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우리집(The House of Us)│윤가은 감독│2019년 개봉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밤마다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부모 때문에 걱정이 많은 열두 살 하나(김나연)는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 가족여행을 제안하지만 엄마 아빠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부모 사이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오빠 찬(안지호)은 하나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집은 왜 이 모양일까.’ 고민하던 하나는 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언니 유미(김시아)를 잃어버린 유진(주예림)을 돕게 된다. 유미와 유진 자매의 부모는 하나의 부모처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부부 도배사로 어린 자식들을 두고 며칠씩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거의 대부분 집을 비운다. 하나보다 어린 유미가 학교도 가지 않은 어린 동생 유진을 부모처럼 돌보고 있다. 더구나 가난해서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하는 형편이라, 하나와 마찬가지로 ‘우리집은 왜 이럴까.’ 고민 중이다.

동병상련일까? 각자 집 걱정이 많은 하나와 유미네 자매는 금세 친해지고 마치 친자매처럼 어울린다. 유미네 자매는 오빠의 약점을 잡아 가족여행을 추진하려는 하나를 도와 하나의 오빠 찬을 미행하고, 하나는 지금 사는 집에서 또 다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에 처한 유미네 자매를 위해 갖은 지략을 동원해 이사를 막으려 애쓴다. 과연 하나는 가족여행을 갈 수 있을까? 유미네 자매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영화 ‘우리집’은 단편 ‘콩나물’(2013년)부터 장편 데뷔작 ‘우리들’(2016년 개봉)까지,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관계를 통찰해온 윤가은 감독의 장점이 여전히 살아 있는, 어린이의 시선에서 본 가족 이야기다. 어른들은 어린 애들이 뭘 알겠냐 싶겠지만 하나와 유미네 자매는 그들 나름대로 가족 위기를 인식하고 걱정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로 도우며 최선을 다한다.

물론 하나 부모의 갈등이나 유미네 집이 이사해야 하는 상황은 어린아이들이 어쩔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리다고 해서 잠자코 부모의 처분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보통의 가족영화가 어린 자식들을 그저 보살피고 돌봐야할 대상으로 그리는 데 반해, ‘우리집’은 12세 하나부터 7세 유진까지 어린소녀들이 직접 행동하며 위기를 돌파하는 용기 있는 주체로 그린다.

카메라의 모든 앵글과 시점이 어린이 눈높이인 덕에, 하나와 유미네 자매를 지켜보는 어른 관객들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어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어른들 속사정이나 세상물정은 잘 몰랐지만 나름 고민과 갈등이 있었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애쓰던 어린 나를 만나는 경험은 어른이 된 지금 내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어린아이 역시 독립된 주체이고 존중받아야할 존재라는 걸, 하나와 유미네 자매를 보며 자연스레 깨닫는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어린이는 어른들 이야기를 돕는 도구로 쓰이곤 했다. 심지어 어린이 영화라고 장르가 구분되는 영화에서조차 어린이는 어른의 욕망과 편견을 반영한 대상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윤가은 감독은 한국 영화에서 어린이를 온전히 독립된 주체로 그려내는 어쩌면 유일한 감독이 아닐까 싶다. 여느 오디션과 달리 아역 배우들이 주어진 대본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상황극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했다는 캐스팅 과정부터 아역 배우를 대하는 특별한 수칙까지 만들어 전 스태프가 아역 배우들을 존중하는 촬영장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영화 뒷이야기를 들으니, 우리집 같은 영화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나와 유미네 자매에게 닥친 ‘우리집’의 위기는 이들의 노력에도 극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그녀들은 서로 상대방의 상처를 알아봐주고 손을 내밀었다. 함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 울타리와 버팀목이 돼주었다.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 지지하는 존재가 돼주며 위기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와 유미, 유진은 한 뼘 더 자랐을 것이다. 아이들이 만든 종이 집은 부서졌지만 하나와 유미, 유진의 또 다른 ‘우리집’은 지혜롭고 건강하게 성장했을 테니, 그것으로 됐다. 충분하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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