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여름엔 웬만해선 밖에 나가지 않는다. 집이 곧 일터이다 보니 굳이 나갈 일도 없긴 하다. 이번 휴가에도 딱 3일 바다에서 수영하는 걸 빼면 내내 집 안에 있을 거 같다. 아니, 그러고 싶다. 섭섭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나름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휴가 준비는 책 목록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책꽂이에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잔뜩 있지만 그건 다른 때 산 책이기 때문에 휴가 목적과 어울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책이란, 책등에 적힌 제목을 감상하는 맛도 있는 것. 술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고 특별한 취미도 없고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없는 난, 유일하게 책을 소비하며 ‘탕진잼’을 느낀다.

영화도 필수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놓친 영화가 많다. 개봉한 지 몇 개월 지난 영화는 인터넷에서 훨씬 싼 값에 내려 받아 볼 수 있다. 누워서도 볼 수 있고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무서운 장면은 안보고 뒤로 넘길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좋은 게 많다.

이번 휴가엔 좀 재밌고 의미도 있는 책과 영화를 골라보기로 했다. 집 안에 있어도 미술관을 돌아다닌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한 화가의 작품과 생애를 다룬 책과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이다. 소개할 화가 세 명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모두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라는 점도 그렇다. 한 작가라도 그의 책과 영화를 함께 본다면 삶과 작품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생각할 거리와 감동도 두 배 이상 남기리라 믿는다. 휴가 때 보면 좋을 책 세 권과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휴가 첫 날 :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책 '빈센트 나의 빈센트'
정여울 씀  |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펴냄

첫 책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로 시작하려한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자화상’으로 유명한 고흐는 이름값만큼이나 그와 관련한 책이 무척 많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는 작가 정여울이 고흐에 대한 열정 하나로 10여 년간 고흐가 머물렀던 네덜란드ㆍ벨기에ㆍ프랑스 도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의 흔적과 풍경을 담은 책이다. 고흐의 일대기를 나열하거나 작품 해설에 집중한 여느 책과 달리 고흐의 작품과 연관한 작가의 경험과 감상을 유려한 문장에 담아내, 읽는 재미와 감동이 크다는 게 장점이다.

“빈센트의 ‘해바라기’에 뭔가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어머니를 향한 양가감정, 논리적으로 서로 어긋나는 표상의 결합에서 오는 혼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태양을 향해 온몸을 기울이지만, 태양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해바라기처럼, 빈센트는 어머니의 사랑을 열망했지만, 평생 어머니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65쪽)

“마음이 울적할수록 그의 그림은 더욱 환한 색채로 빛났다. 너무나 쓸쓸하고 우울했기에, 더더욱 따스하고 환한 구원의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305쪽)

글 못지않게 그림과 사진에도 책의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양면 전체를 그림 하나로 채우기도 했다. 글에서 설명한 그림을 곧바로 다음 장에서 볼 수 있게 편집해놓아 보기 편하고 이해도 잘 된다. 그림의 배경이 된 실제 장소와 고흐의 그림을 나란히 배치해놓아 이 둘을 비교해보는 것도 깨알 재미 중 하나다.

영화 ‘러빙 빈센트’
도로타 코비엘라ㆍ휴 웰치맨 감독 | 15세 관람가 | 2017

화가 107명이 2년간 유화 6만2000여 점을 직접 그려 완성한 애니메이션. 화면 곳곳에서 고흐의 붓질이 그대로 느껴져 원화를 보듯 생생하기 그지없다. 고흐의 그림 속 인물들이 등장해 그의 사망 원인을 파헤치는 긴장감 있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냈다. 고흐의 성격과 행동, 죽음 대한 색다른 해석이 흥미롭다. 책이든 영화든 무엇을 먼저 보든 상관없다. 공통으로 나오는 작품을 만날 때 반가움은 같을 테니.

#휴가 둘째 날 : 프리다 칼로(1907-1954)

책 ‘프리다 칼로 : 전설이 된 예술가의 인생과 사랑’
반나 빈치 지음 | 이현경 옮김 | 미메시스 펴냄

열일곱 살에 당한 교통사고로 온몸이 산산 조각난 뒤 평생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던 멕시코 천재 화가 프리다 칼로.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란 묘비명으로도 유명하다.

책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 이후로 마흔일곱 살로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를 따라다닌 ‘죽음’과 프리다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라이트 노벨 만화책이다. 소아마비에 걸려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직접 배운 수채화 그리는 법, 국립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신여성의 삶, 벽화 작가 디에고와 첫 만남 등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여자였던 초기의 삶과 교통사고 후 서른두 번의 수술과 세 번의 유산 그리고 디에고의 끊임없는 외도까지 겹쳐 영혼이 찢기는 상처를 입는 후반기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프리다의 그림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책. 그의 깊은 사고와 진보적인 시각, 펄펄 끓는 열정과 예술혼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영화 ‘프리다’
줄리 테이머 감독 | 청소년 관람 불가 | 2003

영화 ‘프리다’는 프리다의 삶과 작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책에 비해 프리다 칼로의 삶을 전체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겪은 굵직한 사건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영화 중간 중간 적절한 때에 등장하는 프리다의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다. 프리다의 생애를 새롭게 해석한 영화가 한 편쯤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휴가 셋째 날 : 모드 루이스(1903-1970)

책 ‘내 사랑 모드’
랜드 울러버 씀 | 모드 루이스 그림 | 박상현 번역 | 남해의 봄날 펴냄

‘내 사랑 모드’는 캐나다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과 작품 70점이 담긴 책이다. 모드 루이스와 한 동네 살았던 이가 그의 일대기와 작품 세계를 엮었다.

캐나다의 시골, 노바스코샤에서 평생을 살아온 모드 루이스는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다. 선천적 장애로 늦은 나이까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던 모드는 머물 곳과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인색하고 대인관계에 서툰 에버릿과 결혼한다. 그리고 네 평이 안 되는 작은 오두막에서 에버릿이 얻어온 독한 공업용 페인트로 엽서와 그림을 그려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존재감을 찾는다.

밝고 선명한 색의 그림들은 얼핏 단순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모드는 1940년대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키면서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장면을 자주 그렸는데, 그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성공적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풍경인데도 단풍나무가 여전히 붉은 잎으로 가득한 이유를 물으면 첫눈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중략) 소에 다리를 세 개만 그려 넣은 것도, 소의 눈에 긴 속눈썹을 그린 것도,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다. 모드의 그림을 깊이 연구해보면 그런 특이한 장면들은 그녀가 즐겁고 유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사용했던 장치임을 발견할 수 있다.”(93쪽)

모드는 창문과 벽, 크고 작은 살림도구와 물건들에 모두 그림을 그렸다. 집 바로 옆으로 길이 나있던 덕에 사람들은 차를 멈추고 모드의 작품을 구경하고 구입하기도 했다. 모드의 그림은 점점 유명해져 캐나다를 넘어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팔렸다.

그의 작품 분위기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모드가 시골 생활의 즐거운 모습을 그린 것은 그런 소박한 즐거움을 그녀가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병과 장애로 그런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드의 작품들은 즐거움을 간절히 바랐던 그녀의 심정과 어린시절 아주 잠깐 동안만 맛볼 수 있었던 경험에 대한 일생에 걸친 그리움에서 나왔다.”(129쪽)

영화 ‘내 사랑’
에이슬링 월쉬 감독 | 12세 관람가 | 2016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내 사랑’은 책 내용과 달리 모드와 에버릿 두 주인공의 순수하고 깊은 사랑을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담아낸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 역시 모드의 작품이 대거 등장한다. 가슴 촉촉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영화라, 휴가 마지막 날을 감동적으로 보내기에 충분하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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