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LAC 그라피티 크루 '레오다브'와 '반골'
“통일되면 평양에 최초로 그라피티 남기고 싶어”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미국에서 시작한 ‘그라피티(Graffiti)’는 저항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거리예술이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거리와 골목 등의 벽면에 사회적 억압과 차별, 편견에 맞선 생각과 감정을 ‘낙서’로 표현한다. ‘낙서’라는 사회적 인식이 지금은 ‘예술’로서 대중에게 수용되고 있는데, 그 뿌리는 미국 할렘의 흑인들이다. 힙합 음악ㆍ춤과 접목해 발전했다.

한국에 힙합 문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때는 1990년대다. 젊은이들이 환호했다. 힙합 음악은 상업적으로도 발전했으나, 그라피티는 극소수 마니아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인천에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있다. ‘LEODAV(레오다브, 본명 최성욱)’이다. 그는 국내 그라피티 분야 1세대로 명성을 쌓았다. 특히 올해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맥을 함께하는 그의 독립운동가 인물 작품이 주목받고 있다.

‘VANGOL(반골, 황은관)’과 ‘DASOLWORKS(다솔워크, 한다솔)’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 이들의 작품이 외교부와 관공서 등에 걸려 시선을 끌었고, 많은 사람의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사진작가 ‘KING OWL(킹오울, 임진수)’도 멤버다.

LEODAV(최성욱, 오른쪽)와 VANGOL(황은관)

저항 예술 ‘그라피티’와 만남

힙합 문화의 기본정신은 저항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왜그(Swag)’다. 스왜그는 ‘나를 알리다’라는 뜻인데, 그라피티 아티스트는 작품에 ‘태그네임’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드러낸다. ‘레오다브’와 ‘반골’처럼 태그네임을 사용한다.

레오다브는 1998년부터 그라피티를 시작한 1세대라 할 수 있다. 대학생 때 힙합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라피티를 접했다.

“힙합 음악을 듣다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영상 배경에 그라피티가 나오는 것을 봤다. 반해서 그라피티를 시작했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라피티의 본질은 낙서다. 길거리와 골목 문화이고, 저항의 표현이었다. 현재 예술로 승화돼 국내에는 소수가 활동한다.”

레오다브는 2년 전에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작업하면서 반골을 만났다. 다솔은 2007년 동인천 송현시장 작업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던 다솔이 노트에 스케치를 해왔다. 사실상 첫 제자다.

“그라피티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내 작품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다. 어떤 미술 장르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또, 수정하고 덧칠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구상한 스케치를 망쳐도 다시 그리면 되기에 자유롭다. 어차피 낙서 아닌가.”

그라피티는 벽에 스케치하는 게 기본인데, 현재는 컴퓨터로 도안이나 스케치를 하는 등, 디지털 작업도 병행한다. 작품 활동과 더불어 수입도 따라와야 하기에 굿즈(goods)를 제작하거나 행사ㆍ전시를 하기도 하고 디자인 작업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 했더니, 레오다브는 “몇 년 전에 그란 ‘산타 김구’다. 사실 인천 중구에도 그렸는데 지워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옆에 그렸다는 게 지운 이유다. 김구 선생님 웃는 얼굴 사진을 모티브로 산타 모습으로 변형해 그렸는데 나름 잘 어울렸다. 친숙함이 있어서 사람들 반응도 좋았다”고 말했다.

반골은 “나는 경력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영광스럽게도 외교부 청사에 걸린 김규식 선생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큰 만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타 김구.(사진제공 LAC)
외교부 청사 작품.(사진제공 LAC)

독립운동가 주제 작품으로 국내외 명성 쌓아

올해는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이들의 작품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그 배경이 궁금했다.

“올해 100주년이라서 특별히 작업한 것은 아니다. 2013년부터 시작했고 현재까지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성장했을 때를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어떤 잘못된 정치ㆍ사회적 인식이 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면 어떻게 할까를 가정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님을 검색하면 좋지 않은 키워드가 나오기도 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반골이 말을 이었다.

“우리 작품은 가장 공공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형태이고 많은 사람이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기존 흑백사진이나 수묵화 등의 느낌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색채와 방식을 이용해 우리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기에 평가가 좋다.”

이들은 러시아ㆍ중국ㆍ일본 등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팬 층도 두텁다.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로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NO 아베’ 이슈로 여론이 뜨거운데, 이와 관련해서도 말을 꺼냈다.

“일본 도쿄 디자인 페스타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는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갔고, ‘동양평화론’을 주제로 작업했다. 잘못을 바로 잡아 올바른 길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국민들이 합심하면 어려움도 이겨내리라 본다.”

광화문 작품.(사진제공 LAC)
광화문 작품.(사진제공 LAC)

문화 불모지 인천에서 ‘예술’하기

이들은 최근 인천 중구로부터 ‘김구 거리’ 조성과 관련한 제안을 받았다. 이 사업은 백범 김구 선생이 투옥됐던 인천감리소 터를 중심으로 그를 기리기 위한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 계획과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이 사업에 그라피티 작업이 포함되면, 이들이 인천에서 하는 첫 작품이 된다.

“인천에는 그릴 곳이 없다. 프리존에서 작업하는데, 자유롭게 작업할 공간이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허락하는 프리존이나 청년들이 작업할 수 있는 창작공간이 필요하다. 인천은 거의 불모지다.”

인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은 ‘인천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부산사람과 광주사람은 지역성과 강하게 연결돼 회자된다. 하지만 인천사람은 ‘인천에 사는 사람’ 정도로 언급된다.

“인천에 터전을 잡고 활동하는데, 다른 지역 예술인들이 ‘인천에서 왔다’고 하면, ‘아니 왜’라는 반응이다.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편견과 이미지가 팽배하다. 인천에 사는 사람들도 스스로 답답해하고 인천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인천이 가진 인프라와 역사, 무형의 자산을 더욱 부각하고 콘텐츠화한다면 지역 특성을 충분히 살려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오히려 불모지이고 개척정신이 발휘될 있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환경이 그러하다면 우리가 개척하자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라피티로 우리가 문화유산이 되자. 우리가 문화재가 되자 하는 생각을 갖고 인천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향후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 짧게는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이다. 꾸준히 활동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선보이고 싶어 한다. 더불어 남북이 통일된다면 최초로 평양에서 그라피티 작업을 하고 싶어 한다.

“독립운동가와 관련해 아직까지도 조명할 인물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인천은 북한과 접경지역이다.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한 작업을 하고 싶다. 통일이 된다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평양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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