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나와 닿는 일”
“사진을 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나와 닿는 일”
  • 조연주 기자
  • 승인 2019.10.01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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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 사진치유가, 제69회 인천마당서 강연
“사진치유, 찍히는 경험만큼이나 찍는 경험 중요”

[인천투데이 조연주 기자]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이사장 신현수)가 주최한 제69회 인천마당이 9월 30일 저녁 제물포 마을극장에서 열렸다. 사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사진작가 임종진이 강사로, 가수 솔가가 노래손님으로 함께했다.

임종진 작가는 한겨레신문 사진기자와 한국사진치료학회 이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1급 사진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북한ㆍ캄보디아ㆍ라오스 등을 다니며 사건 대신 사람을 찍었다. 현재 ‘사진하는 공감아이’ 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작가보다는 ‘사진치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단순히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행위를 넘어, ‘사진을 한다’는 의미를 실천하고자 한다. ‘사진, 천만 개의 사람 꽃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펼친 그의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임종진 사진치유자.
임종진 사진치유자.

‘잘 찍는’ 기자에서 ‘사람 담는’ 사진가로

사진을 잘 찍는 기자였다. 사회 현상을 사진 한 장에 압축해 시각화해내는 일에 재능이 있었다. 독거노인은 외롭게, 빈민촌은 가난하게, 이주노동자는 불행하게 찍었다. 내 사진 속에는 ‘한 사람의 주체성과 존엄’보다는 ‘동정과 연민’이라는 렌즈를 통해 담긴 피사체와 현상이 있었다.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캄보디아에 가면서부터다. 이라크에 다녀온 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지인의 권유로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한 에이즈 환자를 만나면서 그동안 내가 ‘사람’이 아니라 ‘불행’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사람의 일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번은 철거당하는 집 앞에서 닭고기로 마지막 식사를 하는 가족이 있다고 해서, 가서 만났다. 그들은 오갈 데 없는 빈민이 됐지만, 그렇다고 늘 울고 있거나 좌절한 상태는 아니었다. 값비싼 닭고기를 먹게 돼 기쁘고, 식사 중 오가는 대화 속에서 즐거움도 느낀다. 그들은 불행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중 나는 그들의 웃는 모습을 담기로 했다. 그래서 내 사진은 기사 사진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북한에 여섯 번 방문했고 그때마다 결혼사진 찍는 신혼부부, 아빠와 함께 하교하는 아이와 같은 일상을 찍었다. 우리가 북한 하면 떠올리는 꽃제비ㆍ인민군ㆍ집단카드섹션 같은 사진만 보았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다.

우리가 정말 북한을 알고 싶다면, 북한 이미지를 한 가지에 고정해선 안 된다. 북한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렇게 북한 사진집 ‘다 똑같디요’는 철저히 의도적으로 그들의 일상을 골라 실었다.

가수 솔가.
노래손님으로 함께한 가수 솔가.

찍는다는 건 만난다는 것

그렇게 사진을 찍다보니 동의하는 마음, 신뢰하는 마음이 없이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카메라 앞에 서서 사진에 찍힌다는 것은, 자신의 어떤 순간을 기꺼이 내어준다는 뜻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레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많이 고민했다. 그것은 보는 일이며, 나아가 만나는 일이었다. 사진치유를 시작한 것은, 찍히는 경험만큼이나 찍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사진치유를 하면서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으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한 피해자를 만났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 당했다. 그는 사형 당시 아버지 곁에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 피해자는 사진치유를 하면서 처음으로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갔는데, 그가 첫 방문에 찍은 사형장 사진은 굉장히 삐뚤빼뚤했다.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두 번, 세 번 찾아가면서 사진이 점점 사형장을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는 시체가 떨어지는 곳까지 찾아가서 찍더라. 그동안 회피한 아픔을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사진치유 참가자는 5ㆍ18 민주항쟁 당시 고문 피해로 몸 절반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부정하는 감정이 강했다. 그는 사진치유를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죽은 나무를 찍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나무에 핀 버섯을 찍더라. 죽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생명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내 몸이 죽은 나무 같았는데, 거기서 피어나는 버섯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렇듯 내 피해 경험을, 아픔을 재해석하고 의미화 하는 과정이 바로 사진치유의 목적이다.

최근에는 내가 직접 찍을 때보다 그들의 사진을 볼 때 훨씬 더 기쁨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을 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나와 닿는 일이다. 최근에는 세월호 희생자 형제들을 만나 사진치유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