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시원한 한 방
[시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시원한 한 방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9.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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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민지 인천청년유니온 위원장
선민지 인천청년유니온 위원장

[인천투데이] 8월 29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68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이 처음 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다양한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정규직화’라는 기대에 차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자회사 설립을 지켜보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하겠다는 그 ‘개혁’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정부 산하 공사가 앞장서서 자회사를 설립하니 민간 기업들도 정규직 전환에 발맞춰줄 필요는 없었다. 화학섬유식품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는 사실상 본사인 ‘SPC’ 직원들에게 직접 지시를 받은 불법파견의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PB파트너즈’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제안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15년 전에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억 씨는 기아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30일 넘게 단식농성 투쟁 중이다.

이 와중에 한국도로공사 불법파견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왔고, 이 판결은 그야말로 정규직 전환에 지지부진했던 현 정부에 보기 좋게 한 방 날려준 셈이 됐다.

자회사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대법원이 불법파견 판결을 내리더라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윽박지르던 한국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가면을 바꿔 썼다.

그런데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원래 도로공사 정규직이었다. 이들은 어쩌다 비정규직이 됐을까? IMF 이후 불어 닥친 비정규직 양산을 톨게이트 노동자들 또한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루아침에 외주 용역업체 비정규직이 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다시 써야했다. 사실상 해고와 입사의 반복이다.

10년을 열심히 일한 노동자는 이제 갓 입사한 노동자와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로공사를 정년퇴임하고 복리후생이라는 명목으로 톨게이트 하청업체를 돌려가면서 운영한 하청업체 사장들은 톨게이트 안에서 왕으로 군림했다. 하청업체 사장의 아침식사부터 회식이 끝난 후 대리운전까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도맡아 해야 했고 매해 김장철만 되면 김장을 따로 해 갖다 바쳐야했다.

공공부문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실시한 외주화는 그렇게 10년이 넘게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견뎌온 끝에 마침내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도로공사는 노동조합에 협박을 일삼았고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제는 이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비롯한 공공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에 정부가 답할 차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저 분풀이를 할 수 있는 ‘샌드백’ 정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묵직하고도 시원한 이 한 방이, 노동존중시대를 말하던 정부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한 방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