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지 않은 몰락'
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 사계절 | 2018.12.

[인천투데이 이권우 도서평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현상은 예의주시했지만, 그 원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오래된 이야기라면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로 해갈하기는 하지만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럴 때는 전문가가 대담을 나눈 책을 보면 좋다. 시사성을 띠면서도 좀 더 근원적인 분석과 해법을 제시하니까 말이다. 일본의 실천적인 지성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의 대담을 담은 ‘위험하지 않은 몰락’을 흥미롭게 읽었다. 국민국가가 해체되는 상황에서 미래를 어떻게 전망해야하는지 도움이 되는 말이 많아서였다.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액상화한 근대국가란 말이다. 액상화는 아마도 근대성 약화나 퇴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바우만의 액체 근대라는 말에서 따온 듯싶다. 본디 견고했으나 이제는 흔들리는, 또는 무너져 내리는 무엇이라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두 사람은 빈체제에서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유럽의 역사를 일러 ‘100년간의 평화’라 한다. 그리고 19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를 ‘발전의 200년’이라 본다.

문제는 그 이후다. 냉전체제가 해체된 다음 펼쳐진 급격한 세계화는 국가의 힘을 약화했다. 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그러면서 낙수효과를 떠벌였지만, 부의 분배는 이뤄지지 않고 시장경제의 패배자를 양산했다.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국가는 그동안 담당했던 재분배 기능을 더는 맡지 못했다. 그 결과 나타난 현상이 빈번한 난민 출현이다. 국가 해체의 한 징후인 셈이다. 다른 현상으로는 분리독립운동이다. 스코틀랜드, 카탈루냐, 바스크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근대국민국가의 성격을 결정지었던 프랑스나 미국의 우경화도 한 현상이다. 극우의 토대가 무너져나가자 ‘그에 대한 불안함과 절망감’이 과격하게 나타났다는 것.

이제 세계는 의사(疑似)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국지전과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이다. 한데, 이 위기 상황에서 도리어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다. “경제성장론자는 궁극의 성장산업은 무기 산업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 사람은 이 상황을 한마디로 도착(倒錯)이라 이름 짓는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없다는 점이다. 전쟁도 테러도 근절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치다 타츠루는 말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에서 희생되는 군인과 민간인의 수, 테러로 살해당하는 시민의 수를 어떻게 줄여갈지 기술적으로 또 계량적으로 고민하는 일이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거지요.”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게 마련인데, 두 사람은 국가가 해체되고 제국으로 분할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위적인 국경을 넘어 종교와 언어, 생활과 문화를 공유하는” 몇 개의 제국권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러시아제국, 중화제국, 오스만제국, 페르시아제국, 무굴제국, 독일제국, 미국제국 등으로 재편되리라 전망한다. 역설인 것은, 제국으로 분할하면서 오히려 지역공동체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제국의 신민이 한 동포라고 의식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큰 탓이다. 우치다는 지역 생활문화의 동일성을 기초로 형성된 공동체를 미국식 ‘주’ 개념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연합국가로 일본을 상정하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이 책에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일본 특유의 파괴 욕망은 ‘사쿠라 진다’에서도 동일하게 말해진 바 있다. 의사 전시체제에서 이슬람 문명이 주는 교훈에 주목해야 할성싶다. 그들에게는 ‘희사의 문화’와 ‘환대의 문화’가 있다. 지구차원의 비극을 치료하는데 이만한 정신은 없다. 또 하나는 영국에 관한 신선한 해석이다. 영국이 제국으로서 식민지를 수탈한 역사적 죄과는 분명히 물어야한다. 그런데 영국이 세계제국을 일국으로 축소하는 데 성공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한단다. 어떤 정신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위기를 넘어서는 지혜를 안겨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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