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여름 휴가지는 바다가 최고다. 물에 둥둥 떠 (사실은 허우적대며) 2~3일 보내고 나면 연중행사를 치른 듯 마음이 흡족해진다. 남은 여름을 보낼 힘이 난다. 물론 강에서도 수영할 수 있지만 짠물에 몸을 담가야 제 맛이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내겐 민물에 대한 무서운 기억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주말이면 식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했다. 날씨가 조금씩 더워질라치면 아빠는 다락방에서 텐트를 비롯한 캠핑장비를 가지고 내려왔다. 요즘처럼 예쁘고 가볍고 세련된 것이 아닌, 무겁고 투박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부피도 어찌나 큰지 풀어놓으면 정말 한 짐이었다.

ⓒ심혜진.

엄마는 반찬과 양념을 챙겼다. 대부분 집에서 쓰던 그릇을 그대로 가져갔다. 우린 돗자리와 옷, 간식 몇 가지를 싸들고, 아빠는 텐트가 든 아주 커다란 가방을 등에 메고서 뒷산을 올랐다. 돌이 많은 길을 걷다가 내를 건너면 텐트를 치기 좋은 자리가 나온다. 해마다 우리 가족이 몇 날 밤을 보내는 익숙한 장소다. 아빠와 엄마가 텐트를 치고 언니와 나, 남동생은 물에서 놀기 시작한다. 텐트를 치느라 더워진 아빠가 속옷 차림으로 물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힌다. 그러곤 곧바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부엌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아빠가 캠핑에선 모든 요리를 담당했다. 버너와 코펠 등 꽤 비싼 돈을 들인 캠핑용품을 사용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늘 같은 요리를 했다. 마늘, 고춧가루 등 양념에 양파와 감자, 그리고 꽁치통조림을 국물까지 모조리 넣어 끓인 꽁치찌개다.

갓 지은 밥에 이 찌개 한 솥만 있으면 다섯 식구 한 끼는 뚝딱이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계곡물 흐르는 산에서 하룻밤은 시원하고 낭만적이었다. 자고 일어난 아침, 텐트 안으로 스며드는 오묘한 느낌의 빛도 좋았다. 바깥에선 어김없이 코펠에서 밥과 찌개가 끓고 있었다.

어느 초여름, 토요일이었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아빠가 대뜸 엄마에게 “뒷산에 가자”고 했다. 텐트에서 하룻밤 자고 오자는 거였다. 아무 준비 없이 점심을 차리던 엄마는 난감해 했다. 더군다나 남동생은 감기에 걸린 상태였다. 아빠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웬만해선 해야 하는 행동파. 아빠는 나와 언니에게 가겠냐고 물었고, 우리는 신이 나서 아빠를 따라나섰다. 세 식구만의 첫 캠핑이었다.

아빠는 혼자 텐트를 치고 밥도 했다. 아빠를 도와 설거지까지 마치니 주위가 어둑어둑했다. 엄마가 없어서 그런지, 마음이 왠지 허전하고 불안했다. 후두둑.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름비는 금방 그치니까 괜찮아.”놀란 우리에게 아빠가 말했다. 그런데 아빠 말과 달리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동시에 계곡 물소리가 거칠고 사나워졌다. 아까 건넜던 냇물, 언니와 놀던 그 냇물이 아니다. 물이 불어나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거 안 되겠다. 집에 가자.”

아빠가 정신없이 텐트를 걷었다. 아빠는 언니와 나를 차례로 등에 업어 내를 건넜다. 이제 커다란 배낭을 옮겨올 차례. 주위는 어두워 발 디딜 곳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는 한층 요란해졌다. 내 한가운데에서 아빠가 휘청하더니 그만 뒤로 넘어졌다. 아빠는 겨우 균형을 잡아 물에 완전히 젖은 배낭을 들어 올리고 내를 빠져나왔다. 언니와 나는 엉엉 울었다.

그날처럼 집 안 불빛이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인 적은 없었다. 엄마가 놀란 눈으로 우릴 바라봤다. “산에 그렇게 비가 많이 와? 여긴 얼마 안 와서 걱정 안 했는데….”아빤 아무 말 안 했다.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날 밤 사납던 계곡 물소리와 어둠, 아빠의 다급했던 움직임이 생생하다. 그러니 이번 여름에도 난 산 속이 아닌 바닷가 숙소를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잊지 않고 챙기는 건 꽁치통조림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맛 본 그날도 꽁치찌개 하나만큼은 끝내줬으니까.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