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 (11)

[인천투데이] 1516년은 맥주 역사에서 중요한 해다. 독일 바바리아(지금의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는 1516년 맥주 순수령을 제정했는데, 이는 맥주 규제에 관한 가장 오래된 법령이다. 맥주 순수령은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리 몰트와 홉, 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시에는 효모 존재를 몰랐으므로 순수령에 효모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루이 파스퇴르가 효모의 존재를 확인한 이후에 순수령에 효모가 추가됐다.

맥주 순수령의 목적, 식량난 해소와 세금 징수

맥주 순수령으로 인해 독일에서 맥주 생산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했으므로, 오늘날 독일의 맥주 종주국 행세와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맥주 자부심의 원천이 됐다.

하지만 이 법이 제정된 것은 맥주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목적이었다기보다는, 당시 빵의 원료인 밀로 맥주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식량난을 초래했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맥주 양조 재료로 밀을 금지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빌헬름 4세는 정작 자신의 영지에서는 밀 맥주 양조를 허용했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바바리아 군주들은 맥주 순수령을 바탕으로 밀 맥주 양조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상류 지배계급을 위한 밀 맥주 양조는 허용됐으며, 지금도 뮌헨을 중심으로 하는 바이에른 지역 밀 맥주는 유명하다. 맥주 순수령은 제빵용 곡물이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맥주 양조법을 통제함으로써 세금 징수를 효율적으로 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계급은 세금 징수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과 명목을 동원했다.

“음식 재료라면 맥주에도 들어갈 수 있다”

왕실 소유였던 밀 맥주 양조권은 1872년 민간으로 이양되는데, 게오르그 슈나이더(Georg Schneider)가 이 권리를 샀고 뒤이어 에딩거(Erdinger) 양조장에서도 밀 맥주 양조 권리를 사들여 지금까지 밀 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에딩거의 밀 맥주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인기 있는 맥주다. 1988년 유럽 사법재판소는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라면 맥주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그 결과 독일의 맥주 순수령은 사실상 폐지됐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지켜온 맥주 순수령으로 인해 독일 맥주는 전통을 지킨 순수한 맥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통제와 세금 징수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 독일 맥주의 이미지를 지켜준 셈이다.

알브레히트의 법령과 독일 라거 맥주

독일은 맥주 순수령으로 순수하게 보리 맥아만을 사용한 맥주의 전통을 이은 것과 더불어, ‘하면 발효’ 라거 맥주의 종주국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인식이 만들어진 것은 1553년 바바리아 군주인 알브레히트 5세(Albrecht V)가 여름에는 맥주를 양조하지 못하게 법령을 제정한 것에 기인한다.

당시에는 효모 존재를 몰랐지만,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여름에 빚은 맥주와 겨울에 빚은 맥주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겨울에 양조한 맥주는 저온에서 발효하는 효모가 작용해 ‘하면 발효’ 맥주 즉, 라거 맥주가 됐고 여름에 양조한 맥주는 고온에서 발효하는 효모가 작용해 에일 맥주가 됐다. 따라서 두 맥주의 맛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겨울에 양조한 라거는 깔끔한 맛과 더불어 오랜 기간 변질되지 않고 보존할 수 있었고, 따라서 맥주 품질이 에일에 비해 비교적 균일했다.

알브레히트 5세는 4월 23일부터 9월 29일까지 맥주 양조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는데, 겨울에 양조한 라거 맥주로 맥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을 가진 법령이었다. 이에 따라 바바리아 지역에서는 여름에는 맥주를 만들 수 없게 됐고 결국 에일 맥주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알브레히트의 법령은 빌헬름의 맥주 순수령과 더불어 독일 맥주의 특징을 결정짓는 중요한 법령이 된 셈이다.

독일 맥주, 그중에서도 뮌헨을 중심으로 하는 바이에른 맥주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이처럼 바이에른 군주들이 유별나게 맥주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법령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법령으로 현재 라거 맥주를 전 세계 대다수 사람이 마시고 있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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