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 속에도 수많은 인파 모여 죽산 뜻 기려
60주기 맞아 서훈여부 관심 모았지만 보훈처 '요지부동'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간첩 누명으로 사형당한 진보당 당수 죽산 조봉암 서거 60주기 추모제가 7월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공원묘지에서 열렸다.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수많은 인파가 자리를 지키며 죽산의 넋과 뜻을 기렸다.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제가 7월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사)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와 죽산조봉암선생유족회가 주최했으며, 새얼문화재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협찬하고 인천시가 후원했다.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 기념사업회장,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 박남춘 인천시장, 송영길 국회의원(민주·계양을), 김원웅 광복회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박찬대 국회의원(민주·연수갑), 차준택 부평구청장,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 조동암 전 인천정무부시장, 김교흥 민주당 서구갑지역위원장, 윤준호 국회의원(민주·해운대을)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2년 전 처음으로 대통령 조화를 보냈던 문재인 대통령은 3년째 조화를 보냈다. 대통령을 비롯해 문희상 국회의장과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조화를 보냈다.

지난해 조화를 보냈던 자유한국당은 올해 보내지 않았다. 한국당에선 윤상현(미추홀구을) 국회외교통상위원장이 조화를 보냈다.

이밖에도 유경현 대한민국헌정회장, 이정미 국회의원(정의·비례), 윤관석 민주당인천시당위원장, 김응호 정의당 인천시당위원장, 이기우 재능대 총장, 남봉현 인천항만공사 사장 등이 조화를 보내 추모를 대신했다.

추모식은 국민의례 후, 죽산의 육성을 청취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죽산이 1956년 진보당 창당 개회사에서 책임정치 실현과 사회민주주의, 평화통일 노선을 주창하는 힘찬 육성이 묘역에 울려 퍼지며 추모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올해 추모식은 청년 조봉암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추모식에는 민주당 송영길 국회의원이 조직한 죽산 서거 60주기 추모식 청년 서포터즈 ‘청년 조봉암’이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이들은 추모식 참석 전 죽산의 생가인 강화도와 죽산이 수감 됐던 서대문 형무소를 송 의원과 함께 방문해 죽산의 뜻을 되새기기도 했다. ‘청년 조봉암’은 추모식에 참석한 추모객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청년 대표들은 신경림 시인의 ‘그날’과 이근배 시인의 ‘죽산조’를 추모시로 낭독했다. 두 시는 모두 죽산을 추모하는 시이다. 이어 다 같이 추모곡으로 ‘상록수’와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추모 분위기를 더했다.

“죽산의 사상과 철학 재조명해야”

죽산 조봉암 선생 60주기 추모식 청년 서포터즈 ‘청년 조봉암’ 일동이 추모곡을 부르고 있다.

1950년대, 진보당 청년당원이었던 곽정근 죽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복지국가와 평화통일 실현을 주창한 죽산의 이상과 철학은 지난 60년 동안 홀대와 무관심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죽산의 사상과 철학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부영 몽양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추도사로 “죽산이 4·19혁명 당시 살아계셨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을 것”이라며 “죽산의 뜻대로 당장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남북은 공동 운명체이다. 죽산과 몽양 선생이 오래전부터 가르쳐온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추모제를 앞두고 묘역을 정비하기도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시는 죽산 선생의 말과 연설을 모은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인천에서는 새얼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동상 건립을 논의 중이다.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계획을 세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엇보다 선생의 독립유공훈장 추서가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게 관련 기관, 단체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인천시장 재임 시 죽산 추모제에 공식적으로 참석하고 후원의 물꼬를 튼 송영길 국회의원은 “죽산의 뜻을 따라 남북이 평화통일을 이뤄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원웅 대한광복회장은 “죽산이 현재까지 서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친일반민족 세력이 아직 우리사회의 주류라는 증거”라며 “죽산의 명예 회복이 하루빨리 이뤄져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죽산 선생의 장녀 조호정(91) 여사가 참석해 유족 대표로 인사를 전하려 했으나,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여사의 장녀 이석란 씨가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죽산의 명예회복은 언제쯤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제가 7월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열렸다.

올해는 죽산이 태어난 지 120년, 서거한 지 60년 되는 해이니만큼 죽산에 대한 서훈 여부도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서훈 추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있음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2011년, 진보당 사건 재심에서 죽산은 무죄를 선고받으며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1941년 죽산이 일제에 국방헌금을 냈다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의 단신 기사를 이유로 독립유공자 훈장 추서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훈장 추서와는 별개로 죽산의 명예회복을 위한 인천 시민사회단체의 움직임은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다. 7월 30일 새얼문화재단은 ‘곧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전문가들로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인천에 죽산 선생 석상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단 측이 죽산의 석상 건립을 위해 2011년부터 모은 기금은 30일 현재까지 모두 8억5788만 원이다. 인천을 비롯한 각지에서 5554명이 성금을 보탰다. 원래는 죽산 선생의 동상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희소성과 재질 특성 등을 고려해 석상을 건립하기로 지난해 10월 방침을 바꿨다.

석상을 건립할 장소는 추진위가 꾸려진 뒤 논의할 계획이지만, 이미 일부 군·구가 죽산 선생의 석상을 유치하고 싶다는 의견을 재단 측에 전했다. 죽산 선생의 출생지인 강화도나 거주지였던 중구,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부평(당시 인천을구) 등이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는 장소로 꼽힌다. 건립될 석상 옆에는 모금에 동참한 시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긴 동판도 함께 세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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