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잡종 효모와 라거 맥주 출현
새로운 잡종 효모와 라거 맥주 출현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7.2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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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 (10)

발효 온도에 따라 ‘에일’과 ‘라거’로 분리

1400년대까지 모든 맥주는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상면 발효’한 에일 맥주였다. ‘상면 발효’는 효모가 발효하면서 위로 떠오르는 성질을 갖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반면에 ‘하면 발효’ 맥주인 라거는 낮은 온도에서 효모가 발효하면서 아래로 가라앉는 성질을 갖는다.

15세기에는 효모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상면 발효’나 ‘하면 발효’ 개념이 없었다. 유전적 분석으로 밝혀진 바, 당시 맥주를 빚는 데 사용한 효모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종으로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효모였기에, 맥주는 모두 ‘상면 발효’한 에일 맥주였다. 현재 전 세계 시장에 나와 있는 맥주의 70% 이상이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라거 맥주인데, 사실 라거의 인기에 비해 라거 맥주의 역사는 매우 짧은 편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인 독일 바이에른의 바이엔슈테판 수도원 양조장에서 700년대 중반부터 맥주를 양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수도원이 위치한 산 곳곳에 동굴이 있어서, 수도사들은 양조한 맥주를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는 동굴에 저장했다. 이런 이유로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라거 맥주는 바이엔슈테판 수도사들에 의해 15세기경 처음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당시에는 효모의 존재를 알지 못했으므로 저온 발효 맥주인 라거가 만들어진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라거 맥주 효모의 기원

15세기 초반 바이엔슈테판에서 처음으로 라거 맥주가 양조됐다는 추론은 저온에서 발효하는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Saccharomyces Pastorianus)를 유전적으로 분석해 밝혀진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전자 분석 결과, 라거 효모는 남미 파타고니아의 서늘한 숲에서 자생하는 사카로미세스 유바야누스(Saccharomyces Eubayanus)가 아메리카 대륙을 왕래하던 유럽인들의 선박에 묻어와서 유럽 토종 효모인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아와 교배해 만들어진 효모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새로 만들어진 잡종 효모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 유바야누스의 특성을 물려받아 저온 발효하는 효모였으며, 마침 서늘한 곳에 저장돼있던 바이엔슈테판 수도원 맥주에 작용해 라거 맥주를 만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온 발효 효모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 명칭은 현대 양조 기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루이 파스퇴르의 이름에서 따왔다.

2011년 남미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사카로미세스 유바야누스가 발견됐으며, 유전자 분석 결과 이 효모가 사카로미세스 세리비지아와 교배해 라거 효모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파타고니아 효모가 당시 유럽에서 아메리카를 오가던 선박에 묻어와서 유럽 토종 효모와 교배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사카로미세스 유바야누스가 발견된 이후 같은 종의 효모가 티베트와 중국에서도 자생하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따라서 라거 효모의 조상이 남미에서 왔는지, 아시아에서 왔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독일 라거 맥주 필스너의 유럽 제패

섭씨 8~12도 정도에서 발효하는 라거 효모는 발효 시 더 많은 당분을 분해하는 특성을 가졌다. 따라서 당분이 많이 남아있는 에일 맥주에 비해 라거 맥주는 단맛이 적고 깔끔하고 상쾌한 맛을 낸다. 에일 맥주와 비교해 청량감이 뛰어난 라거 맥주는 곧 독일 맥주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19세기 들어서며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플젠 지역의 라거 맥주인 필스너가 유럽을 제패하면서 점차 전 세계 맥주 시장을 장악했다.

청량감 높은 깔끔한 맛과 더불어 라거 맥주는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고 에일에 비해 더 오랜 기간 변질 없이 보존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라거 맥주가 세계 맥주 시장을 제패하게끔 한 이유이지만, 반면 라거 맥주의 맛은 거의 비슷하다. 크래프트 비어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다소 천편일률적인 맛인 라거 맥주에 식상한 맥주 덕후들을 중심으로 에일 맥주가 다시 부상하고 있으니, 유행은 돌고 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맥주 시장의 절대 강자는 라거 맥주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