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급 공무원 “인천도 주민참여예산을 하나요?”
주민 제안사업 부서 간 떠밀기, ‘인력 없다’ 볼멘소리
‘정기교육ㆍ통합 업무 추진ㆍ주무부서 인센티브’ 필요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인천시 주민참여예산 분과별 정책토론회가 지난 9일부터 8월 7일까지 주민참여예산위원과 관련 전문가, 일반시민, 담당 공무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순차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 시 주민참여예산 규모는 총300억 원으로 일반 참여형 180억 원과 지역 참여형 50억 원, 시 계획형 50억 원과 동 계획형 20억 원이다. 내년엔 400억 원, 내후년엔 500억 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주민참여예산 유형별 제안 사업 현황을 보면, ▲일반 참여형 186건 ▲시 계획형(여성ㆍ청소년ㆍ청년ㆍ서해평화 분야) 54건 ▲동 계획형 184건이다.

올해 제안된 사업들은 토론회를 거쳐 주무부서 사업으로 구체화된다. 이어서 8월에 전자투표를 실시하고 9월 26일 주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에서 최종 선정되면, 10월에 2020년도 예산안에 반영된다.

‘2020년도 예산 편성을 위한 보건복지분과 주민참여예산 정책토론회’가 7월 18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주무부서 간 서로 떠밀고 ‘인력 없다’ 볼멘소리

그런데 일부 주무부서에서 주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거나 다른 부서 업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다 예산안 확정까지 3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형식에 그칠 여지가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위원 A 씨는 “예를 들어 청년과 문화예술, 교육 분야가 엮인 사업의 주무부서는 청년정책과와 문화예술과다. 예산 담당부서에서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해당 부서로 배정하는데, 청년부서는 ‘문화예술 분야는 문화예술과에서’라고 말하고, 문화부서는 ‘청년이 주요 내용이니 청년정책과에서’라고 서로 떠넘기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또,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배정됐을 때 주무부서에서 인력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다보면 제안 사업이 참신하고 가치가 있어도 주무부서는 ‘부정적’ 또는 ‘수정 보완’으로 검토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ㆍ동 계획형 사업을 지원하는 주민참여예산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 관계자는 “주민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에 주민참여예산 사업 쏠림 현상이 발생하다보니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난다. 또, 제안 사업으로 올리면 적정하다고 판단하기보다는 ‘부적정’이나 ‘수정 보완’ 처리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원센터 관계자의 말을 더 전하면, 장애인인권영화제 사업의 경우 주무부서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하지 말고 시 보조금 사업으로 제안해 진행하라”고 했다. ‘여성 1인가구 방범안전시설 설치’ 사업의 경우 사용료 지원을 제안했는데, 주무부서는 난색을 표명하며 “민간 가옥에 공공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집 주인이 거부할 수도 있다” “그거 예전에 다 해봤는데 잘 안 됐다”는 등의 답변을 했다.

이런 사례는 더 있다. 청소년 월경 교육 관련 사업을 제안했는데, 주무부서는 “시가 위탁 운영하는 성문화센터에서 학교 순회 교육을 한다”며 부정적으로 답했다.

제안된 사업은 청소년들이 월경 용품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고, 주무부서에서 말한 학교 순회 교육은 ‘생리를 하는 이유’ 등을 알려주는 기본 소양 교육이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시 계획형 사업은 부서 두 개 이상이 연계된 사업이 많다. 그렇다보니 진척이 없거나 적극적인 검토가 안 되는 사례들이 있다”며 “동 계획형도 비슷한 사례가 생길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인천시는 2020년도 예산 편성을 위한 재난안전분과 주민참여예산 정책토론회를 7월 22일 오전 소방안전본부 영상회의실에서 진행했다.

‘공무원 정기교육, 주무부서 인센티브’ 도입 필요

올해 4월, 시는 처음으로 외부강사를 초빙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주민참여예산을 교육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주민참여예산 사업 관계자는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한 공무원은 극히 일부였고, 하물며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한 공무원 입에서도 ‘교육은 괜찮은 것 같은데, 다음에 또 한다고 하면 좀 그렇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더 어이없는 건, 어느 팀장급 공무원이 “인천도 주민참여예산을 하나요?”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시 공무원들이 주민참여예산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 건지 의문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일반 참여형 제안 사업 186건 가운데 여성가족과 환경녹지 분야가 각각 41건과 24건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21건)과 보건복지(15건)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시 계획형 제안 사업 54개는 모두 어느 한 부서에 치우친 사업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으로 세심하게 다뤄야할 성격을 갖고 있다.

동 계획형의 경우 자치구 8곳의 일부 동에서 취합된 1차 의제만 521건에 이르고, 이 중에서 제안 사업은 184건에 달한다. 시민들의 주민참여예산 정책 참여 의지와 관심이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예산팀에서 총괄해 각 주무부서에 배정하는데, 각 부서에는 주민참여예산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다. 하지만 주민 제안 사업은 주민참여예산 담당자에게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업 담당자에게 배정되기 때문에, 그 담당자가 의지가 없거나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주민과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민 제안 사업이 몰리는 부서는 주로 복지, 여성, 문화부서다. 사업이 많이 배정되는 부서는 업무 과중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에, 시민 참여도를 더욱 높이고 관심을 유지하려면 공무원 정기교육과 더불어 부서 간 통합 추진, 주무부서 인센티브 제공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시, “주민 사업 제안 노력 이해, 집행단계 관여는 무리”

주민참여예산 제안 사업이 몰리는 분야는 시민들 일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여성가족, 환경녹지, 문화체육관광, 보건복지 등이 얽혀있다.

공공기관은 효율적 업무 수행을 위해 분야를 나누었을 뿐이지, 일상에서 시민들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여러 부서에 걸친 제안 사업을 부서 간 이해에 따라 등한시한다면 시민 참여와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남춘 시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 적극 실천 의지를 피력하며 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제도는 확장됐는데, 시장의 의지가 공무원들에게 전달되는 경로가 아쉽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시장의 주요 방침이나 의지는 간부회의를 통해 전달되는 것 아닌가. 주무부서에 업무를 지시할 때, 주민참여예산과 관련해 ‘시민들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업을 검토하라’와 같은 말들이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시 관계자는 “직원들의 주민참여예산 이해도가 아직 낮고 관련 없는 부서는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사실상 원년이라고 볼 수 있기에 숙의 과정을 거치고 성과를 내면서 내년 정도에는 문제점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부서 간에 일을 떠밀고 있는 것은 맞지 않고 조정하고 있다.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센티브 제공은 이 사업이 아직 집행단계가 아니어서 명확하지 않다. 연초에 운영계획을 세울 때 직원 포상 부분을 막연하게 넣기는 했는데 올해 상황을 보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 관계자는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공무원과 주민들 간 온도차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직원들과 주민들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직원들은 ‘주민들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를 검토해 집행하는 것은 본인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민 입장에서 사업을 제안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기에 사업 집행단계에까지 관여하려는 적극성은 이해한다. 그러나 집행단계에서 주민들이 모니터할 수 있어도 관여하는 것은 무리다. 왜냐하면 집행은 법 규정과 절차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