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 시민기자의 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76. 마라탕
심혜진 시민기자의 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76. 마라탕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9.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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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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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글쓰기 강의 보조강사를 하고 있다. 지난주 한 수강생이 자신이 겪은 독특한 경험을 글로 써왔다.

그는 한 동물권 단체에서 진행하는 ‘비질’이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도축장으로 들어가려는 트럭을 막아서고 운전기사에게 잠시만 동물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한 뒤 돼지와 소에게 물을 주는 것이다. 소와 돼지들은 며칠 동안 물과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 몹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상태라 한다. 곧 고기가될 동물에게 음식을 주는 건 인력 낭비, 돈 낭비일뿐만 아니라, 이동 중 똥오줌을 싸 번거로운 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이 이 활동의 목적이라 했다.

글에는 그가 목격한 동물들의 처참한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충혈 된 눈으로 입에서 거품을 내뱉는 소와 눈가가 짓무르고 피부가 괴사한 돼지, 젖에서 피가 흐르는 젖소…. 잠시 눈이 마주친 소의 눈망울이 자꾸 생각나 이후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이 대목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웬일일까. 나는 마음이 자꾸 불편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을 모두 죄인으로 만드는 것 같아 거북했다. 글을 평가하는 시간에 나는 이런저런 문제점을 콕콕 짚었다. ‘육식을 반대하는 잡지의 한 페이지 같다. 채식하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른데 생명 윤리적인 부분만 너무 부각해서 공감이 덜 된다’ 등등.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말을 멈출 순 없었다. 어떤 말로든 내 불편함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다.

그날 뒤풀이는 마라탕 식당에서 했다. 채소와 해산물, 육류를 원하는 대로 담고 매운 정도를 선택하면 직원들이 주방에서 탕을 끓여 각자 자리로 가져다줬다. 나는 당면과 청경채, 버섯, 고수를 듬뿍 담고 평소 식습관대로 소고기도 추가했다. 그러곤 글을 발표한 그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피하고 싶었으나, 내가 앉은 자리에서도 채식이야기는 이어졌다. 수강생 중엔 채식하는 이가 꽤 많았다. 채식엔 여러 단계가 있는데, 알, 유제품, 닭, 생선, 네 발 달린 동물, 채소와 과일 중에서 무엇을 먹고 안 먹느냐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 수강생들은 동물과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채식하는 이가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당면을 후룩후룩 건져 먹었다. 소고기 한 점을 씹을 때, 아까 글에 나온 소의 눈이 생각났다. 직접 본 것도 아닌 소의 새카만 눈동자가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날따라 고기가 퍽퍽했는지, 목구멍이 콱 막혀 넘어가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릇에 남은 고기를 보기가 민망했다.

한때 나도 채식을 했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 축산 현실을 다룬 책을 본 직후부터였다. 먹을 게 많은데도 굳이 멀쩡히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 내 식욕을 채우기가 몹시 미안했다.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디에서든 이상하고 까탈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간식과 도시락을 싸들고 가지고 다니며 2년을 버텼다. 채식한다는 자부심과 가벼워진 몸의 느낌이 내게 큰 만족감을 줬다. 육식에 비할 수 없었다.

채식의 삶을 무너뜨린 건 야근과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 환경이었다. 잠과 쉼이 부족한 피로에 찌든 일상에서, 나는 채소를 썰고 도시락을 설거지할 시간을 가장 먼저 잘라냈다. 달걀을, 멸치를, 햄버거를 먹었다. 주위에선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채식이 무너진 자리엔 죄책감도 자취를 감췄다. 15년이 지나는 사이 나는 달에 한 번은 치킨을 먹어야하는, 치킨 중독자가 돼버렸다. 15년은 닭의 수명이기도 하다.

눈물과 고통으로 써 내려간 수강생의 글에서 그때의 실패를 맞닥뜨렸다. 나는 실패했던 사람이잖아, 다시 실패해선 안 돼, 그러니 꿈도 꾸지 마. 나는 일부러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밤거리, 내 인기척에 놀란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서 몸을 움츠리며 눈빛을 번득였다. 아, 나란 존재는 너희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무감각한 포식자로, 가해자로 살 텐가. 아무래도 나는 다시 또 그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어차피 실패자니까 다시 실패해도 원점이다. 그뿐이다. 앞으로 마라탕엔 채소만 넣기로 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