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주민대책위에서 출발해 21년째 마을공동체 활동
[연중기획] 주민대책위에서 출발해 21년째 마을공동체 활동
  • 장호영 기자
  • 승인 2019.07.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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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23)
연수구 청학동 마을공동체 ‘마을과이웃’

[인천투데이 장호영 기자] 

<편집자 주>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 갈등, 각종 지역 문제로 인해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함께하는 삶의 시작점인 ‘마을’을 나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을공동체운동과 사업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 인천은 8개 구와 2개 군으로 이뤄져 있고, 구ㆍ군마다 수십 개의 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다. ‘마을’이란 동 단위 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간이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함께 하면서 소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이 속한 마을에 관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마을공동체를 이룰 때 진정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도시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세포와 같고, 그래서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살 수 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를 높이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 <인천투데이>는 올해 인천의 다양한 마을공동체를 만나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1998년 ‘청학동 재산권 사수 주민대책위’서 출발
 

2017년 10월 연수구 청학동 느티나무 축제에서 퀴즈대회가 진행중이다.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2017년 10월 연수구 청학동 느티나무 축제에서 퀴즈대회가 진행중이다.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인천에서 최초로 마을공동체를 표방하고 21년째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마을과이웃(대표 윤종만)’이다.

마을과이웃은 청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의 과도한 개발 부담금 부과를 반대하며 1998년 10월 결성한 ‘청학동 재산권 사수 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때 대책위원장이었던 윤종만 씨가 마을과이웃 대표를 맡고 있다.

당시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는 청학지구에 있던 주민들이 부담해야할 감보율은 평균 36.4%에 달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에 필요한 용지 확보를 목적으로 소유주로부터 토지를 공출 받는데, 그 비율을 감보율이라 한다.

청학동은 당시 국민주택 규모 이하 빌라나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이었다. 일부 빌라 주민들은 집값이 2500만 원인데 개발 부담금을 1400만 원이나 내야했다. 대다수가 저소득 취약계층이라 개발 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특히 당시는 1997년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여파로 국민들이 신음하던 때였다.

주민들은 주거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대책위를 구성하고 1년 2개월 동안 투쟁해 승리했다.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의 개발 부담금을 줄였고 개발잉여금 49억 원을 확보해 주민들이 부담해야할 청산금도 감면했다.

대책위는 새로운 시위문화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기도 했다. 1998년 12월 1일 인천시청 앞에 모인 주민 450여 명은 과격한 시위를 지양하고 모두 함께 참여하는 시위를 만들기 위해 전통무예인 택견을 접목했다. ‘청’팀과 ‘학’팀으로 나눠 스크럼을 짜고 택견 구호에 맞춰 체조하듯 하면서 시위했다.

‘청’팀이 앞으로 나아가며 “살기 좋은 청학동에 감보율 귀신 웬 말이냐, 이크” 하고 소리를 낸다. 이어서 ‘청’팀이 뒤로 물러서면 ‘학’팀이 앞으로 나아가며 “어림없다 감보율 귀신 냉큼 사라져라, 에크” 하고 소리를 낸다. 이렇게 마당놀이 하듯 시위하며 주민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고, 인천시 공무원들과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적법한 절차를 밟으며 투쟁을 벌이고 승리한 이들의 활동은 국내 주민운동의 모범으로 평가받아 인천시 시사에 실리기도 했다.

수인선 지하화 투쟁과 그 결실
 

2015년 느티나무축제에서 열린 전통혼례 은혼식.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2015년 느티나무축제에서 열린 전통혼례 은혼식.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대책위 활동이 마무리되기 전 지역에 또 커다란 현안이 발생했다. 철도청과 인천시는 수인선(철도)을 건설하면서 청학동 구간을 고가와 지상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분진과 소음 등 환경 피해와 마을 양분화를 예상한 대책위는 연수구 지역뿐 아니라 인천지역 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협의체를 만들고 수인선 지하화를 위한 운동을 펼쳤다.

1999년 8월부터 2004년 1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활동한 끝에 수인선 모든 구간 지하화를 이루진 못했지만, 청학동 구간 지하화와 송도~인천 구간 대부분 지하화를 이뤄냈다. 연수구 구간 중 유일하게 지하화로 건설된 청학동 구간 상부에는 쉼터공원과 공영주차장이 건설됐고 배드민턴장과 청학문화센터 등 주민 여가ㆍ문화 공간도 만들어졌다.

‘나눔의 교실’서 ‘마을공동체학교’로
 

청학동 느티나무 아래에서 강강술래를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청학동 느티나무 아래에서 강강술래를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대책위는 활동하면서 마을 초등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보호자 없이 방치되는 것을 알았다. 이에 주민총회를 열어 체비지(자투리땅)에 공부방을 건립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공부방을 짓지 않으면 개발 부담금을 더 적게 낼 수도 있었는데, 주민들은 그 혜택을 조금씩 양보했다. 2001년 1월, 마을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3층 규모) ‘나눔의 교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건물은 지었지만 필요한 비품과 집기가 없었다. 그 때도 주민들이 십시일반해 공부방을 채웠다. 폐지와 고물을 수집하며 생활하는 할머니는 하루 수입의 전부인 5000원을 기부했고 청학감리교회에선 책상과 의자를, 아파트와 빌라 주민들은 세대 당 1만 원씩 후원금을 모았다.

‘나눔의 교실’은 마을 아이들의 독서 욕구를 충족해줬다. 하지만 정서적 안정과 급식 제공, 학습 지도 등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2003년 9월 ‘청학동 마을공동체학교(이하 마을학교)’를 개교할 때까지 마을공동체와 방과후돌봄에 관심과 애정으로 참여한 현직교사들의 도움으로 개교했는데, 개교일에는 주민과 손님 400명 가까이 참여했고 후원금 663만원이 모였다.

마을학교는 2004년 6월 연수구로부터 ‘청학동 방과후 학교’로 지정받아 현재까지 저소득층 마을 초등학생 40여 명을 돌보고 있다. 상근 보육교사 2명과 조리사 1명이 일하고 있고, 자원활동가 20여 명도 함께하고 있다.

마을학교에선 국어ㆍ영어ㆍ수학ㆍ사회ㆍ과학ㆍ음악ㆍ미술 등 교과목뿐 아니라, 한자ㆍ풍물ㆍ하모니카ㆍ오카리나ㆍ다도ㆍ요가ㆍ인성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무료로 운영하며, 친환경 재료로 급식도 제공한다.

마을학교는 아이들이 마을에서 여러 공동체 활동에 참여해 자연스럽게 마을 어른들과 교류하고 마을공동체 일원임을 자각해 긍지를 가질 수 있게 지도한다. 자연과 함께 하며 남녀노소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수련회, 어린이 풍물단의 길놀이로 개막을 알리고 하모니카ㆍ오카리나반 연주, 마을합창단과 어린이합창단 합동공연 등을 하는 느티나무축제, 학부모와 마을 어른들이 함께 참석하는 학습발표회를 매해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마을학교 아이들은 2010년 12월 전국독서감상문대회에서 단체상을 수상했고 여러 지역축제와 행사에 초대받아 풍물ㆍ하모니카ㆍ합창 공연 등을 한다. 2004년 10월 시작한 한자 공부로 급수시험에 총228명이 합격하기도 했다.

2011년에 단체명 ‘마을과이웃’으로 바꿔
 

2012년 마을합창단의 창단공연 모습.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2012년 마을합창단의 창단공연 모습. (사진제공 마을과이웃)

마을학교 건립 후 대책위에서 마을공동체위원회로 전환했다가 2011년 2월에 ‘마을과이웃’으로 단체명을 바꿨다.

청학동 541-10번지에는 수령 53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2009년부터 ‘마을과이웃’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매해 10월엔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축제를 연다. 마을학교 어린이 풍물단이 동네 골목을 휘저으며 “국수 드시러오세요.” 소리치면 느티나무 앞 골목길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이 축제는 어린이 1000원, 어른 2000원씩 내는 마을천사(1004명)가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치러진다.

2010년부터 축제 때 재현하는 전통혼례가 눈길을 끈다. 혼인 50주년을 맞은 노부부의 금혼식, 미처 혼례를 올리지 못한 부부들의 전통혼례를 치렀다. 마을을 주제로 한 초등학생들의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대회도 인기가 높다.

‘마을과이웃’은 풀뿌리주민자치마을, 문화마을, 평생학습마을 등 마을 의제 세 가지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마을신문 <청학동사람들>을 1년에 두 번 발행하고 있고 15년 전부터 복날을 맞아 삼계탕 경로잔치도 연다.

‘마을과이웃’의 활동을 견학하기 위해 인천뿐 아니라 국내 곳곳에서 약 6200명이 다녀갔다. ‘마을과이웃’은 2013년 설립된 인천시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가 설립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연수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 설립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 도울 일을 고민하고 있다.

윤종만 대표는 “지역주민들이 마을활동가로 성장하고 지역사회혁신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라며 “인천시와 기초자치단체가 마을활동가 지원계획을 수립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마을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며, 커뮤니티케어센터 설치의 시범운영 등 민·관협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아프리카 속담 중 ‘마을 어르신 한 명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르신들 장례를 마을에서 치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어르신들이 남긴 사회적 유산을 마을에서 공유하고 소중한 마을 자산으로 남기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