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를 위한 변명 ① GM의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한 GM대우

연재순서
GM, 대우차 인수한 뒤 뭐했지?
② 문제는 유동성이 아니라 GM의 파산절차(상/하)
③ 높았던 ‘공기업화’ 여론, 매각에 눈먼 민주당
④ 2009 GM대우, AGAIN 1999 대우자동차
⑤ GM, 예상대로 '파산보호’…GM대우는?
GM대우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4ㆍ29재선거까지 겹치면서 각 정당과 후보들이 GM대우관련 여러 지원책과 공약들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GM대우 살리기'를 통해 표를 얻으려는 구호에 불과하다. 가장 마음을 졸이는 이들은 GM대우 노동자와 더불어 1만여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그리고 인천시민이다.

 오는 6월 오바마 미국정부가 GM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GM대우의 운명도 달라진다. 미국 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는 더 이상 신자유주의가 만능이 아님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미국 정부 역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보이는 손의 조치를 확대하고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등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 든다.

 오바마 정부와 GM의 채권단이 걱정하는 것은 자국의 산업이지 한국경제가 아니다.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경제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한국정부와 GM대우의 한국채권단이다. GM대우 위기와 관련해 우리가 직시해야만 하는 점들을 지난날로부터 차근차근 짚어봤다. <편집자 주>

GM대우, 6년 넘었지만 여전히 내수 10% 불과

미국 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불황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업계 2009년 1분기 판매 실적은 예상대로 저조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따르면, 현대자동차ㆍ기아자동차ㆍ르노삼성ㆍ쌍용자동차ㆍGM대우 등 5개 국내 완성차 업체 판매 실적은 총 68만 6221대로 집계됐다. 지난해에 비해 무려 32.1% 감소했다.

특히, 모기업인 GM의 파산보호 신청을 눈앞에 두고 있는 GM대우의 경우 지난해보다 43.8% 감소한 13만 5489대(내수 1만 8576대, 수출 11만 6913대)를 기록했다.

이에 따른 1분기 내수시장 점유율은 현대차가 50.3%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기아차 30.9%, 르노삼성 9.2%, GM대우 7.2%, 쌍용차 1.9% 순으로 나타났다.

현대차의 경우 2009년 1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내수는 18.3%, 해외는 12.2%가 감소해 전체적으로 13.5% 줄었다. 기아차의 경우 내수는 신차 판매의 영향으로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6.6% 증가했다. 다만 수출이 24.1% 줄어 전체적으로 17.4%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차에 이어 두 번째로 양호한 실적이다.

현대ㆍ기아차와 GM대우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ㆍ기아차가 상대적으로 다른 3개 완성차에 비해 양호한 실적을 거둔 것은 다양한 차종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내수시장 기반과 수출 경쟁력 있는 모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GM대우는 내수시장의 효자라고 할 수 있는 경차시장에서 마티즈 후속 모델 출시가 늦어지며 자리를 기아의 '모닝'에 내줬다. 기아차는 모닝의 선전에 힘입어 올 3월까지만 뉴모닝은 총 2만 3136대를 판매해 쏘나타(2만 2918대)와 아반떼(2만 2715대)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한편, GM대우는 2002년 출범 후 내수시장 점유율은 2002년 12월 10.1%, 2003년 4월 10.8%, 2004년 3월 10.1%를 기록했다. 2006년 말 내수시장 점유율은 2005년보다 1.2% 증가한 10.5%를 기록했으며 이후 2007년에는 10.7%, 2008년 말 10.1%를 기록했다. GM대우가 출범한 후 내수시장 점유율은 10%안팎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 시절 내수 점유율은 30%내외를 유지했다. 대우자동차가 우여곡절 끝에 GM에 매각되면서 내수 비중은 점차 줄어든 반면 수출 물량은 늘었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GM대우의 내수판매는 11만 6520대로 전체 판매량 190만 5088대의 6.1%에 불과하다.

2003년 당시만 해도 내수 판매비중은 20%를 넘었지만 이후 GM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바뀌면서 수출물량은 연평균 30%이상 늘었다. 때문에 대우가 2002년 GM에 매각된 후 GM대우가 GM의 오이엠(OEM: 주문자 상표 부착생산방식) 생산기지로 전락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우차를 통해 다시 읽는 GM의 냉혹함

대우자동차가 99년 8월 워크아웃이 결정되고, 2001년 가을 최종 부도처리 되기 전 상황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경영을 앞세워 동유럽시장을 개척할 때다.

대우는 92년 GM과 결별 선언 후 그해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했고, 94년 영국의 워딩기술연구소와 독일의 뮌휀연구소를 인수했으며, 급기야 95년 GM과 경쟁 끝에 폴란드 국영자동차회사 FSO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대우가 세계 자동차 메이커인 GM의 유럽전략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또 하나의 도요타(New Toyota)가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97년, 대우는 유럽에서 GM과 맞붙어 우크라이나의 압토자즈(Auto-Zaz)를 인수하며 승승장구했다. 98년에는 쌍용자동차까지 인수하며 대우자동차와 김 회장의 ‘세계경영’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했다.

하지만 예측과 달리 신흥시장으로 불리던 인도와 중국의 성장이 늦춰지고 동유럽의 경제성장이 더디면서 97년, 98년 당시 해외공장의 가동률은 고작 30~40%를 맴돌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외환위기가 터졌고 이에 대우자동차 채권단이 신속하게 자금을 회수하면서 대우자동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정부와 채권단으로 구성된 매각 협상단은 2001년 9월 매각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까지 GM에 줄곧 끌려 다니며 결국 2002년 8월 고작 4억달러(자산매각 대금 12억달러는 2011년부터 상환)에 매각하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9년, 수출을 통해 2005년 흑자전환 이후 2007년까지 누적 당기 순이익 6000여억원을 올리며 성장하지만 2008년 경제 불황이 엄습하자 GM대우는 10%안팎에 불과한 내수를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판매망도 갖추지 못한 채 GM에 100% 의존하는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 GM대우노조 전 간부 L씨는 “당시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과 외환위기 파국이 대우차를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GM이 대우를 인수하고 나서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내수시장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경영 전략을 펼쳤다고 볼 수는 없다”며 “GM은 대우차 인수당시부터 대우차가 지닌 생산능력(미국 노동자에 비해 저렴한 임금과 시간당 생산대수 등)을 보고 생산기지화를 꿈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GM과의 질긴 악연, 생산기지화는 30년 전부터 시작

대우차와 GM의 질긴 인연은 지난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자동차는 그해 GM에 지분 50%를 넘기면서 GM코리아로 바뀐다.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국내 자동차업계 1위를 달리던 신진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합작파트너인 도요타가 중국의 ‘저우언라이 4원칙’(대만이나 한국과 거래하는 업체와는 사업하지 않겠다)에 자극 받아 철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자동차업계는 기아차가 첫 종합자동차공장인 소하리공장을 지어 엔진을 국산화하던 때고, 현대는 고유모델인 포니를 개발하면서 앞서갈 때다. 이에 반해 GM코리아는 ‘시보레1700’의 부품을 들여다 조립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윽고 70년대 석유파동이 닥치자 연비가 약했던 시보레는 현대의 포니나 기아의 브리사를 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GM은 해마다 75만달러의 경영지도료와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거둬갔다. 결국 GM코리아는 경영난으로 76년 산업은행 관리대상기업으로 전락했다.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회사명이 새한으로 바뀌긴 했지만, GM은 여전히 현지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78년 산업은행과 GM이 50%씩 지분을 갖고 있던 새한자동차의 산업은행 지분을 인수해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982년 회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바꿨다.

1980년 전두환 정부의 ‘중화학공업 합리화조처(중소형 상용차는 기아로 일원화, 승용차는 현대와 새한으로 이원화)’로 대우차는 현대와 함께 자동차업계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때도 GM이 모델 개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현대가 독자 모델인 포니로 승부를 걸었던 데 비해 대우는 1986년 GM이 개발한 오펠 카데트를 들여와 이를 바탕으로 르망 생산에 들어간 것. 즉, 대우차의 독자적인 신차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이 매번 막혔던 것은 GM 때문이다. 이는 대우차를 단순한 생산 하청기지로 활용하려던 GM의 계획이었다.

이에 김 회장과 대우차는 1992년 GM의 지분을 사들여 GM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4년 동안 신차개발에 집중해 영원한 국민차 티코를 출시했고, 이후 1996년 말 대우차의 3총사라 불린 라노스ㆍ누비라ㆍ레간자를 동시에 내놓았다. 하지만 과욕이 불러온 무리한 사업 확장과 IMF외환위기 도래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GM대우 온데 간 데 없고, GM만 나부껴

2001년 가을 최종 부도 처리된 대우자동차는 채권단이 GM측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다 결국 헐값에 2002년 4월 GM에 팔렸다. 1982년 ‘대우자동차’ 이름을 내건 지 20년 만에, 1992년 GM과 결별한 지 10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6개월 후 2002년 10월 17일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가 공식 출범을 알렸다.

GM은 대우차를 인수하던 당시 ▲GM대우의 한국 내수시장 점유율을 부도사태 이전 대우차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국내외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신차 개발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GM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해외 판매 레버리지를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중 그나마 실현됐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수출물량의 확대뿐이다. 이마저도 GM대우 브랜드가 아닌 시보레나 뷰익 등의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로열티가 얼마인지 공개되진 않았으나 막대한 금액을 매년 GM에 지불하고 있다.

GM대우로 다시 태어난 ‘대우차’는 차종의 다양성과 기술력에서 아쉬움이 컸던 터라 GM에 인수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기대가 컸다. 특히 중형급(토스카ㆍ소나타 등) 승용차의 파워트레인(엔진ㆍ트랜스미션 등 자동차의 구동부분)과 SUV 등 대우차가 경쟁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에서 GM의 선진기술 이전이 관심사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GM대우 신차 개발 업무를 맡았던 한 간부는 2004년 5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GM측 임원 중에 탄탄한 엔지니어 경력을 지닌 인물은 한 명도 없다. 자동차회사의 근간은 기술개발인데 이에 대한 의지가 안 보여 GM이 도대체 어떤 전략을 갖고 들어온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한 뒤, “GM의 생산관리 시스템이나 구매 시스템 등은 이미 도입됐지만 대우차 방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고 말했다.

2009년, GM대우는 여전히 생산기지일 뿐

이 같은 사정은 2009년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우차 시절 독일 뮌헨연구소에서 대우차 개발을 담당했던 GM대우 관계자는 17일 <부평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현재 GM대우를 대표하는 라인업(차종)이 마티즈, 토스카, 라세티, 젠트라, 윈스톰, 다마스ㆍ라보 등인데 이 모든 것은 대우차시절 개발 프로젝트였다”며 “그래도 GM이 기술개발에 투자했다는 것을 찾아보라면 마티즈 후속모델인데 이마저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생산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최초 직렬6기통 알루미늄 엔진을 단 ‘매그너스’는 대우자동차 시절 뮌헨연구소 작품이다. 프로젝트명‘V’로 탄생한 ‘매그너스’는 ‘토스카’로 바뀌었지만 똑 같은 엔진에 똑 같은 언더바디(플랫폼)다. 프로젝트‘J’시리즈로 탄생한 ‘누비라’가 훗날 ‘라세티’로 바뀌었고, ’T'시리즈인 ‘라노스’가 칼로스를 거쳐 ‘젠트라’로 바뀌었는데 이 모두가 토스카처럼 기본골격은 다 똑 같다. 즉, 대우자동차가 개발한 것에 외형과 내부 편의사양을 일부 추가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프로젝트‘M’에 의해 탄생한 ‘마티즈’와 ‘레조(단종 됨)’는 대우자동차의 영국 워딩연구소에서 개발한 차종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 역시 대우자동차의 작품이다.

GM대우의 유일한 SUV인 윈스톰 또한 대우자동차가 개발 중이었던 것으로 뮌헨연구소 출신 K씨에 따르면 “당시 대우자동차는 이미 디젤엔진 개발단계에 있었다. GM이 한 일은 ‘저렴한 노동으로 고급기술을 탄생시킨 대우차의 능력’에 칠을 더해 생색낸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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