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73. 초당옥수수
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73. 초당옥수수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7.15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작년 이맘때였다. 한 선배가 줄 게 있다며 잠깐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먼저 연락할 걸’ 하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몇 분 후, 집 앞에서 만난 선배는 내게 비닐봉지를 쑥 내밀었다. 뭔가 묵직한 것이 들어있었다.

“옥수수야. 여름마다 먹던 거라 샀는데 너무 많아서 나눠 먹으려고.”

황급히 돌아서려는 선배를 겨우 붙잡았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묻고 싶어서.

“아침저녁으로 애들 밥해 먹이느라 아주 힘들어 죽겠어.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 걱정 말아.” 선배 눈가가 붉어지는 듯했다. 주위가 어두웠지만, 내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선배는 몇 달 전 힘든 일을 겪은 터였다. 아내를 암으로 먼저 보내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내겐 오래 알고 지낸 후배기도 했다. 우리 셋은 저마다 20대 중후반일 때 지역 시민단체에서 청년모임을 하며 만났다. 두 사람이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아 키우는 동안 나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 만나는 일이 뜸했다. 그러다 7년 전 다시 살던 동네로 오면서 이런저런 자리에서 종종 마주쳤다. 특히 후배는 오랜만에 참석하는 지역 모임을 낯설어하는 내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리 와 앉으라고 곁을 내주곤 했다. 후배는 나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했다. 그런 후배에게 늘 고마웠고 한편으론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부럽기도 했다.

3년 전 여름, 후배가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몹시 놀랐지만 그래도 의술이 많이 좋아졌고 아직 마흔 살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이니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 후배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도 열심히 받았다. 그런데 1년 후, 야속하게도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심혜진
ⓒ심혜진

그날 밤, 나는 많이 울었다. 후배의 밝은 웃음이 자꾸 눈앞에 떠올랐다. 아직 어린 후배의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그 웃음을 기억할 수 있길 바랐다. 늦었지만 후배의 삶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후배도 좋아했다. 병실 한쪽에서, 후배가 작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가 아픈 사람이란 것도 잊었다. 그냥 이대로 그의 인생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린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20대 중반에서 멈췄고 마흔에서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헌신적이었던 후배의 삶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사를 전하기 위해 병실에 들르는 이들이 늦은 저녁까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던 후배는 머리를 자르고 온 선배를 보고는 “머리 잘랐네”라고 말했다. 그러곤 환하게 웃었다. 이번 생의 마지막 미소였다.

후배에게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를 어쩌면 좋을까. 장례식장에서 내내 그 생각이었다.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선배에게 그간 안부 한 번 제대로 묻지 못했다. 그런 나를 선배가 먼저 찾아온 거였다. 후배는 여름이면 초당옥수수 한 상자를 구입해 쪄 먹곤 했다고 한다. 후배 없이 맞이하는 첫 여름, 선배는 후배가 했던 것처럼 옥수수를 샀다. 선배가 내게 건넨 옥수수는 후배에 대한 기억, 추억, 사랑, 그리움이었으리라.

“물에 삶지 말고 찜통에 딱 15분만 쪄. 그래야 맛있어.”

선배 말대로 했다. 과즙이 많고 아주 달콤했다. 껍질이 두껍지 않아 좋았다. ‘아주 달다’는 뜻의 ‘초당’이란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다시 옥수수의 계절이 왔다. 달콤하고 아삭거리던 초당옥수수가 생각났다. 옥수수를 먹으면 그리움이 사라질는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 상자 주문했다. 선배처럼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겠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