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미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 한가위, 언제나 그랬듯 세상에 뉴스는 넘쳐났고, 명절 식탁에선 풍성한 음식과 더불어 예민한 이슈들도 오갔다.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어, 이제 명절에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아졌고 조상 취향 맞춤형 차례 상을 차리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많은 음식 장만에 괴로운 명절을 보내는 여성도 많다. 음식 장만하랴 가족들 챙기랴 분주한 명절을 보낸 대부분의 여성은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마음으로 외친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이는 한가위이지만,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외로운 날이다.

연휴가 끝나고 모임을 하는데 명절음식을 싸오기로 했다. 다양한 전과 과일 등으로 잔칫상이 차려졌고, 자연스레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가 오갔다.

“추석 이후 이혼이 두 배 많아졌다는 기사 봤어요?”라는 말로 시작해 경험담을 나눴다. “나에게 추석은 진짜 가족을 만나는 날이야. 다 돌아가시고 이제 동생 하나뿐인데 바빠서 만나기가 어려워”라며 그나마 명절 때 본다면서 한 말이다. 어떤 이는 “나에게 추석은 시어머니의 탈제사 선언”이라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40년 동안 해온 제사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하셨고, 추석 당일에도 제사 대신 성당을 가셨단다. 초등학생 아들은 그 상황을 보더니 자신은 할머니를 무척 좋아하기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자신이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단다. 그 얘기를 듣고 대부분 “꼭 아내 시키지 말고 본인이 지내라고 해”라며 웃어넘겼다.

음식을 많이 해서 온몸이 쑤신다는 사람도 있고, 올해부터 제사를 맡아 나름 ‘갑질’을 했다는 이도 있었다. 또한 온전히 자신을 위한 연휴를 만끽한 사람도 있었다. 비혼ㆍ기혼, 유자녀ㆍ무자녀 등 가구 형태에 따라 추석을 지내는 방식은 다양했다.

함께 살던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에게도 명절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 전까지는 명절 전에 시집에 가서 작은 어머니들과 음식을 만들었고, 추석 당일에는 제사를 지내러 또 시집에 갔다. 지금은 추석 전날 우리 집에서 남편과 전을 부치고 당일 아침 일찍 집에서 친정엄마 제사를 지낸 후 시집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이번 추석에 제사를 지내는데 작은 아버님이 한 말씀 하셨다. “여자들도 절하시죠. 자존심 안상해요?”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나보다. 20년 만에 처음 듣는 소리다. 그런데 바로 작은 어머님이 “뭐 절만 하래. 그럼 음식 만들 때부터 같이 해야지”라고 하셔서 머쓱한 분위기가 됐지만, 그래도 제사는 조용히 잘 치렀다.

명절 후 가족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고생했다. 고마워’라고 했다. 이 또한 서로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들어야 좋은 말이다. 서로 평등한 관계라고 말하면서 불합리한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면 아무리 ‘고생했다. 고맙다’고 말해도 위로가 될 수 없다.

제사 종료를 선언한 어느 시어머니처럼 우리도 선언이 필요하다. 명절이 누구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지 않게 서로 마음 써야 한다.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최대한 줄이고 성차별적 명칭도 줄여가자. 익숙하지 않고 상대방이 불편할 것 같아 못한 것들을 나부터 하다보면 문화가 된다.

‘나는 차별하지 않고 차별받지도 않는데’라고 말하기보다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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