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52> 팔미라, 벨 신전

[인천투데이] 사막 길을 달리노라면 자연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코발트 하늘과 황금빛 모래, 강렬한 햇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물리치는 역동적인 힘이 있다. 하늘 높이 모래 기둥을 뿜어내는 바람이다. 용광로처럼 이글거리는 한낮 사막.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한다.

이때는 자동차로 사막을 횡단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타이어가 펑크 나는 것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부분이 고장 나면 자동차정비소는 물론 휴게소조차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꼼짝없이 갇힌다.

고대 실크로드 대상들의 요충지였던 팔미라.

팔미라로 가는 사막 길

시리아 수도인 다마스쿠스와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는 직선거리로 약 600㎞다. 두 도시 사이는 온통 사막지대뿐인데 이러한 사막 한가운데에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가 있다. 정해진 일정이 있어서 한낮임에도 사막 길을 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타이어가 펑크 났다. 예비 타이어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해 또 다른 타이어도 펑크 났다. 뒷바퀴와 교체했다.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글거리는 사막은 경고를 무시한 행동에 일침을 가하듯 또다시 펑크를 냈다.

아직도 황금 모래밭은 끝이 보이지 않고 태양은 뒤통수에 사정없이 햇살을 쏘아댄다. 4시간 거리가 아직도 얼마를 가야할지 모른다. 생수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망연자실. 다시 힘을 모아 뒷바퀴와 교체한다. 시동도 불안하다. 처음으로 신께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제발 무사히 굴러가게만 해주십사.

자동차는 털털거리며 굴러갔다. 엔진이 풀썩댈 때마다 가슴은 철렁 주저앉았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났다. 저 멀리 푸르른 오아시스가 보였다. 저절로 감사하다는 탄성이 흐른다. 실크로드 사막 길에서 오아시스의 중요성을 절절이 체득한 하루였다.

실크로드 대상(隊商)들도 이 사막을 건넜다.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천 마리가 넘는 낙타 행렬이 사막을 횡단했는데, 낙타 한 마리당 짐 170~280㎏을 싣고 하루 평균 40㎞를 행군했다. 사막에서 백골이 되지 않으려면 사막을 빨리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막은 끝없고 태양은 숨을 조이니 힘을 충전할 수 있는 휴식처가 절실하다. 영국의 추리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모래사막 한가운데 땅 속에서 솟아오른 환상적인 도시’라고 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팔미라는 실크로드 대상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낙원이었다.

팔미라 유적 원경.

사막 속 초록궁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석양이 질 무렵 팔미라를 찾았다. 로마제국의 도시가 그렇듯 이곳도 길게 늘어선 열주가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고대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번성한 도시 흔적이 거대한 돌기둥 유적들로 넘쳐난다. 도시 중심은 벨 신전이다.

벨은 바빌로니아의 최고신으로 우주의 지배자요 주인이다. 이 신전은 기원전 2000년대에 세워졌다. 네모지고 육중한 석벽 250여 미터가 멀리서도 신전의 위압감을 주기에 족하다. 신전 중앙에는 정원이 있고, 중앙에 제단인 셀라가 있다. 신전 북쪽엔 궁전이 있었다. 신전은 개축을 반복했다.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서기 32년, 티베리우스가 로마제국의 최고신인 주피터에게 바치기 위해 개축한 것이다.

‘사막 속의 초록궁전’ 팔미라. 오늘도 에프카라고 불리는 샘에서 끊임없이 물이 솟아나고 있다. 팔미라의 원래 이름은 타드모르(Tadmor)인데, 이는 고대 셈족어로서 ‘대추나무 숲’이라는 의미다. 고대부터 오아시스 도시였음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는 사막을 오가는 대상들의 쉼터뿐 아니라 동서무역을 이어주는 교역도시였다.

폐허가 된 팔미라 유적.

무역 요충지로서 엄청난 부(富) 축적

팔미라가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이점을 잘 활용한 결과였다. 또한 장거리 무역을 장악했던 나바타이 왕국의 수도 페트라가 로마제국에 편입되고, 로마가 동쪽 페르시아를 넘볼 때 팔미라의 낙타군대가 로마군의 지원을 받아 사산조의 시리아 침략을 격퇴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한 결과였다.

이를 통해 팔미라는 로마 황제로부터 자유도시로 인정받아 관세를 설정ㆍ징수하는 권한을 얻어냄으로써 제국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다졌다. 이때부터 동쪽의 중국ㆍ페르시아ㆍ이라크에서 들어오는 모든 무역상품은 반드시 팔미라를 통과해 서쪽 다마스쿠스와 지중해 연안의 티르 무역항으로 운송됐다. 이 과정에서 팔미라는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팔미라는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국가를 건설했다. 팔미라를 대표하는 벨 신전을 기점으로 도시를 동서로 횡단하는 열주와 중심도로가 만들어지고, 신ㆍ구 시가지를 연결하는 개선문과 원형극장, 의사당과 시장, 주택과 목욕탕, 장례제당과 탑묘(塔墓) 등이 차례로 들어섰는데, 이는 지금 대부분 폐허로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미라가 엄청난 규모의 도시국가였음을 알려준다.

바빌로니아 최고신을 모신 벨 신전.
로마시대 열주가 늘어선 대로.

IS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돼

또한 팔미라의 경제력은 로마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게 했고, ‘중동의 클레오파트라’로 불린 제노비아 여왕 때는 로마의 속주에서 벗어나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야심은 도를 넘어섰고, 이를 용인할 수 없는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팔미라를 정복했다. 그녀의 야심이 팔미라의 발전을 이룩했으나, 그 야심이 도를 넘어 팔미라의 몰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됐다.

팔미라는 사막의 실크로드 대상 교역로를 지배하고, 오아시스 상업도시의 이점을 살려 단기간에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즉, 대상들의 숙박업소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거기서 나오는 비용과 통관세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국력 증강과 영토 확장에 주력할 때도 팔미라를 거치는 실크로드 대상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교역활동을 보장받았다. 실크로드 대상들이 반드시 팔미라를 거쳐 무역을 하게 제도와 기반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토록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도 2015년 IS(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됐다. 그들은 알라신 외에 그 어떤 신상도 우상숭배라고 믿기 때문에 이를 파괴한 것이다.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이 촉발한 내전은 에너지 자원 선점을 위한 다국적군의 개입을 불러왔고, 급기야는 IS가 팔미라를 점거하고 신전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천 년 된 문화유산이 한순간에 파괴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IS에 의해 파괴되는 벨 신전.(출처ㆍ연합뉴스 보도 화면 캡쳐)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