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매뉴얼에 따라 알리지 말고 내부에서 처리하자는 취지”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인천문화재단이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보호 대신 함구하라고 했던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1차 가해자는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지만 피해자들은 2차 피해로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재단은 지난 5월 21일 성희롱 피해 신고를 접수했다. 사건 요지는 같은 사무실 옆자리에서 일하는 남직원 A씨가 근무 중에 불법 음란물(야동)을 본 것이다.

성희롱 피해를 신고한 여직원들은 5월 21일 신고하기 전부터 A씨가 근무 중에 불법 음란물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덜미가 잡히는 것은 5월 21일이다.

피해 여성 2명과 A씨를 포함해 3명이 한 곳에서 일하고 있었고, A씨는 5월초부터 병가를 낸 상태였다. 해당 팀은 올해 9월 준공이 목표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기에 남은 여직원 2명이 A씨의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었고, 열었을 때 A씨가 업무용 컴퓨터에 저장한 불법 음란물이 확인 된 것이다.

신고를 토대로 재단은 내부 인사로 구성한 조사위원회와 외부위원이 포함된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조사 했다. 재단은 성희롱 사건으로 결론짓고, A씨에게 정직 2개월 징계를 내렸다.

징계로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피해자와 동료 직원들은 1차 피해보다 더한 2차 피해를 호소하고, 2차 가해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요구한 사항이 진척이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5월 21일 피해자들은 재단 내 성희롱고충처리 담당 부서의 팀장과 과장에게 우선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신고하고, 두 번째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물리적 공간 분리를 요청했으며, 세 번째는 신속한 조사와 조치를 요청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단 직원 B씨는 “재단은 피해자 진술과 증거물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성희롱 사건으로 바로 접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당부서 팀장은 ‘사건에 대해 함구해라’라고 했고, 담당 과장은 ‘다음 주 휴가라 여행가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고 발언하는 등 피해를 신고한 이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했다.

B씨는 또 “담당 과장은 피해자에게 ‘행위자의 컴퓨터를 열어 본 것은 경솔한 행동이었다’며 임의적으로 사건을 판단하고 피해자를 나무랐다”며 “선임 여성 직원으로서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자로, 조사가 시작도 안 된 시점에 부하직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고 부연했다.

컴퓨터를 열어본 데 대해 B씨는 “재단에서는 업무가 밀리는 경우 대신 업무를 해야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업무용 컴퓨터를 열어보는 게 다반사이다. 3명이 일하는 곳에서 가해자가 병가를 낸 상태에서 업무를 대신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었다가 발생한 일인데, 이를 두고 피해자를 나무라는 것은 피해자 보호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고 꼬집었다.

공간 분리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은 재단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했다. B씨는 “재단은 가해자를 본청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업무를 보려면 본청에 드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본청으로 출근이 아니라 자택 대기 명령을 내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인천문화재단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보는 동안 재단은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가해자는 병가를 쓰면서 조사를 받거나 출근하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반면 피해자들은 연차를 쓰면서 조사를 받았고, 피해 트라우마가 있기에 업무 공간 이전을 요구했으나 재단은 근무지를 지키라고 했다. 최소한 상급자를 보내 피해자를 보호해야 했으나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피해자들의 상급자가 재단 본부로 옮기자고 해서 옮겼을뿐 성희롱고충담당 부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폭로했다.

B씨는 또 “피해자들이 2차 가해자에 대한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 성희롱 사건에 대한 대응 매뉴얼 제작, 직장 내 성평등 교육 실시, 외부위원으로 고충상담원 지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피해자를 보호하기 보단 경솔하다고 나무랐던 과장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속상하고 참담하다”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재단 관계자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팀장이) 함구하라고 한 게 아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알리지 않고 내부에서 정리하게 돼 있다. 그런 취지로 말한 게 잘못 전달 된 것 같다. (과장이) 휴가 가는 데 무슨 일 이냐고 한 것도, 잘못 전달 된 것 같다. 과장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호소하고, 문책을 요구했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검토 중이다. 재단에 성희롱 사건에 대응하는 매뉴얼이 있긴 한데 미흡한 점이 있어 이번에 보완 중이다”며 “국가균형발전위원 위촉은 해당 절차와 규정에 따라 위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도 쓴 소리는 여전하다. 민운기 인천문화재단 이사는 “성희롱 피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해진 매뉴얼 대로 조치했느냐가 핵심이다. 가장 중요한 게 피해자 보호인데, 피해자 입장에서 적절치 않았고, 2차 가해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된다”며 “재단은 피해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가해자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처리한 것으로 파악된다. 2차 피해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문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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