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 (12)

[인천투데이]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맥주에서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상큼하고 쌉싸래한 맛은 홉의 사용이 보편화된 이후에 갖게 된 맥주의 특성이다. 또한 라거가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맥주로 자리 잡은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맥주의 특성은 대체적으로 산업혁명 이후에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홉 사용과 라거 등장은 산업혁명 이전이었으나, 이들이 보편적인 맥주로 자리 잡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로 보는 것이 맞다. 또한 현대 맥주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사건들이 18세기와 19세기에 일어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맥주가 이 시기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맥주 양조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는데, 과학과 기술 발달로 맥주 양조에 과학적인 장비들이 도입됐다. 비중계와 같은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면서 맥주 양조의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이런 양조 기술의 발전은 양조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며 맥주가 본격적인 산업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몰트를 일정하게 볶는 기술의 발전은 현재 우리가 마시는 보편적 맥주인 밝은 색의 맥주를 가능하게 했다. 맥주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료인 보리는 자연 그대로는 맥주를 만들기 어렵고, 몰트로 만들어 당화시켜야한다. 몰트란 싹을 틔운 보리를 볶은 것을 칭한다. 몰트를 사용하는 이유는 발효를 위한 당을 보리에서 추출하기 위해서다. 그냥 보리를 사용하면 당을 제대로 추출해낼 수 없다. 보리를 물에 담가 놓으면 싹이 트는데, 이 과정에서 보리 내부의 효소가 발아를 돕기 위해 전분을 당분으로 전환시킨다. 원하는 상태까지 발아가 되면, 더 이상 발아가 되지 않게 건조시킨다. 싹이 튼 맥아에 열을 가해 건조시킨 보리가 바로 몰트다.

몰트를 만들기 위해 발아한 보리를 건조시키는 방법으로, 보리를 볶는다. 과거에는 주로 짚이나 나무 등을 사용한 불로 맥아를 볶아 건조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몰트를 볶으면 화력을 조절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기에 몰트가 타기 쉬웠고, 타버린 몰트를 사용해 양조한 맥주는 탄 맛과 함께 맥주의 색이 매우 어두웠다. 과거에는 모든 맥주의 색이 흑맥주에 가까운 어두운 색이었다. 따라서 맥주의 질도 균일하지 않고 들쑥날쑥했다.

맥주의 풍미, 흔히 몰티(malty)하다는 표현을 쓰는 맥주의 맛은 맥아를 건조시킬 때 가하는 열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낮은 온도에서 건조시킨 맥아는 색이 엷고 비스킷 풍미를 낸다. 중간 온도에서 건조한 맥아는 색이 좀 더 진해지며 캐러멜 맛이 난다. 높은 온도에서 맥아를 볶으면 색이 더욱 진해지며 초콜릿이나 커피 맛을 내게 된다. 따라서 몰트를 볶는 기술은 맥주의 맛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기술과 장비가 발달하기 전에는 몰트를 적당하게 볶기 어려워 대부분 검게 탄 몰트를 사용했기에 맥주는 진한 흑맥주 색에 가까웠고, 맥주의 풍미도 균일하지 못했다.

산업혁명으로 기계 산업이 발달하고 몰트를 만드는 도구가 등장하면서 맥아를 적절하게 볶을 수 있게 됐고 효율도 높아졌다. 또한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영국에서는 몰트를 볶을 때 석탄의 일종인 코크스를 사용했는데, 이 방식을 사용하면 보리를 적절히 볶을 수 있어서 기존에 타버린 몰트로 만든 어두운 색의 맥주보다 훨씬 밝은 색의 맥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맥주가 페일 에일(pale ale)이다. 창백한 맥주라는 이름 그대로 타버린 맥아를 사용한 기존 흑맥주에 비해 창백한 색깔의 맥주다. 영국 맥주가 개척한 페일 에일은 맥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스타일 중 하나이자, 현대 크래프트 맥주가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맥주 스타일이 됐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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