄다. 밥과는 완전히 다른 식감일뿐더러, 위에서 “음, 이건 쌀이니 괜찮군.” 하고 판단을 내렸을 리도 없다. 내 생각엔 쌀국수에 곁들인 짜조가 한 몫 한 듯하다.

한편으론 쌀국수를 이제야 처음 맛봤다는 게 뭔가 애잔했다. 쌀국수만이 아니다. 일본식 비빔라면인 아부라소바도, 얼큰한 마라탕도 아직 엄마의 군침을 돌게 하지 못한다.

맛을 모르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할 순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말하는 ‘면요리’라는 건 칼국수와 수제비, 잔치국수, 냉면, 그리고 봉지라면 정도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면 요리가 있는데! 엄마 스스로 면을 싫어할 거라 미리 단정한 것과 나이가 들수록 낯선 음식을 찾아 먹지 않는 입맛의 보수성 때문에 엄마는 새로운 걸 맛보는 즐거움을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쌀국수를 계기로 엄마와 그리 비싸지 않은, 소소한 새로운 맛을 찾아다닌다.

올해 초엔 동네에 막 문을 연 해산물 전문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꼬막 비빔밥을 맛봤다. “이렇게 많은 꼬막을 한꺼번에 먹은 건 정말 처음이야.” 엄마는 감탄했다. 우린 그 식당 단골이 되어 지금까지 꼬막 수백 개를 해치웠다. 최근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튀김덮밥을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먹었다. 빈속에 기름진 걸 먹은 탓에 엄마의 뱃속이 몇 시간 동안 부글거렸지만, 엄만 맛도 기분도 최고였다고 한다.

조만간 마라탕을 먹으러 가려 한다. 흐물흐물한 굵은 당면인 분모자와 쫀득한 감자떡면을 꼭 넣어야겠다. 과연 화자오의 화한 매운맛이 입맛에 맞으실지. 기대된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