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범종은 어쩌다 인천문화재가 됐을까?
중국 범종은 어쩌다 인천문화재가 됐을까?
  • 정양지 기자
  • 승인 2019.08.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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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공출로 건너와…1946년 시립박물관 소장
제물포해전 ‘바리야크함 깃발’과 함께 유형문화재 등록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인천시는 지난달 29일 ‘명대철제범종’을 시 유형문화재 77호로 지정했다. 중국범종인 명대철제범종은 시 유형문화재 3호인 ‘원대철제범종’과 4호 ‘송대철제범종’에 이어 인천의 유물이 됐다.

1638년 명나라 숭정 11년에 제작된 명대철제범종은 중국 하남성 상구현에 걸려있던 종이다. 원대철제범종은 1298년 원나라 대덕 2년에 하남성 여양현에서 만들어졌다. 송대철제범종은 정확한 주조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송나라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셋은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 나란히 놓여있다.

중국의 범종들은 어쩌다 바다 건너 타국의 문화재가 됐을까.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초,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제는 전쟁무기를 만들기 위해 공출제를 실시했다. 중국 역시 공출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그때 일본에게 뺏긴 것이 이 철제범종들이다.

왼쪽부터 원대철제범종, 명대철제범종, 송대철제범종.(사진제공ㆍ인천시)
왼쪽부터 원대철제범종, 명대철제범종, 송대철제범종.(사진제공ㆍ인천시)

수백 년간 중국인들의 신앙을 보듬었던 범종은 일제의 비인도적인 공출을 위한 금속물로 전락했다. 일제는 부평에 인천육군조병창을 지어 범종들을 갖다놓았다. 해방 후,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석남 이경성 선생이 조병창에 찾아가 범종들을 인수했고 현재까지 보존된 것이다.

조우성 전 시립박물관 관장은 “외국에서 건너 온 문화재는 ‘약탈 문화재’와 ‘습득 문화재’로 나뉜다”며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약탈 문화재는 소유주에 돌려줘야 하지만 습득 문화재는 그럴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제가 중국으로부터 약탈해 조병창에 놔두고 간 철제 범종은 우리에겐 습득 문화재에 해당한다.

인천에는 중국범종 말고 외국서 건너온 유형문화재가 또 있다. 러시아의 ‘바리야크(Варяг)함 깃발’이다. 1904년 2월 러‧일전쟁의 전초전격인 제물포해전이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러시아 순양함 바리야크호는 일본함대와 전투를 벌이다 자폭했고 그때 버리고 간 깃발이 보존돼 2015년 시 유형문화재 66호로 지정됐다.

조 전 관장은 “국권 침탈의 상징물인 중국범종과 바리야크함 깃발은 전쟁이 남긴 인천의 암울한 근대사가 압축된 유물”이라며 “동북아시아의 연결 지점인 인천에 보관돼 그 의미가 더 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