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선 곳 “2년 동안 적자”…예정된 곳 “매일 술만”

▲ 부개동에 들어선 기업형 슈퍼마켓의 모습.
4월 23일, 2007년 말에 들어선 기업형 슈퍼마켓(SSM) 바로 뒤편에 위치한 인천 부평구 부개동의 한 시장을 방문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북적일만한데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3년 넘게 정육점을 운영한 최아무개씨는 대형마트가 운영하는 SSM이 들어서고 나서 매상이 절반으로 줄었고 적자를 면치 못한다며, 제발 SSM을 나가게 해줄 수 없냐고 한숨 섞인 목소리를 냈다.

최씨는 “저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서고 나서 장사를 그만 둔 사람이 많다”며 “50여개 점포 중 장사가 제대로 되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야채와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49)씨도 매달 적자라 월 임대료도 못 내고 보증금만 까먹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기업형 슈퍼마켓이 길거리에 물건들을 전시해 사람들 통행을 방해하고 주차장에 물건을 잔뜩 쌓아놓는 데다 아침에는 길까지 막아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등 상도덕이 없다”며 “정부에서 말로만 재래시장을 살린다고 하지 말고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SSM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어 시장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4월 17일, 몇 개월 안에 150평 규모의 SSM이 들어선다고 소문이 난 부평구 갈산동의 상가지역을 찾았다.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박아무개(51)씨는 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박씨는 “괴로워서 낮에도 술을 먹을 수밖에 없다”며 “대형마트도 바로 옆에 있어서 이미 피해를 많이 받았는데 또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49)씨는 “바로 길 건너의 상가건물 5~6개가 팔리고 기업형 슈퍼마켓이 빠르면 몇 달 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20일 전에 들었다”며 “그 다음부터는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은 돈을 벌면 다 본사로 들어가고 지역경제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지역의 상인들이 다 죽기 전에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어야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신세계이마트가 ‘기업형 슈퍼마켓’ 진출 계획을 밝히자, 동네 슈퍼마켓과 재래시장 상인 등은 떨고 있다.

2008년 말 기준 이미 전국적으로 SSM은 400개를 넘어섰으며, 이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 지역에 밀집돼있다. 인천에는 15개, 부평에는 3개의 SSM이 입점해있다. 갈산동에 들어올 SSM까지 포함하면 4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롯데유통의 ‘롯데슈퍼’, 지에스(GS)리테일의 ‘지에스수퍼마켓’,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 3곳이 운영하는 점포만 현재 362곳이며, 삼성테스코는 올해 안으로 100곳을 더 열 계획이다.

여기에다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신세계이마트가 SSM 진출을 선포했으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슈퍼마켓 매출에서 SSM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2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함에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17대 국회에 이어 18대에서도 대형마트 규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아예 입점한 SSM에 대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부평구에 SSM 현황에 대해 문의한 결과,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인태연 인천상인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미 3년 전부터 SSM의 동네 진출은 예상됐다”며 “이로 인해 재래시장이나 지역 상인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 재벌들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는 전국의 모든 상인들이 하나로 뭉쳐서 싸워야한다”며 “중소상공인들도 더 이상 정부나 정치권에 기대지 말고 그들이 대형유통업체들의 편에 서지 않도록 압박을 가해야하며 대형마트 규제 법안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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