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정취에 빠져 수봉공원 한 바퀴
달빛 정취에 빠져 수봉공원 한 바퀴
  • 천영기 시민기자
  • 승인 2019.09.02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천영기의 인천달빛기행
8. 미추홀구 수봉공원 (상편)
수봉공원 인공폭포 옆 계단에서 본 달밤의 정취.
수봉공원 인공폭포 옆 계단에서 본 달밤의 정취.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수봉공원을 한 바퀴 돌려면 독정골 또는 제물포역이나 도화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달빛기행은 보통 도화역에서 출발한다. 수봉공원 인공폭포로부터 현충탑까지 오르다보면 달빛 정취가 꽤나 아름답고, 불야성을 이룬 도시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다. 낮에는 볼거리가 많은 제물포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주인공원으로 탈바꿈한 주인선

제물포역 1번 출구를 나와 해피타운 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주인공원이 나온다. 주인선(朱仁線)이 폐지된 후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철길을 따라 지구를 6개 나눠 단계적으로 공원을 조성했다. 이 공원을 걸어보면 보통 도심공원과 다르게 폭이 좁은 숲길을 걷는 느낌이다.

주인선은 경인선 주안역과 수인선 남인천역 사이에 부설된 단선철도로 길이는 3.8km다. 1957년에 착공해 1959년에 완공했는데, 산업철도 용도로 신설했지만 실제는 부평과 동두천 간 주한미군 화물과 군인 수송이 주목적이었다. 남인천역은 1937년 수인선을 개통할 때 인천항역이었다가 1948년에 수인역으로, 1955년에 다시 남인천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3년에 수인선 노선이 송도역까지 단축되면서 남인천역 역사(驛舍)는 폐쇄됐다.

주인공원 길.
주인공원 길.

주인선은 부평미군기지 기능이 축소되면서 공식적으로 운행이 중단된 1985년까지 하루에 정기열차 1회와 임시열차 3회 등 모두 네 차례 열차가 오갔다. 한때는 인천에서 입영하는 청년들이 남인천역이나 남부역에서 이 주인선을 거쳐 논산훈련소까지 실려 갔다. 입영하는 날 남인천역이나 남부역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 노선은 운행이 중단된 뒤에 계속 방치되다가 1994년 ‘제4차 철도청 정책심의회’에서 남인천역 구내 입구부터 제물포역 인근 철교까지 약 1.8km를 폐선하기로 결정했다.

주인공원을 걷다보면 철로를 10m 정도만 남기고 모두 걷어낸 게 가장 안타깝다. 철로를 그대로 두고 열차까지 전시했으면 도심지 철도테마공원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멋진 길이 됐을 텐데. 인천향토사 교육을 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행정편의주의가 만연한 탓인지, 아니면 먼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가 없는 것인지. 지역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지성이 발휘될 수 있는 민관협치가 매우 필요한 때다.

와룡양조장과 제물포시장

주인공원을 따라 250m 정도 걸어가면 제물포시장 못미처 주인선 철로가 10m 정도 보존된 부근에 ‘와룡소주’ 안내판이 서있다. 와룡소주는 1950~1960년대에 진로ㆍ삼학과 더불어 인천에서 유통되는 3대 소주였다. 이 와룡소주를 생산하는 와룡양조장이 제물포시장 뒤편 아래쪽에 있었다. 그 당시 이곳 숭의4동 일대는 논밭과 과수원이었으며, ‘와룡’이라고 적힌 양조장 굴뚝이 높이 서있어 소주를 만들 때 흰 연기를 뿜었다.

와룡양조장 앞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와룡저수지’라 불렸으며, 양조장에서 소주를 만들고 난 폐수가 이 저수지에 흘러들었다. 고구마의 달달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배고픈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했단다. 겨울이 되면 꽁꽁 언 저수지에서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고 스케이트를 탔는데 양조장에서 폐수가 흘러드는 부분은 얼지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에 와룡저수지와 주변 논을 매립한 곳에 주택단지와 제물포시장이 들어섰다.

제물포시장은 수봉공원과 제물포역 사이에 있다. 1972년 면적 4770㎡에 가게 100여 개로 문을 열었다. 1970~1980년대에 수봉산 자락을 중심으로 단독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제물포시장은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신도시로 인구 이동, 대형마트로 상권이동, 시장 건물 노후화, 지역주민 고령화 등으로 손님이 줄어들면서 쇠퇴의 길을 걷는다.

상권을 되찾고자 상인들이 노력한 결과, 1997년에 인천시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2003년에는 주상복합아파트로 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행사 부도와 조합 운영 비리로 인한 갈등으로 사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마치 폭탄을 맞은 듯 도심 속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다만, 바깥 도로에 있는 가게 10여 개는 아직도 영업 중이다. 상인도 줄어들고 대표할만한 조직도 없어 재개발은 요원하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폐허를 연상시켜 영화나 한 편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 ‘써니’의 욕 배틀 씬, ‘아수라’의 정우성ㆍ주지훈 음주 장면, ‘신세계’의 형사반장 최민식이 이중 스파이 이정재와 접선하던 실내낚시터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폐허가 된 제물포시장.(사진 위) / 부용사. 왼쪽부터 대웅전, 응진전, 요사채 건물.
폐허가 된 제물포시장.(사진 위) / 부용사. 왼쪽부터 대웅전, 응진전, 요사채 건물.

부용사(芙蓉寺)

제물포시장을 통과해 오른쪽으로 두 블록을 가서 수봉문화회관 쪽으로 길을 오르다 보면 소극장 바로 아래 산성교회로 들어가는 공터에 쉼터가 있다. 이곳에 메타세쿼이아 20여 그루가 줄지어 서있다. 도심 주택가에서 ‘화석나무’라 불리는 메타세쿼이아를 뜻밖에 만나는 기쁨은 나만의 것은 아닐 터.

언덕을 올라 큰길에서 아래로 100m 정도 내려가면 인천 최초의 비구니 사찰인 ‘부용사’가 있다. 불교에서 ‘부용’은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내는 ‘연꽃’의 다른 이름이다. 1930년에 만성 스님이 지은 작은 암자로 부용암, 부용선원이라 불렸다. 1957년에 나한전(현재 응진전), 1979년에는 법당을 중건했는데 매우 큰 요사체 건물 등이 있는 조용한 사찰이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응진전은 석가모니불과 제자 18나한이나 500나한을 모시는 법당인데, 이곳에는 산신, 독성, 칠성을 같이 모셔 삼성각 역할도 겸한다. 일주문을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을 들어서면 바로 주차장이고, 왼쪽으로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이 나온다. 대웅전과 응진전은 좌향이 동북쪽을 향하고 있다. 일반적인 건물과 좌향(坐向)이 다르게 배치돼있는 법당들은 아마도 암자를 확장하며 다시 지을 때 건물 배치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부용사는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을 위해 쉼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봤다. 지금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의 쌀을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는 사찰로, 갈 때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평온을 가져온다.

인천문화회관. 왼쪽 건물이 국악회관.(사진 위) / 은율탈춤전수관과 야외 민속놀이마당.
인천문화회관. 왼쪽 건물이 국악회관.(사진 위) / 은율탈춤전수관과 야외 민속놀이마당.

인천문화회관과 은율탈춤전수관, 무덕정(武德亭)

‘인천문화회관’은 인천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1982년에 인천시가 건립한 전시ㆍ공연을 위한 시설물이다. 2002년 개관한 별관 ‘국악회관’을 포함해 지하 2층, 지상 4층 건물이다. 이에 걸맞게 전시실 7개와 강의실 5개, 160석 규모의 소극장이 있다. 그리고 각 층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광역시연합회 회원단체들 사무실이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는 이곳이 인천의 각종 전시와 공연이 펼쳐지는 중심지였는데, 1994년에 인천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면서 그 중심이 관교동으로 옮겨갔다. 지금은 자체 공연보다 주로 대관 업무를 하고있다.

국악회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국악자료실과 전시실 4개, 118석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2003년부터 ‘국악 문화 학교’를 개설해 가야금, 민요, 장구, 풍물, 한국무용, 거문고, 판소리, 모듬북, 해금, 대금, 단소, 피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천 국악대제전과 전국 국악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국악 활성화와 질적 향상을 위해 국악인, 청소년, 일반인에게 국악 장르에 한해 연습공간을 무료로 빌려주고 있으며, 전통 문화예술 공연에 한해 대관도 하고 있다.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는 은율탈춤전수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무덕정 입구.
무덕정 입구.

은율탈춤은 황해도 은율에서 전래된 것으로 사자춤, 헛목춤(상좌춤), 팔목중품, 양반춤, 노승춤, 미얄할미영감춤 등 마당 6개로 구성돼있다. 내용은 벽사(辟邪), 불교의 타락 풍자, 양반 조롱과 풍자, 처첩(妻妾)의 갈등, 서민의 애환 등을 담고 있다.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됐고, 1982년에는 인천이 전승지(傳承地)로 지정받았다. 이런 관계로 1983년에 은율탈춤전수관이 인천문화회관 옆에 세워졌다. 2014년에는 건물안전진단 D등급을 받아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신ㆍ개축 공사를 해서 2017년에 재개관했다. 이 전수관을 운영하는 은율탈춤보존회는 아동ㆍ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은율탈춤 전수교육을 하고 있으며, 야외 민속놀이마당에서 무형문화재 상설공연도 하고 있다.

수봉산 쪽으로 차도를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무덕정’이 나온다. 1865년에 도원동에 정사를 건립하고 활쏘기를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52년에 전쟁으로 정사가 완전히 파괴됐으며, 인천시에서 이 땅을 학교부지로 팔아 일시적으로 활쏘기가 중지됐다. 1961년에 수봉산 서쪽 부근 임야를 빌려 재건했다.

1978년에 인천시 지원으로 현 위치에 정사를 지었다. 예전에는 지역 유지와 지도층 인사들이 주로 사용했으나, 요즘은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입회비 20만 원, 월회비 2만 원으로 국궁을 배울 수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국내 활터 320여 곳을 이용할 수 있다. 인천에도 10곳이 있다.

수봉공원길 코스 지도.
수봉공원길 코스 지도.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달빛기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