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볼모로 한 ‘산업은행-GM’ 힘겨루기

GM, “한국 측 지원안하면 엄청난 재정난에 빠질 것”

GM의 부사장 겸 최고 재무책임자(CFO)인 레이 영은 4월 27일 산업은행과 한국정부가 GM대우를 먼저 지원하지 않는다면 GM 본사로서는 지원할 방안이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보도에 따르면, 레이 영 GM 부사장은 이날 디트로이트 본사에서 한국언론재단과 미국 하와이 소재 동서센터가 공동으로 마련한 언론인교류 자리에서 미국을 방문한 한국 기자단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GM의 경우 미국 재무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아 미국 납세자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 돈을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일뿐더러 특히 재무부가 해외에 대한 새 투자 금지를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며 “따라서 GM이 GM대우에 새 투자를 하려면 재무부의 승인을 받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정부가 GM의 GM대우에 대한 새 투자 승인 가능성과 관련해 “일단 미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대해선 답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 측도 GM대우를 지원하지 않는 상황이 되면 GM대우를 포기할 수도 있느냐’라는 기자단의 질문에 “만약 그렇게 되면 GM대우는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답한 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금융권은 ‘GM이 해외 정부로부터 최대한 많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배수진의 협상카드로 활용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 조업중단이 재개 된 4월 21일 GM대우에 부품을 납품한 화물차량이 서문을 나오고 있다. GM대우는 2002년 출범이후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산업은행, “GM 지원 없으면 우리도 마찬가지”

GM의 이 같은 입장에 산업은행 역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GM 본사가 지원을 약속하지 않으면 GM대우에 대한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산업은행은 GM 본사가 GM대우의 영업을 보장하고 공동 지원 등에 대해 확실히 약속해준다면 자금지원을 통해 GM대우를 살리는 데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대체적으로 GM의 파산보호 과정에서 GM대우 처리를 놓고 최대한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당분간 양측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은 표면상 GM과 산업은행 간 힘겨루기로 보이지만, GM대우의 주채권은행이자 지분28%를 갖고 있는 산업은행도 한국의 국책은행이고 GM도 구제 금융을 지원받게 되면 사실상 미국정부의 공기업으로 바뀌게 돼 결국 이는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간 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산업은행과 GM, 나아가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가 결론을 낼 때까지 GM대우가 버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보다 앞서 GM대우는 오는 5월과 6월에 만기가 끝나는 선물환계약 8억 9000만달러의 50%인 4억 4500만달러에 대해 만기를 연장해달라고 지난 4월 27일 채권단에 요청했다. 연장을 요청하면서 GM대우는 부평․군산․창원공장과 물류기지 등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논의에 들어갔으나 채권단 간 이견으로 매듭짓지 못했다. 다만 당초 만기를 연말까지 연장해주기로 했던 것을 3~6개월 줄이는 절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의 100% 동의가 있어야 연장될 수 있는데 의견 조율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채권단에서 절충안을 마련하면 GM대우는 5~6월 중에 만기가 도래하는 선물환계약 중 4억 4500만달러의 만기가 연장돼 당분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GM의 적반하장에 별 수 없는 ‘비극’

산업은행과 GM의 힘겨루기든,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힘겨루기든 비극의 주인공은 GM대우이자 그에 속해있는 GM대우 노동자, 협력업체, 가족 그리고 한국경제다.

GM대우에 대한 지원 문제는 정부 부처와 논의해야하기 때문에 공기업인 산업은행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결국 정부가 GM대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설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GM대우의 모기업으로서 파산보호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한국 측이 지원안하면 GM대우가 엄청난 재정난에 빠질 것’이라며, GM은 되레 한국정부와 산업은행에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GM이 현찰로 투자한 게 4억달러밖에 없다. 나머진 다 채권이다. 고작 4억달러 투자해서 지금껏 돈 한 푼 안내고 운영해오다 GM본사가 어려워지면서 GM대우가 이지경이 됐는데 이젠 먼저 큰소리친다.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짐 내놓으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관계자 또한 “산업은행(한국정부)과 GM(미국정부) 간에 GM대우를 볼모로 한 협상이 진행되면 아쉬울 게 없는 쪽은 오히려 GM이다. GM대우의 자본이 1조 안팎인데 비해 부채는 8조에 육박한다. 이 정도면 청산이다. GM이 이를 모를 리 없는데다 그들은 한국경제에 관심 없다”며 “협상은 배짱 두둑한 사람이 주도권을 쥐기 마련이며, 배짱은 아쉬울 게 없는 쪽이 강하다. 돈 받을 쪽은 이쪽인데 안타깝게도 협상에서는 한국이 불리한 상황이 연출돼버렸다”고 덧붙였다. 

‘수출대금ㆍ판매망ㆍ경영권’ 확보, 가장 좋은 시나리오

이 뿐이 아니다. GM은 GM대우에 2조원 규모의 매출채권(수출대금)을 지급해야한다. GM대우는 대우자동차채권단에게 외상 매각대금 15억달러(원금 12억달러, 연이율 3.5%)를 지급해야하는데, GM이 GM대우의 지분 72%를 소유하고 있다.

GM대우의 부채 8조와 대우차매각대금 2조를 합하면 무려 10조가 넘는다. 이는 GM대우의 자산을 모두 매각해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다. 여기에 2조원 규모의 매출채권까지 합하면 GM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갚아야 할 돈이 천정부지 솟구치게 된다.

한국경제 입장에서 보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산업은행이 요구하는 것처럼 GM대우의 영업권(수출대금 지급과 판매망 보장)이 보장되는 것이다. 여기에 금상첨화는 GM대우의 산업은행 지분을 현 28%에서 50%이상으로 끌어올려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GM대우 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GM이 한국에 줄 돈은 안주고 되레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은 이미 시작됐다”며 “한국정부와 채권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GM대우의 수출대금을 회수하는 일이고, 그 다음은 GM대우의 판매망 확보를 전제로 한 영업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경영권 확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우자동차 매각 당시 끌려 다니기만 했던 아픔을 딛고 정부와 채권단이 이제는 한국경제를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다면 우리 쪽에서는 (GM의)경영권 철수와 한시적 판매망 보장 등을 전제로 한 수정된 협상카드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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