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금강산 길’, 강원도 양구 두타연 순례
지뢰에 둘러싸인 신작로 지나면 ‘금강산 32km'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 방안 모색을 위한 북미 실무대화가 5일 열릴 예정이다. 북미 실무대화가 무르익으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DMZ를 따라 걸으며 평화를 빌었다. 9월 28일,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인천 시민들이 강원도 양구에 모여 목 놓아 외쳤다. “열려라~ 금강산 길!” 북녘서부터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한 가을하늘과 아직 늦여름이 한창인 자연이 반갑게 맞아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관광버스가 두타연 입구에 들어서니, 바로 옆에 위치한 21사단 군인들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소지품 검사를 마친 뒤 “길 양 옆 철조망을 절대 넘어가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준다. 앳된 얼굴의 그들이 ‘지뢰주의’를 신신당부한 이 길은, 7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들이 금강산에 놀러가기 위해 지나다녔던 곳이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에 위치한 두타연 신작로. 7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금강산에 놀러다녔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에 위치한 두타연(頭陀淵)은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이 내려와 생긴 계곡이다. 1000년 전 이곳에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두타연을 따라 닦인 시멘트 길은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통한다. 공식 명칭은 PLZ(Peace & Life Zone)를 딴 ‘평화누리길’이다.

평화누리길은 금강산과 불과 30여 km 떨어져 있다. 분단 전, 북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이 길을 따라 금강산으로 소풍을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도 않고, 함부로 들어올 수도 없는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길 양 옆에 매설된 지뢰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세기 넘게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다보니, 이 곳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신작로 양 옆에는 지뢰가 매설돼 있어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양구 두타연은 총3코스로 나뉘는데, 이날 참가자들은 2코스를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생태탐방로’를 지나면 똑같이 생긴 다리 두 개가 있는데, 각각 ‘두타1교?두타2교’라 부른다. 조금 더 걷다보면 ‘하야교 삼거리’가 나오고, 이어 최종 목적지인 ‘금강산 가는 길 포토존’에 다다른다. 2코스는 왕복 8km 구간이라 약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생태탐방로는 신작로 외에도 지뢰 체험장, 출렁다리, 징검다리, 조각공원 등으로 이뤄져있다.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포토존까지 가는 동안에는 길 자체를 주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곧고 평탄하게 뻗은 비포장도로는 70년 전까지만 해도 신작로였을 테다. 신발에 밟히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과 다듬어지지 않은 풀숲, 양 옆의 ‘지뢰 안내판’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시간을 아주 잠시 동안 정지시킨다.

녹빛을 띤 두타연 계곡은 수심이 그다지 높지 않다. 계곡물 안에는 1급수 물고기인 열목어가 살고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두타1?2교는 잠시 서서 계곡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늦여름의 녹빛을 띠고 있는 물은 깨끗하고 수심이 그다지 높지 않아 아래에 깔린 돌도 드문드문 보인다. 두타연은 1급수 물고기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다.

조금 더 걷다보면 하야교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는 포토존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에는 군부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고, 오른쪽에는 포토존으로 조성된 공간과 함께 비득고개로 향하는 길이 나 있다. 그리고 눈앞에는 ‘금강산 32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하야교 삼거리를 지나면 '금강산 32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 이정표는 참가자들이 더 이상 나아갈 방향이 없다는 걸 알린다. 비득고개까지 향하는 3코스를 신청하지 않은 사람은 포토존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비교적 널찍한 포토존에는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글자 조형물이 벤치 형태로 세워져 있다. 탁 트인 공간과 햇빛에 반짝이는 하얀 글자들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평화를 곱씹게 한다.

오는 길에는 미처 못 들렀던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징검다리를 기준으로 오른 편에는 한국전쟁 때 양구에서 벌어진 9개 전투를 소개하는 팻말과 전차, 미사일 등 군사무기가 전시돼있고, 왼편에는 2013년에 열린 ‘DMZ를 말하다’ 전시회 때 출품된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조각공원은 두타연에 서식하는 산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산양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고, 커다란 조형물인 ‘소원이 이뤄지는 항아리’를 요새삼아 낮잠을 자기도 한다.

평화누리길 중 생태탐방로 안에 위치한 조각공원은 산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여정에 참여한 양윤정 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이전에 열린 ‘금강산길’ 순례에도 참여했는데, 두타연은 특히 풍경이 차분하고 아름다운 곳이다”라며 “금강산과 맞닿아 있지만 갈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움만 남긴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인천시민이 만드는 평화 순례길 ‘열려라! 금강산길’은 8월 15일부터 시작해 강화, 김포, 파주, 철원, 화천을 지났으며, 고성 해파랑길 만을 남겨놓고 있다. (사)인천겨레하나, 북녘어린이영양빵공장사업본부, 평화도시만들기인천네트워크, (사)나눔과함께, 강희철재단, 인천투데이가 후원한다.

9월 28일,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는 인천 시민들이 강원도 양구에 모여 목 놓아 외쳤다. “열려라~ 금강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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