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란 강화소창이야기협동조합 이사장
직물의 고장 강화, 소창 갤러리ㆍ길 등으로 명맥 이어야
소창 옷, 평범하고 서민적···관광과 연계하면 번성할 것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최근 강화군(군수 유천호)은 강화소창체험관을 새로 정비하는 등, 강화의 직물 역사를 부각하고 ‘소창’을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걸 모색하고 있다.

소창은 강화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면사(綿絲)로 만든 면직물을 일컫는다. 면사는 목화로 자아낸 실이며, 이를 평직으로 짠 원단으로 이불보ㆍ손수건ㆍ배냇저고리ㆍ속옷 등을 만들어 사용한다. 재질이 비교적 부드럽고 수분 흡수율과 항균성이 뛰어나 속옷ㆍ거즈ㆍ손수건 등 주로 피부와 맞닿는 직물로 활용한다.

7월 13~14일 도레도레 강화점 일대에서 열린 ‘제1회 강화 플리마켓’에서 선보인 소창은 츨리마켓을 찾은 이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이끌었다. 소창을 강화의 명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영란 강화소창이야기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 소창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창으로 만든 옷을 펼쳐 보이고 있는 김영란 이사장.

직물의 고장’ 강화, 소창으로 명맥 이어

김영란 이사장의 소창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강화에서 나고 자란 그는 소창이 화문석과 인삼 못지않게 강화의 자랑이라고 했다.

“강화 직물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자본이 세운 직물공장들이 번성하면서 발달했다. 소창은 그 명맥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는데, 해방 이후 관련 산업이 발달하고 합성섬유와 수입제품이 늘어나면서 현재는 관련 생산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화의 자랑인 소창을 되살려야한다.”

강화가 ‘직물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소창 생산이 번성했던 이유를 묻자, 김 이사장은 강화에 목화 재배를 대대적으로 했지 않았겠냐고 추정했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한테서 강화 목화에 얽힌 추억을 종종 듣는다. 읍내에 살던 여자들은 직물공장에 많이 다녔다. 소창 사업을 하면서 동네 어귀에 목화를 심어놨더니, 지나가시다가 당시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하시는 어르신들이 있다.”

강화 소창체험관. 소창의 역사를 알 수 있고 체험도 가능하다.

면직물은 무명ㆍ광목ㆍ면천 등으로 불리는데, 강화에서는 주로 소창으로 불렸다. 소창이라는 말은 ‘승정원일기’나 ‘고종실록’ 등에 고구라(故舊羅)라는 말로 등장한다. 고구라는 일본의 고쿠라오리(小倉織, こくらおり)에서 파생됐다.

강화는 1910년 일제강점기 시작과 함께 직물산업의 중심지로 부각했다. 기계를 도입하면서 면직물을 소창이라고 칭했다. 당시 강화에서 생산된 직물은 반포ㆍ필루비ㆍ마포 등 10여 종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장 서민적인 직물인 소창 생산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화에는 직물공장이 100여 곳 있었다. 현재는 아홉 곳만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옛 명성을 대표하는 조양방직은 현재 수많은 사람이 발길을 잇고 있는 카페로 변모했고, 평화직물은 강화소창체험관으로 꾸며졌다.”

목화를 만지며 좋아하고 있는 김영란 이사장.

“목화는 어머니 사랑, 소창은 따뜻함 그 자체”

김 이사장은 강화군이 운영한 도시재생대학에 다니면서 소창에 눈길이 갔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옛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생각했다. 그 때 소창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넘게 지났다.

“소창을 보면서 ‘이 좋은 소재로 왜 옷을 안 만들까’ 생각했다. 제주에는 갈옷이 있고, 풍기에는 인견이 있다. 강화 소창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강화 역사와도 이어져있기에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도 소창 생산이 사양화됐지만 옷과 넥타이 등 생활재로 활용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제 강화 소창도 주연으로 등극할 때가 됐다.”

김 이사장은 자신이 직접 만든 소창옷을 보여줬다. 생활한복처럼 품이 좋고 옷감은 기품이 있어 보인다. 감물 등 천연색소를 이용해 물을 들이고 자수를 놓거나 그림을 그려 넣으면 특별한 행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아주 잘 어울린다.

“올해 6월에는 청라뷰티페스티벌에서 패션쇼도 했다. 강화 중앙시장에서도 했다. 9월에는 송도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참가할 예정이다. 국립박물관에도 납품했다. 사람들의 호응과 관심도가 높다.”

소창을 생산하는 강화 은성직물 공장 내부 모습들.

김 이사장은 소창옷으로 강화의 특색을 더욱 살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강화 관광안내소와 강화에서 진행하는 축제에서 행사 요원이나 관계자들이 모두 소창옷으로 유니폼을 입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 전주 등 주요 관광지에 가면 한복을 체험하는데, 관광객들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소창옷을 입고 강화 관광에 나선다면 강화 소창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살아서 한 필, 죽어서 한 필’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기저귀로, 죽고 난 후에는 관끈으로 쓰이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소창은 일상에서 가장 친근하고 가깝게 사용하던 직물이고 활용도가 높았다. 화려하지 않고 따뜻하다.

“소창은 목화로 만드는 면직물이다.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 사랑’이다. 목화솜으로 이불을 만들어 덮으면 추운 겨울에 따뜻하고 포근하게 잠을 청할 수 있어, 그 꽃말을 이해할 수 있다. 강화 소창은 그러한 목화의 따뜻함, 그 자체다.”

목화 꽃은 8~9월에 피는데, 핀 지 하루 이틀 지나면 진다. 꽃이 지면 목화솜이 보슬보슬 피어오른다.

“강화 관광 명소로 ‘소창 길’ 조성하고 싶어”

목화는 고려시대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씨앗을 들여오면서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통상 전해진다. 목화 보급으로 의복 등이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김 이사장은 소창으로 강화 직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길 바라고 있다. 그 옛날 문익점이 혁신을 가져왔듯이, 강화 소창과 관광을 연결하면 강화 직물이 번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화 도시재생사업에 ‘왕의 길’이 있는데, 직물산업이 발전했던 곳과 소창체험관 등을 중심으로 강화를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걷고 강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창 길’을 조성하고 싶다.”

김 이사장은 강화경찰서 인근에 실제로 ‘소창 길’을 만들어 놨다. 골목길 화분에 목화를 심어놓았는데, 한여름이면 꽃이 빨갛게 피었다가 툭 떨어진다. 꽃이 지면 목화솜이 보슬보슬 피어오른다. 목화솜은 열매다. 세상에 이렇게 소중한 열매가 있을까.

“소창 갤러리도 열고 싶다. 장소는 강화 전매소가 있던 옛 건물인데, 터가 남아있다. 현재 임차해서 작업실로 이용하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정말 아름답다, 대들보도 그대로 있다. 소창 갤러리와 편의시설을 만들어 강화에 오는 이들에게 소창의 매력을 전하고 싶다.”

목화 솜.

김 이사장은 강화 곳곳에 목화를 심고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가만히 머물다 간다. 소창 갤러리 후보지에도 목화를 심을 계획이다.

강화읍에 위치한 소창체험관은 강화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곳에 가면 직물 짜는 기계와 역사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소창에 그림을 그리는 등 체험도 할 수 있다. ‘평화직물’이 있던 고풍스러운 한옥인데, 차도 즐길 수 있다.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것은 인천시와 강화군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줬으면 좋겠다. 소창체험관과 갤러리가 이어지고, ‘소창 길’이 조성된다면, 이것이 곧 인천의 자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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