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스쿨미투 1년 후 간담회, "연대 못해 미안했다"
인천 스쿨미투 1년 후 간담회, "연대 못해 미안했다"
  • 정양지 기자
  • 승인 2019.08.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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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없는 학교를 위한 교사 간담회’ 열려
매뉴얼대로 해결‧교사에게 성찰기회 주어져야
인권은 불편해야 발전…교사끼리 연대도 필요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인천지역 '스쿨미투' 운동이 확산된 지 1년이 지난 후 교사와 졸업생, 여성단체가 진행한 간담회에서 여러 교사들이 "연대하지 못해 미안했다"는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인천여성의전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인천여성연대는 지난 22일 오후 부평생활문화센터에서 ‘스쿨미투 참교육을 다시 묻다’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진행은 스쿨미투를 기록한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의 발행인 국지혜 열다북스 대표가 맡았으며, 인천 초‧중‧고 교사와 스쿨미투 발생 학교 졸업생, 전교조 조합원, 여성단체 활동가 등 10여명이 참여해 성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았다.

국지혜 대표는 간담회를 열며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를 쓰는 동안 아쉬웠던 점은 스쿨미투에 참여했던 학생과 부모의 이야기 말고 교사들의 목소리는 싣지 못했다는 것이다”라며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도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같이 의견을 나눠야 된다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간담회 말미에 국 대표는 "스쿨미투 통계를 보면 가해교사의 대부분이 남성이다. 또, 피해자 대부분은 여학생이다. 이는 분명 젠더권력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라고 한 뒤 "하지만 오늘도 이 문제를 논의하러 나온 사람은 여성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는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연대하지 못해 미안했다

박미애 약산초등학교 교사는 “스쿨미투 때 여러 교사들과 얘기하면서 느낀 점은 학생과 교사 간, 교사와 학교 간, 학교와 교육청 간의 위계질서가 중추기관처럼 심어져있다는 것이었다”며 “왜 많은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안심하고 말할 수 없는지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들은 스쿨미투를 공감하는 사람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사람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엔 ‘교권 침해’라는 두려움이 내재된 것 같다”며 “스쿨미투가 교사와 학생 간의 대립 구도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양쪽 다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생에겐 발언권이, 교사에겐 성찰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스쿨미투 운동이 일어났던 고등학교 졸업생 A씨는 “우리는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어 스쿨미투를 시작한 것이지 선생님들을 깎아내리려고 시작한 게 아니다”라며 “학생들과 함께 개선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움츠리기만 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당시 아이들이 한 가해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 교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실망한 아이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넣으니 그제서 사과했다”며 “외부의 압박으로 사과한 그 사람이 정말 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성찰의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교사 B씨는 “당시 교사들 중엔 스쿨미투를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그걸 계기로 학생들과 담을 쌓는 사람도 있었다”며 “다들 차별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오다가 갑자기 스쿨미투가 일어나니 처음에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때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부평생활문화센터에서 '스쿨미투 참교육을 다시 묻다'라는 주제로 '성폭력 없는 학교를 위한 교사 간담회'가 열렸다.
지난 22일 부평생활문화센터에서 '스쿨미투 참교육을 다시 묻다'라는 주제로 '성폭력 없는 학교를 위한 교사 간담회'가 열렸다.

대응 매뉴얼과 발언기회 공존해야

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은 “스쿨미투에 대해 전교조 내에서도 의견이 다양하게 갈린다. 저마다 조금씩 찬성과 반대가 섞여있어 일반화하기 쉽지 않다”며 “예전엔 그게 폭력이고 차별인지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교사들도 느끼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권은 ‘불편함’을 느껴야 앞으로 나아간다. 스쿨미투가 당장은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그렇기에 필요하다”며 “(간담회에)오는 동안 ‘스쿨미투 관련 교육청 매뉴얼만으로 학교가 바뀔 수 있을까? 교사들은 과연 매뉴얼을 통해 충분히 반성하고 스스로를 돌아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C씨는 작년에 겪은 일이라며 “어느 날 전담교사 수업이 끝나고 반 아이들이 화가 난 상태로 교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교사가 식물을 가르치면서 한 수업자료를 보여줬는데, 누가 봐도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한 과일사진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분노가 치밀어 교무실로 가 항의했지만, 제일 먼저 돌아온 대답은 ‘일단 알겠다. 교실로 가서 학생들을 진정시켜라’였다. 만약 매뉴얼이 있었으면 그 상황을 해결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거라 본다”며 “매뉴얼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해결한 뒤 공동체성을 어떻게 회복하는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 D씨는 “우리는 매뉴얼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교사는 젠더감수성을 스스로 깨우쳐야 하고, 학생들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편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조금씩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편함을 견딜 힘

고등학교 교사 E씨는 “성평등한 학교가 되려면 매뉴얼만으로 안 된다. 학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성평등 문화가 조성되는 거랑 매뉴얼은 크게 관련있지 않는 것 같다”며 “편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려면 교장과 교감 등 학교 내 기득권이 권위를 내려놓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교사 F씨는 “한 교사가 다수의 학생을 통제해야 하는 ‘교실’이라는 상황에서 권력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교실 내 권력 문제는 스쿨미투 발생 이전부터 존재하던 거다”라며 “학교 현장은 관료주의가 심해 백래시(backlash=사회의 진보적인 변화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도 그만큼 거세다. 성평등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려운 이유인 것 같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교사 G씨는 ‘불편함을 견딜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제기한 문제를 받아들이는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누군가 나를 지적하면 방어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교사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학생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교사가 사과하고 아이들의 상처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G씨는 이어 “두 번째로, 동료 교사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딜 힘이 필요하다. 학교 현장은 매우 경직돼있고 위계질서가 뚜렷하기 때문에 소수의 목소리를 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라며 “교사들 서로 연대해야 한다. 안전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생기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교사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한편, 학교에서 발생한 성차별‧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는 '스쿨미투' 운동은 지난해 5월 인천지역 중‧고등학교 10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인천시교육청은 스쿨미투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성폭력‧성희롱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시교육청은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들 중 일부를 징계하거나 경찰에 고발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