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서울시 중구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도심 곳곳에 ‘NO 재팬’ 배너기를 걸었다가 하루 만에 내린 바 있다. 중구청장은 당초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수 시민의 생각은 달랐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찬성하지만,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이 불쾌해할 것이고 일본과 관계를 더욱 악화하며, 일본의 경제 보복에 찬성하는 일본 시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울러 ‘시민들이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자 나선 자발적 불매운동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나서서 불매운동을 조장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결국 중구청장은 ‘일본정부의 경제 보복에 국민과 함께 대응한다는 취지였는데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와 비교할 만한 일이 일주일 뒤 인천 남동구에서 벌어졌다. 남동구 주민들이 김구 선생의 호를 딴 백범로 가로수에 각자 이름으로 족자 형태의 ‘NO 아베’ 현수막을 걸었는데, 하루 만에 남동구가 모두 떼어버렸다. 시민단체들은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백범로를 ‘NO 아베 거리’로 만들기 위해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주민들에게 현수막 제작ㆍ게첩을 신청 받아 13일 게시했다. 짧은 기간에 주민 167명이 역사왜곡과 경제침탈을 자행하는 아베정권을 규탄하는 일에 성원을 보내며 자신의 이름으로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신청했다.

남동구가 이 현수막들을 철거한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이기도 했다. 남동구가 현재 국민정서를 모를 리 없을 텐데, ‘NO 아베’ 현수막을 모두 철거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단체가 현수막을 걸기 전에 남동구에 취지를 알리고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냈고, 구청장 재량으로 광복절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 만큼 명분도 있는데 말이다. 남동구 담당부서가 밝힌 철거 이유는 ‘민원이 수차례 제기돼서’였다. 지정된 게시대가 아닌 가로수 곳곳에 걸려있는 각종 현수막들은 놔두고 ‘NO 아베’ 현수막을 콕 집어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또한 남동구가 그 민원을 받아들인 바탕엔 ‘불법 현수막’이라는 판단이 깔려있을 텐데, 상업광고용 현수막들마저 그냥 방치하고 있는 행위는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부평구에서도 같은 내용의 족자 현수막을 같은 방식으로 가로수에 걸었다. 하지만 부평구는 철거하지 않았다. 적용하는 법규가 서로 달라서인가.

관이 직접 나서서 하지 못하는 것을 시민들이 대신하는 것에 행정이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합리적 태도 아닌가. 그 유연성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시민정서여야 한다. 남동구의 이번 행정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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