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48>
초가잔빌, 지구라트

[인천투데이] 새벽부터 날씨가 46도 폭염이다. 하지만 빠듯한 일정에 한가할 틈은 없다. 폭염을 뚫고 달린다. 험준한 산맥을 지났던가. 길은 구릉지를 돌아 평야로 나선다. 밤새 설친 잠을 만회할 겸 눈을 감았다. 순간 풋풋한 밀 냄새가 차안에 가득하다. 창밖을 보니 한 줄기 단비가 대지를 적시고 지나간다. 차를 세웠다. 체온과도 같은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감사함이 뼛속까지 가득하다. 비록 먼지잼밖에 안 되는 비였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맙고 소중한 신의 축복이다.

멀리서 본 지구라트.

수사로 가기 전에 초가잔빌을 들렀다. 기원전 1250년, 엘람 왕국 때 지어진 지구라트를 보기 위해서다. 초가잔빌의 원래 이름은 두르 운타쉬(Dur Untash)였다. ‘운타쉬왕의 성채’라는 의미다. 당시에는 주변에 강이 흘렀을 터인데 지금은 인적 드문 외딴 곳에 홀로 덩그렇다.

모래 속에 묻혀있던 덕분인가. 3200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유적이 지은 지 얼마 안 된 건축물처럼 장엄하다. 지구라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신에게 바친 높다란 신전이다. 성탑(聖塔)이라고도 하는데, 성경에서는 바벨탑이라고 기록했다.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

신전은 흙으로 구운 벽돌을 층층이 계단식으로 쌓아서 만들었다. 사각형 모양으로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건축술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다. 튼튼하게만 쌓으면 된다. 이런 이유로 문명권과 상관없이 공통된 유적들이 건설됐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부터 중국 감숙성의 서하왕릉, 동쪽으로는 고구려의 장군총까지 규모와 재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권력을 과시하고 위세를 모으려는 것은 모두 같았다.

권력을 차지한 인간은 신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신이 될 수 없는 것을 안 인간은 차선책으로 신의 아들임을 자처하고 싶었다. 신의 아들은 신의 축복과 계시를 받는 자다. 신의 계시는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강하고 위대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신과 가까이 하려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구라트다.

엘람 왕국 시기 쐐기문자.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벗어나 존재하는 지구라트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곳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중심 벽 5개로 건설됐지만 지금은 3개만 남았다. 벽 안쪽으로는 신에게 바치는 지구라트가 세워져 있다. 입구에는 아치형 문의 흔적이 보인다. 벽돌 곳곳에는 쐐기문자들도 가지런하다. 쐐기문자에 손끝이 닿는 순간 마치 3000여 년 전 엘람 왕국을 순례하는 듯한 전율이 온몸을 짜릿하게 감싼다. 5층 중 3층까지 남은 지구라트는 그 높이가 25미터에 이른다. 연구자들은 대략 50미터는 됐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엄청난 높이로 인식됐을 것이다.

이 지구라트는 ‘인슈쉬나크’라는 신에게 바쳐졌다. 엘람 왕국의 수도인 수사(슈쉬)의 남쪽에 세워졌는데, 이곳에 엘람 왕족의 묘도 있다. 지구라트 북서쪽에는 남신인 이슈니칼랍와 나피리샤, 여신 키리리샤를 각각 모신 신전이 있다. 각 신전의 기단은 불에 구워 만든 벽돌을 사용했고, 위쪽은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았다. 흙벽돌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이 아니었다. 벽 내부에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쓰고 바깥 외벽은 구운 벽돌을 썼다. 또한, 중요한 입구나 신전의 벽면은 무늬나 글씨를 넣은 벽돌을 사용했다. 이 벽들은 역청(瀝靑)을 넣어서 반죽한 모르타르로 벽돌을 쌓아 더욱 튼튼했다. 그래서인가, 지구라트의 벽면은 아직도 바윗돌 같다.

여신 키리리샤를 모신 신전.

지구라트 옆에는 작은 신들을 위한 신전 11개가 있다. 왕은 22개를 짓기로 했지만, 신전이 완성되기 전에 왕이 죽자 공사는 중단됐다. 기원전 640년에는 이곳을 침입한 아시리아에 의해 거대했던 지구라트가 파괴됐다. 파괴된 지구라트는 근처를 흐르던 데즈강의 범람으로 모래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렇게 2500년 넘게 잠들었던 이곳을 1935년에 이란의 석유회사가 이 지역을 탐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프랑스 학자들의 발굴조사를 거쳐 1979년에 이란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고대인들은 신상 앞에 각종 선물을 바쳤다. 왕국의 번영과 자신들의 소원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상은 언제나 그곳에서 왕국과 백성을 지켜야했다. 신상이 부서지거나 빼앗기는 것은 왕국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전쟁의 최종 승리는 적의 신상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신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라트에 물을 흘려보내는 수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고대부터 산을 신성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곳은 황막한 들판뿐 산은 없었다. 이에 산의 형상을 본떠 지구라트를 만들었다. 그들은 신성한 이곳에서 신께 경건한 제식(祭式)을 드렸다. 이때마다 도시인들이 운집했을 텐데 제일 중요한 물은 어떻게 조달했을까. 지구라트 북쪽에는 넓고 깊은 웅덩이가 있다. 이곳은 당시에 물을 저장했던 수조였다. 당시 사람들은 50킬로미터에 이르는 수로를 만들어 이곳까지 물을 끌어들였다. 이렇게 도달한 물은 여과장치 7개를 거쳐 지구라트로 보내졌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은 이처럼 하늘 높게 쌓아올린 지구라트를 의미한다. 가장 높은 지구라트는 바빌로니아의 지구라트이며, 이것이 곧 성경에서 말하는 바벨탑이다. 이곳의 지구라트 높이는 91미터였다. 거대한 크기였던 만큼 이를 기록한 석비의 내용도 우렁차다.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지구라트이자 바비루’라고 기록돼있다. ‘바비루’는 바빌로니아를 의미한다. 바빌로니아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최대 제국이었다. 수도인 바빌론은 모든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민족이 모여드는 세계적 도시였다. 이에 수많은 민족의 언어가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이러한 도시에 왕국의 멸망으로 포로가 돼 끌려온 유대인들도 있었다. 제국의 위상과 수많은 민족을 접한 적이 없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욕망과 오만함을 분쇄하기 위해 언어를 혼탁하게 한 것이다’라고.

신이 되려한 인간 욕망의 대명사 ‘바벨탑’.

하늘을 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오늘도 시들지 않는다.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마천루들이 기네스북을 갈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신의 아들도 믿지 않는 세상이다. 무엇이 저토록 하늘로 치솟게 만드는 것인가.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 싶은 까닭인가.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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