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철 인천평화복지연대 정책위원장

300여 명의 눈동자가 또렷또렷하다. 시민들이 제안한 정책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자료집과 제안판을 꼼꼼히 훑어본다. 어떤 제안이 시민의 삶 향상에 가장 좋을지 고르고 투표용지에 표기한다. 2019 주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가 진행된 송도 트라이보올 현장 풍경이다. 올 2월부터 시작한 인천시 주민참여예산사업이 9월 26일 한마당 총회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 등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마련해 운영하는 것으로, 주민의 행정수요를 반영한 효과적 자원 배분과 재정운용의 투명성ㆍ 책임성ㆍ건전성 등을 높이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다. 정부는 2018년에 지방재정법을 개정해 예산 편성만이 아니라 결산 의견, 집행 모니터링, 편성 방향 등 전체 과정으로 주민참여 범위를 넓혔다.

주민참여예산은 민원이나 청탁이 아니라, 공개적인 제안과 합리적인 숙의, 민주적인 결정으로 예산사업을 선정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다. 참여와 협치 행정의 꽃이다. 이 제도를 본래 취지대로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과 생활에 바쁜 시민들과 참여예산위원들의 역량을 높일 교육과 지원체계를 마련해야한다. 이를 위해 인천시는 주민참여예산 전담팀을 신설했고, 국내 최초로 중간지원조직으로 주민참여예산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지원센터는 시민들의 정책 제안과 선정 과정을 지원할 뿐, 예산 운영은 여전히 행정의 책임이다.

인천시는 올해 일반ㆍ지역 참여형, 시ㆍ동 계획형 등 4개 유형으로 제안을 받았다. 예산 규모는 300억 원. 내년에는 400억, 내후년엔 500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일반 참여형의 경우, 시민들이 온ㆍ오프라인이나 토론회ㆍ간담회에서 제시한 의견을 분과별로 접수해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이 심의한다. 올해는 255건(약 732억 원)이 접수됐다. 이를 가지고 분과별 회의, 민관 숙의, 분과별 토론회 등을 거쳐 예산 반영 우선순위 선정 대상사업으로 116건(약 217억 원)을 상정했다. 이를 놓고 1354명이 인터넷 투표와 한마당총회 현장 투표로 우선순위를 최종 정했다. 지역 참여형에선 군ㆍ구 참여예산위원회가 제안한 사업 28건(약 56억 원)을 인천시가 타당성을 검토하고 조정해 19건(약 41억 원)을 예산에 반영하기로 했다.

시 계획형은 청소년ㆍ청년ㆍ여성ㆍ서해평화 등 4개 분야에서 추진단 총 263명이 모집돼 54건(약 62억 원)을 발굴했고, 민관 협치와 숙의 단계를 거쳐 35건(약 38억 원)으로 조정해 우선순위 투표에 붙였다. 투표에 총 3680명이 참여했다. 동 계획형은 시범 동 20개를 선정해 진행했는데, 추진단 총 900명이 184건(약 36억 원)을 제안 받아 민관 협치와 숙의 단계를 거쳐 124건(약 23억 원)으로 조정해 우선순위 투표에 부의했다. 주민 1만 2300명이 투표했다.

참으로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쳤다. 예산 낭비나 중복 요소가 없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참여 후기를 보면, 개념이나 용어, 절차에서 민간과 행정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대화와 소통뿐이다. 그래서 협치와 숙의는 더디고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인내하고 극복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렇게 공무원과 주민들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올해 주민참여예산사업은 성황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제 평가회와 공개토론회 등으로 부족한 점을 개선해 주민참여예산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일이 남았다.

박남춘 시장은 한마당 총회에서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발굴하며 많이 배우고 느끼셨을 것이다. 이렇게 많이 배운 시민이 많아지면 거짓말하는 정치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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