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격을 판매하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격을 판매하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 정양지 기자
  • 승인 2019.09.2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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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장을 위한 공공부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간담회' 열려
미추홀콜센터‧인천도시가스‧삼천리도시가스 여성노동자 참여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미추홀콜센터에 근무한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한 민원인이 전화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XX(여성 성기를 비하하는 말)를 찢어버리겠다’고 말했다. 다른 민원인은 ‘지난번에 전화 받은 그 X이네? 너 콜센터에 시험은 보고 들어갔냐?’고 한 적도 있다.”

지난 26일 정의당 인천시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이 개최한 ‘근로조건 개선, 인권보장을 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간담회’에서 미추홀콜센터 상담사 A씨가 한 말이다. 이날 모인 콜센터 상담사들은 입을 모아 “매뉴얼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응대를 하니 욕받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인천시의회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모란주 미추홀콜센터 분회장, 박혜경 인천도시가스 남동분회장, 권미경 삼천리도시가스 주안분회장 외 조합원들이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또, 정의당 이정미(비례) 국회의원과 조선희(비례) 시의원, 김응호 인천시당위원장, 이옥희 노동본부장, 고아라 노동국장과 민주노총 황윤정 인천지역노조 위원장이 함께했다.

이정미 국회의원, 정의당 인천시당, 민주노총 인천지역노조가 지난 26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모인 미추홀콜센터, 인천도시가스, 삼천리도시가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느낀 고충을 토로했다.
이정미 국회의원, 정의당 인천시당, 민주노총 인천지역노조가 지난 26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모인 미추홀콜센터, 인천도시가스, 삼천리도시가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느낀 고충을 토로했다.

 

민원인‧공무원 동시 ‘갑질’…상담사 인권은 어디로 갔나

상담사 A씨는 “26일 오전에 미추홀콜센터 상담사의 인권보호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전부터 곪았던 게 드디어 터진 거다”라며 “그동안 악성민원으로부터 상담사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인천시 공무원들의 무시 발언도 많았다. ‘서구 수돗물 사태’를 계기로 이 모든 게 수면 위에 떠올랐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5월 30일, 서구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오는 일이 발생했다. 규모는 영종도, 강화도, 중구 등으로 번졌고, 며칠이면 해결될 거라는 상수도사업본부의 설명과 달리 2달 넘게 지속됐다. 미추홀콜센터에는 항의 민원이 빗발쳤다. 상수도 민원을 담당하는 ‘상수도팀’ 상담사 16명이서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미추홀구‧연수구 등 각 지역구에서 발생하는 민원을 담당했던 ‘일반팀’ 상담사들이 급하게 투입됐는데, 이들은 당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정확한 매뉴얼은 없고 항의전화는 쏟아지니 응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담사 B씨는 “보통 ‘응답 서비스 레벨’을 95%로 맞추게 돼 있는데, 그 당시엔 10%대였다. 그만큼 전화가 폭주했고, 시민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B씨는 “시민들이 답답해하며 담당 공무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어쩔 땐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내고 이 번호가 맞는지도 물어봤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공무원에게 추궁당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응대지침도 계속 바뀌는 바람에 오전에 안내한 내용과 오후에 안내한 내용이 달라졌다. 시에서 지침을 내리면 콜센터 팀장이 확인한 뒤 상담사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 실시간으로 반영하기 어려웠다. 수돗물 피해보상 접수 때는 더 심했다.

콜센터 상담사 C씨는 “접수 첫 날, 온라인 사이트가 마비됐다. 홈페이지 관리 담당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담당자가 ‘수돗물 민원은 안 받는다’며 거절했다”고 한 뒤,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전달할 창구가 막혀있다. 무조건 공무원-팀장-상담사 체계로 이뤄진다. 어쩌다 공무원과 통화하게 되면 대부분 말투가 불친절하다”고 밝혔다.

이어 “민원인의 갑질도 많다. 한 번은 동료 상담사가 전화를 받았는데, 민원인이 ‘20번 사과하라’고 시켰다. 그래서 ‘정말 죄송합니다’를 스무 번 말했다. 다시 10번 하라길래 또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니 센터장 바꿔라’고 말했다”며 울먹였다.

상담사 D씨는 “서울시 민원 콜센터인 ‘다산콜센터’는 갑질 민원인을 차단할 수 있게 돼 있다. 인천은 그런 게 없다. 그럼 다산콜센터에서 차단당한 민원인들이 미추홀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다산콜센터로 연결해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정미 의원은 “노동부에 이 문제를 직접 제기하겠다”라고 한 뒤, “상담사만 패널티를 받는 게 아니라, 상담사에게 불친절하게 대한 공무원에게도 패널티를 줄 수 있는 방안이 생겨야 한다”고 답했다.

독신 남성 집 방문 두려워…매뉴얼은 ‘뒷모습 보이지 말라’ 뿐

인천도시가스와 삼천리도시가스 노동자들은 가스 점검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고충을 토로했다. 점검원 E씨는 “6개월 동안 4500세대를 점검해야 한다. 가스를 점검하려면 고객 집 안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데, 부재중일 때가 많아 근무시간이 항상 늦어진다. 밤 10시에 오라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울산광역시에서 여성 가스점검원이 남성 고객 집에 방문했다가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점검을 마치고 나가려고 하자 가해자는 ‘진짜 점검만 하러 왔느냐’며 점검원을 1시간 동안 감금했다. E씨는 “점검원은 혼자 사는 남성 집에 들어갈 때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회사에서 알려준 매뉴얼은 ‘남성에게 가급적 뒷모습을 보이지 말고, 최대한 빨리 점검하고 나와라’뿐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예전에 남성이 혼자 사는 원룸으로 점검을 갔다. 들어올 때, 분명히 현관문을 열어뒀는데 내가 보일러실로 향하는 순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며 “서명을 받고 집을 나가려고 하니 그 남성이 갑자기 내 팔을 붙잡았다. 그 때 느낀 당혹감은 상상도 못 할 거다”라고 밝혔다.

점검원 F씨는 “얼마 전 회사랑 관할경찰서가 성범죄자 거주지를 공유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고객에 대한 정보는 점검원들이 더 많이, 더 빨리 알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득이 되는 게 없어 안타깝다. 야간 점검만이라도 2인 1조로 다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점검원 G씨는 “우리는 한달에 1500~1900세대를 점검하게 돼 있는데, 달성률을 95%로 맞춰야 한다. 그럼 못해도 5번은 재방문해야 한다. 밤 늦게 오라는 고객도 있고, 새벽에 일찍 가야할 때도 있다”며 “점검 노동은 ‘간주근로시간제’로 적용되기 때문에 노동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밝혔다.

간담회를 마친 뒤, 황윤정 노조위원장은 “지난 상반기 의회에서 조선희 의원이 인권보호 문제를 제기해 시에서 운영지침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집행부인 시에 제출된 상태고 하반기에 미추홀콜센터 관련 지침이 내려질거다”라며 “이번 간담회에서 비상시에 발생하는 악성민원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조선희 의원은 “점검 노동자의 얘기를 듣고, 나라가 바뀌었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하다는 걸 새삼 느껴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해지리라는 걸 믿는다”며 “감정노동자 지원 조례안을 발의하기 위해 입법담당관실로 넘긴 상태다. 노동조건이 개선될 때까지 같이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정미 의원은 “현장에서 일하며 느낀 억울함과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는 노동조합이다”라며 “노동자들은 서비스를 파는 것이지 인격을 파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는 노조로, 의원들은 법률 제‧개정으로 함께 싸워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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