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여행'
뤼디거 프랑크 지음 | 안인희 번역 | 한겨레출판사 | 2019.3.11.

[인천투데이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력을 볼 때부터 알아봤다. 이 사람 글, 재미있겠구나 하고. 독일 라이프치히 출신이다. 이것만으로는 무슨 말인지 모를 테다. 1969년생이니, 동독 출신이라는 말이다. 핵물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소련으로 건너가 4년이나 살았다. 청소년 시절, 동아시아에 관심을 보였고 1991년에는 통일된 독일의 장학금을 받아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을 갔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북한과 인연을 끊지 않았으며,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니 벽안의 사람으로 북한을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로 있는 뤼디거 프랑크를 일러 한 말이다.

이 사람이 ‘북한여행’이란 책을 썼다. 미리 말해둘 것은 그동안 별 문제없이 북한에 드나들었는데, 비공식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책 때문에 비자가 더는 발급되지 않고 있단다. 서둘러 이야기하면, 심기를 건드릴만한 말은 없었다. 북한당국이 너무 민감하거나 옹졸하게 나온 듯싶다. 내가 말해봐야 소용없겠지만, 이 정도 책이라면 표창을 줘야 마땅하다. 아무튼, 이른바 ‘종북’논란에서는 자유로운 책이 됐으니, 모쪼록 편한 마음으로 읽어도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유머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점을 놓치면 앙꼬 빠진 찐빵 먹는 격이다. 짐작건대, 그 유머가 불쾌했을 거다. 무릇 모든 권력은 풍자성 유머를 싫어하는 법이니까.

지은이는 왜 굳이 서양 사람들이 북한에 여행가고싶어 할까 묻는다. 일종의 관음증이다. 서구의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는 어떻게 굴러가는지, 미국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지,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 그곳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 북한행을 택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북한 여행의 남다른 보람을 일러준다. 갔다 오면 지금 자신의 삶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고. 무슨 말이냐 하면,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깨끗한 물, 끊기지않는 전기, 쇼핑센터에 넘쳐나는 물건,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마음대로 사진 찍기, 낯선 사람과 이야기 나누기, 마음껏 사용하는 인터넷 같은 일상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된다는 것. 돌려 말했지만, 북한에 가면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

북한은 왜 외국인 관광을 받아들일까. 제일 중요한 목적은 돈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는 마당이니 관광은 중요한 자금줄이다. 그런데 이런 목적만 있지는 않다. 자부심도 한몫 거들고 있다고 한다. “지금 노동자의 천국에 오셨으며 위대한 지도자들 덕에 거룩한 지역에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면, 그것은 정말 진실로 하는 말이다”라고 지은이는 전한다.

다른 무엇보다 북한은 매우 안전한 여행지란다. 여기까지는 북한당국이 흡족해할 설명이다. 그러나 다음 대목에서 부아가 났을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감시자들 덕에 절대로 도둑맞지 않고 괴한한테 공격당할 일 없고, 심지어 기를 써도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단다. 그래서 지은이는 단독으로 여행하지 말고 단체로 여행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여행하면서 한식을 달라고 떼를 쓰란다. 양식이 형편없어서다. “유럽의 관료들처럼 북한사람들도 마치 귀에 테플론막이라도 덮인 것처럼, 아무리 말해도 먹히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그러니 성가시게 하라. 북한에서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이만한 여행 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재미있는 대목만 모아 놓다보니, 이 책이 북한을 깎아내리기만 하는 줄로 알겠다. 무조건 높이지 않듯이 무조건 깔보지 않는다. 지은이는 “사실에 기반을 둔 견고한 진짜 지식”을 알리려고 애썼다. 여러 사실을 종합해볼 때 미국의 제재에도 북한의 경제 사정이 과거보다 나아진 점을 밝히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을 들고 북한을 여행하기가 아직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보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가득하건만, 언제나 북한을 여행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점에서 외국인이 훨씬 유리하다. 이렇게 마음껏 드나들고 재주껏 여행기를 써도 되니 말이다. 그날이 오면 나도 냉소적이면서도 객관적이며 공정한, 그리고 동포애로 가득한 북한여행기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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