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뛰고 싶다, 살아 움직이고 싶다
[영화읽기] 뛰고 싶다, 살아 움직이고 싶다
  • 이영주 시민기자
  • 승인 2019.09.30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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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아워 바디(Our Body)│한가람 감독│2019년 개봉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행정고시를 8년째 준비하고 있는 자영(최희서)은 어느덧 서른한 살이 됐다. 매일 컵라면과 맥주로 끼니를 때우며 무기력하게 지내던 자영에게 남자친구는 공무원은 못 돼도 사람답게 살아야하지 않겠냐며 느닷없이 이별을 통보한다. 길어진 고시 준비에 의욕과 희망이 모두 꺾여버린 자영은 결국 행정고시 2차 시험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달리기를 하는 현주(안지혜)가 자영의 눈에 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탄력 있게 땅을 박차는 현주의 건강한 모습에 자영은 곧 매료되고, 현주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한다. 현주의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해 매일 밤 달리기를 하고 스쿼트로 근육을 만들면서 자영은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눈에 띄게 건강해진다.

비록 행시는 포기했고 보통 기업에 신입사원으로 취업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준 동창 민지(노수산나)로부터 현실감각 없다는 타박을 듣기도 하지만, 괜찮다. 현주와의 달리기가 있으니까. 자영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매일 밤 현주와의 달리기를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현주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고, 간신히 되찾은 자영의 일상은 맥없이 무너진다.

단편 ‘장례난민’으로 연출력을 보여준 한가람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워 바디(Our Body)’는 제목 그대로, ‘몸’에 관한 영화다. 카메라는 밤낮 없이 책상머리에 앉아 고시 공부 하느라 구부정해진 자영의 몸과 땀 흘리며 운동하는 현주의 몸을 비교하듯 보여주고, 현주와 달리기를 하며 점점 달라지는 자영의 몸을 화면 가득 보여준다. 운동하는 여성의 몸을 대놓고 찬양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영화에 여성의 몸이 스크린 가득 나오면 우선 불편한 마음부터 들곤 했다. 부위별로 고기를 고르듯 여성의 몸을 훑는 카메라의 끈적한 시선이 마치 내 몸을 훑는 것만 같아 불쾌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여성의 몸은 그렇게 소비돼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여성의 몸을 대놓고 보여주는데도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워 바디’에 나오는 여성의 몸은 ‘보이는 몸’이 아니라 ‘움직이는 몸’이기 때문이다. 여성 감독, 여성 스텝이 카메라에 담는 여성의 몸은 지금까지 숱한 영화에서 반복해 소비되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역동성과 건강함, 생명력을 뿜어낸다.

보통 여성의 운동은 다이어트와 직결되고 그래서 남들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행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자영의 달리기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는 것이 지상 최고의 과제라 믿는 엄마의 바람과 서른 살이 넘어서도 번듯한 직장도 없으면서 취직에 안달하지 않는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세상의 잣대에 도전하는 것이다.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마치 인생에 미리 써놓은 각본이라도 있는 듯 나이에 따라 특정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이상한 상식’과 상관없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나라는 존재를 긍정하고 더 나아가 자영이 달리는 현주의 모습에 그랬던 것처럼 자영 자신에게 스스로 매료되는 과정이다.

자영은 달리기로 몸에 집중하며 자신의 욕망을 탐구한다. 그것이 세상의 잣대로는 한참 이상한 짓일지 몰라도 적어도 관객인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 환한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던 자영이 문득 정면, 즉 관객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흠칫 놀라 자문하게 되더라. 나는 내 몸을, 내 욕망을 얼마나 알고 있냐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냐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을 박차고 나가 달리고 싶었다. 주안에서 집까지 뛰어서 갈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이렇게 달리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이제까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달리기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다. 뛰고 싶다, 살아 움직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