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북클럽(Book Club)|빌 홀더맨 감독|2019년 개봉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남편이 죽은 뒤 멀리 사는 두 딸의 걱정을 온몸으로 받으며 홀로 살고 있는 다이앤(다이앤 키튼), 호텔 CEO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연애만큼은 젊은이들 저리 가라 즐기는 비비안(제인 폰다), 자신의 식당을 가진 셰프로 꿈도 이루고 사랑하는 남편과도 사이가 좋은 캐롤(메리 스틴버겐), 비록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남편과는 18년 전 헤어졌지만 연방법원 판사로 ‘긴즈버그’(미 연방 대법관의 이름)라는 멋진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섀론(캔디스 버겐)은 40년째 친구다. 곧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각자 개성이 뚜렷한 네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하며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어느 날 비비안은 너무 진지하고 딱딱한 책만 읽는 것은 재미없다며 ‘자신과 교감하기 위한 책’으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선택한다. 비비안을 제외한 세친구들은 이 나이에(!) 웬 섹스에 관한 소설이냐며 손사래를 치지만 비비안의 고집으로 결국 그 책을 읽게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작가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놓고 성적인 묘사를 하는 소설은 네 여자가 그동안 나이를 이유로 꾹꾹 눌러둔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의 기운 탓일까, 그것이 우연한 만남이든 옛 사랑이든 현 남편이든 데이트앱에서 만난 남자든, 때마침 네 여자에게 남자들이 나타나고 네 여자는 질풍노도의 격랑을 겪으며 자신의 꿈과 욕망을 찾아가는 황혼의 사춘기를 맞는다.

빌 홀더맨 감독의 ‘북클럽’은 평생을 일과 가정에 자신을 갈아 넣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노인여성이 어떤 계기로 자신의 욕망을 깨닫고 꿈을 찾아나가는, 꽤 전형적인 노인영화다. 노인이라고 해서 죽을 날만 받아놓고 기다리는 잉여 인생은 아니라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꿈과 사랑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노인도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교과서적 메시지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년에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노련한 여배우들의 주름 가득한 연기는 전형적인 드라마의 교과서적 메시지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사실 블록버스터 영화 외에는 볼 수 있는 영화가 거의 없는 비수기 극장에서 이 영화를 굳이 골라 본 건 다이앤 키튼, 제인 폰다, 메리 스틴버겐, 캔디스 버겐의 얼굴을 보기위해서였으니,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다들 내 엄마뻘인 할머니 배우들이 우아하면서도 귀엽고 지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우며 때로는 도발적이고 섹시하게 자신의 매력을 뽐낼 때마다 3년 전에 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볼 때와 비슷한, 가슴 뭉클한 감동이 올라오곤 했다. 아마도 한국판 북클럽을 영화로 만든다면 김혜자, 나문희, 윤여정, 고두심, 박원숙 등이 충분히 잘해낼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의 노년 이야기는 한국의 노년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경쾌하고 유머스럽다는 점 정도? 이것 또한 미덕이라면 미덕이겠다.

다만 칠순을 바라보는 여성들이 하나 같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 생의 활력을 얻는 전개는 꽤 실망스럽다. 이성애적 욕망 외에는 여성의 욕망을 상상하지 못하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나 요즘 유행처럼 출간되고 있는 할머니들이 직접 쓰고 그린 작품들을 보면 노인여성들의 삶과 욕망이 얼마나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할머니들이 직접 메가폰을 잡으셔야할 것 같다.

나이 든 여자들의 이야기에 자꾸 눈이 가는 건 나도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늙고있다. 늙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나올수록 내 삶의 레퍼런스는 풍부해진다. 영화 ‘북클럽’의 할머니들을 통해 나는 또 하나 배운다. 독서모임 네 여자가 서로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황혼의 사춘기를 통과하는 모습이 내 모습일 수 있으려면, 나이 들수록 책모임은 꼭 해야겠구나. 지금 일주일에 한 권씩 책 읽고 수다 떠는 모임을 하나 하고 있는데, 다음 주에 만나면 꼭 다짐을 받아둬야겠다. 우리, 책모임 하며 함께 늙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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