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인천투데이]7월 25일, 고려인동포ㆍ중국동포ㆍ난민ㆍ이주단체들이 모여 이주민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5일부터 한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한 이주민의 지역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이주민의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인 평균 지역건강보험료인 11만3050원을 부과하고 인도적 체류자는 30%를 경감하기로 했다. 또한 이주민은 주민등록이 돼있지 않다는 이유로 배우자와 미성년 직계자녀만 동일 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 체납액을 완납할 때까지 보험급여를 중단하고 4회 이상 체납했을 때는 체류 연장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토론회에서 바뀐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이 쏟아져 나왔다. 한 집에서 할머니, 부부, 성인 손자ㆍ손녀가 함께 살고 있는 중국동포 가족은 부부만 동일 세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한 달에 45만2200원이나 납부하게 됐다. 한 고려인 동포는 선천성 장애가 있어 일을 할 수 없는 성인 딸과 함께 살고 있어도 보험료 22만6100원을 매달 납부해야한다.

한국인은 지역가입자의 경우 같은 주소지에 주민등록이 돼있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세대로 간주된다. 섬ㆍ벽지ㆍ농촌 거주자, 65세 이상 노인, 등록 장애인, 실직자나 생활이 어려운 자는 보험료가 경감된다.

배우자와 자녀들이 동일 세대로 인정받는 것에도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동포의 경우, ‘우크라이나에서는 출생증명서와 결혼증명서를 재발급해주는 제도가 없기에 9개월 이내에 발급된 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다’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확인 공문과 함께 제출했는데도 아내와 딸은 개별적으로 가입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난민들은 대사관이 협조해주지 않거나 한국에 대사관이 없어서 타인에게 부탁해 서류를 구비해야하는데, 인도적 체류자인 한 시리아인은 서류를 발급 받기 위해 비용 100만~200만 원을 요구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담당공무원을 면담했던 한 발표자는 “이주민의 지역건강보험 의무가입은 이주민의 건강권 보장이 목적이 아닌, ‘문재인 케어’로 인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손실되는 보험료를 메우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다.

이주민 지역건강보험 의무가입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문제를 일으킨다. 농촌의 경우 농장주가 사업자등록증이 없어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이 소득과 상관없이 지역건강보험료 11만3050원을 납부해야한다.

한국이주인권센터에서도 건강보험제도 변경으로 생겨나는 문제점을 상담하면서 여러 차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관리공단에 문의하고 민원을 넣었다.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한 한인도적 체류자는 출산을 앞둔 부인과 자식을 피부양자로 등록하려했으나, 출입국외국인청에서 발급한 서류조차 인정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이를 문의하기 위해 통화한 건강보험관리공단 담당자는 “피부양자로 등록하기 어려우면 일단 지역건강보험 가입자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되물으며 “왜 피부양자로 무임승차 하려하느냐”라고 말했다가 항의하자 말실수라며 정정하기도 했다. 그는 외국인에게 왜 이런 혜택을 주느냐고 오히려 항의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이주민에게 폭력적인 건강보험제도는, 지금까지 이주민을 산업 도구로 활용하고 제도적으로 차별해온 한국 정부의 무감수성이 낳은 촌극이다.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람’으로 바꿔 개헌하자고 했던 정부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