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건, 언제 생겼지? 17. 맷돌과 믹서
이 물건, 언제 생겼지? 17. 맷돌과 믹서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7.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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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70) 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을 통해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 씨는 내 엄마다.<기자 말>

내게 여름은 콩국물의 계절이다. 어려서 엄마는 여름이면 언제나 콩을 삶아 콩국물을 한 통 가득 만들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콩국물에 뜨거운 밥을 말아 먹었다. 고소하고 달큰한 맛은 국수에 비할 바 아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요즘도 여름마다 봉지에 든 콩국물을 서너 개씩 냉장고에 쟁여둔다. 파는 것은 직접 만든 것에 비해 맛이 한참 떨어진다. 엄마처럼 직접 콩을 삶아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집엔 믹서가 없다. 그러니 콩을 갈 수 없다.

예전 엄마가 쓰던 믹서는 크기는 작은데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무척 요란했다. 게다가 몇 번 돌리면 모터가 금방 뜨거워져 식을 때까지 중간 중간 쉬어줘야 했다. 엄마가 한 번에 콩을 많이 삶아 믹서로 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콩국물을 만드는 날이면 작고 시끄러운 믹서와 씨름하느라 엄마는 땀을 줄줄 흘렸다. 믹서는 엄마에게 애증의 살림도구였다.

믹서가 없을 땐 아마도 맷돌을 썼을 것이다. 나는 만져본 적도 없는 맷돌, 티브이에서나 볼 수 있는 맷돌이 궁금했다. 엄마도 맷돌을 써 봤을까?

“당연하지. 마루 한구석에 맷돌이 있었어. 맷돌을 쓰려면 맷돌을 받치는 굵은 나뭇가지가 있어야해. 산에서 집게 모양으로 된 가지를 베어와. 팔뚝처럼 굵은 거. 그걸 껍질을 벗기고 잘 다듬어 고무다라 같은 넓은 그릇 위에 걸치는 거야. 그리고 그 위에 맷돌을 올려놓는 거지. 맷돌로 콩을 갈면 옆으로 콩물이 줄줄 흐르잖아. 그게 그릇으로 떨어지는 거지.”

오, 맷돌을 사용할 때 나뭇가지가 필요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맷돌은 혼자서는 힘들어서 못 돌려. 생각해봐. 돌을 돌리는 거잖아. 손잡이를 두 사람이 같이 잡고 밀고 당기고 해야 해. 맷돌을 돌리면서 한 사람은 다른 손으로 콩을 맷돌 구멍에 넣어야하거든. 그건 엄마(나의 할머니)가 했지. 나는 맷돌만 돌렸어. 같이 하니까 뭐 많이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

맷돌을 언제 사용했는지 물었다.

“녹두전 부치거나 두부 만들 때 썼지. 메밀 갈아서 묵도 쑤고, 도토리도 갈아서 말려서 쓰고. 주로 명절이나 무슨 큰일 있을 때만 썼어. 집에서 제사도 안 지냈거든. 친척들하고도 멀리 살았고. 두부는 설날에만 만들었는데 그때 꼭 맷돌로 콩을 갈았지. 맷돌은 일 년에 서너번 쓸까 말까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맷돌 없는 집도 꽤 많았어. 가난한 집에선 맷돌을 못 사지. 필요할 때만 빌려 썼지. 우리도 잘사는 건 아니었지만 양껏 못 먹어서 그렇지 굶을 정도는 아니었거든.”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맷돌 가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에 맷돌이 집안 필수 살림살이인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 미숫가루 한 잔에 담긴 고된 노동

맷돌 이미지.
맷돌 이미지.

1934년 8월 12일 <동아일보>에 ‘우리 지방 여름 음식제법’이란 연재 기사가 실렸다.

<우리 지방(평안남도 개천시)에는 여름 삼복거리가 되면 전래의 청량음료 깻국을 거의 집집마다 지어먹습니다. (중략) 그 다음에는 삶은 콩과 볶은 들깨와 섞습니다. 콩의 분량은 깨의 십분의 칠가량 섞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하여서는 물을 넣어서 망(맷돌)에 갑니다.>

평안남도 개천시에 사는 이가 여름 요리로 소개한 음식이다. 콩국물과 비슷하지만 깨가 들어간다. 맷돌은 주로 곡식을 가는 데 쓰였다. 여름철 대표 음료인 미숫가루도 맷돌로 직접 만들었다.

<(미수가루는) 찹쌀을 씻어서 물에 잘 불려가지고, 밥을 잘 찐 후에 그릇에 쏟아놓고 밥알 하나하나를 다헤쳐서 소주를 뿌려 말려가지고, 솥에 넣고 다시 볶는데 한 결 같이 노르스름하게 볶아서 키로 한 번 까분 후에 티를 날리고, 맷돌에 곱게 갈아서 고운 체에 밭아서 비닐봉지나 마른 항아리에 넣고 꼭 봉해서 두고 쓰면 오래갈 수 있다. 허술하게 매두면 습기가 차고 벌레가 생기기 쉽다.>(1959.8.13. 동아일보)

미숫가루에 이리 복잡한 과정과 장시간 노동이 들어가는 줄 처음 알았다. 직접 만든다고 상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정도 정성과 노동이 들어간 미숫가루 한 봉지를 지금으로 치면 얼마의 가치로 평가할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웬만한 노동자 월급으론 무심코 시원하게 한잔 들이켜기 어려운 금액일 수 있다.

맷돌 가는 과정이 지루하고 고돼서인지, ‘맷돌 노래’라는 노동요도 전해진다. 1962년 <경향신문>에 맷돌 노래와 ‘어머니’의 고된 삶을 엮은 기사가 실렸다.

<이렇듯 고생살이 시집 중에 아기를 낳으면 젊음이 화살처럼 순시에 흘러간다. ‘어머니하고 따르는 아해, 그날 살고 또 뒷날 사니, 돌이 아니 돌아오더라. 스물 넘고 서른 넘으니 오던 님도 돌아서라~>(제주 맷돌 노래 중에서)

맷돌의 ‘돌’과 ‘돌이 아니 돌아오더라’는 운율이 랩 가사처럼 들린다. 5월 8일 ‘어머니날’ 실렸던 이 글은 다음 내용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어머니가 특히 고생스러운 것은 전래의 ‘대가족제도’ 때문이라고 보는 사회학자가 많다. 새로운 가정은 차츰 부부중심제의 가족으로 변천해 가고 있다. 그러나 부부생활 속에서도 남편의 독재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가시지 않고 있다. ‘어린이날’과 ‘어머니날’만 있고 ‘아버지날’이 없는 이유는, 나머지 정해지지 않은 날은 전부가 아버지날이기 때문이라는 강변도 나올 만 하다.>(1962.5.8. 경향신문)

‘어머니날’은 ‘아버지날’ 운운하는 여론에 밀려 사라지고 1973년 ‘어버이날’이 제정됐다. 명칭은 바뀌었으나 2019년의 ‘아버지’들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 따사로운 정 VS. 땀국

나는 먹을거리에 쏟는 노동과 흘린 땀을 ‘사랑’이나 ‘어머니다움’으로 미화시키고 낭만적으로 칭송하는 것이 늘 못마땅했다. 한 의대 교수가 1967년 <동아일보>에 쓴 글과 1973년 내방가사 연구가인 ‘조애영 할머니’가 쓴 글을 나란히 옮겨 봤다.

<기계로 빻아서는 구수한 맛이 안 난다면서, 부러 맷돌에 곱게 간 밀가루를 체에 쳐서 즉석에서 만든 칼국수는 정말 내 고향 인심처럼 구수하고 다정했다. 세월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인심은 각박해가지만, 그러나 이때 받은 고향 따사로운 정은 여름 더위에 지칠 때마다 가까이 느껴진다. (중략) 삿부채로 바람을 일구는 것은 선풍기가 대신하고 샘물에서 갓 길어온 얼음 같은 찬물에 발끝을 녹여 미숫가루를 띄워 권하던 멋은 한 숟가락의 주스 가루만큼 인기가 없다.>(1967.8.10. 동아일보)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하던 칼국수는 여자의 땀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밀 타작할 때부터 땀을 흘리며 까불러서 밀을 물에 씻어 멍석에 펴말릴 적에 발을 깨끗이 씻고 맨발로 밟아댄다.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땀이 뚝뚝 떨어지는가 하면 석양에 거둬들여 밤새 밀가루를 만드는 어머니의 머리와 눈썹이 가루에 덮여 (중략) (칼국수는) 맛좋고 볼품도 있으나 주부의 가슴팍에는 겨울철에도 땀이 흐를 정도로 정성과 힘이 든 음식이었다.> (1973.02.19. 경향신문)

누군가에겐 겨울철에도 땀이 흐르는 ‘땀국’이 다른 누군가에겐 따사로운 정을 느끼게 하는 칼국수라니, 안방과 부엌 사이 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던 걸까. 생각하면 안타깝고 한숨이 나온다.

# 믹서, 1980년대까지 고장 잦아

믹서기 이미지.
믹서기 이미지.

1960년대, 드디어 믹서라는 혁신적인 물품이 등장했다.

<요즈음 각 백화점이나 생산공장의 직매소에는 산뜻한 디자인의 믹서가 진열되어 있어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중략) 믹서가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게끔 된 것은 불과 6년 전부터이다. 외국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가져와 일부 특수층 가정에서만 사용되어 왔으나 (중략) 국산 수동 믹서는 판매촉진을 위하여 월부판매까지 하고 있다.>(1967.5.26. 매일경제)

초기엔 주로 과일을 갈아 주스를 만드는 용도로 쓰였다.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아 조심할 것이 많았다. 위 기사를 보면, 재료를 너무 크게 썰거나 물의 양이 너무 많거나 재료에 설탕을 넣어도 잘 돌아가지 않거나 고장이 나기 쉬웠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직 대부분의 가정에서 사용하긴 어려웠다. 비용도 그렇고 서울을 제외하곤 전기 시설도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도 믹서는 생활수준이 높은 가정에서 주스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했다. 1980년대 들어 점차 대중화됐으나 여전히 불량제품이 많았다.

<주방에서 콩, 깨 등 음식물을 가는 데 사용하는 국산 푸드믹서(분쇄기)는 안전성은 좋으나 내구성이 떨어지는 등 품질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중략) 푸드믹서는 정류자전동기를 사용, 회전수가 높아 제품균형이 안 맞거나 부품에 이상이 생기면 소음이 크게 나는데 (중략) 제품 등에서 도중에 용기가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1989.3.10. 경향신문)

낮은 품질의 믹서라도 맷돌을 사용하는 불편보다는 나았다. 1990년대 들어 믹서를 사용해 과일과 채소를 갈면 비타민이 파괴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맷돌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영양소 파괴가 적은 녹즙기가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 맷돌보다 더 많이 쓴 절구통

맷돌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 엄마가 해준 말에 생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맷돌보다 더 많이 쓴 게 절구통이지. 고춧가루 빻아야지 마늘도 쪄야지, 곡식도 쪄야지. 옛날엔 보릿고개가 있었잖아. 보리가 나오기 전에 쌀이 다 떨어진단 말이야. 그러면 아직 덜 여문 보리를 미리 베어서 솥에다 쪄. 쪄서 말리면 딱딱해져. 그거를 물을 조금 붓고 절구에 넣고 찧어. 조금 넣고 찧으면 짓이겨지지만, 많이 넣으면 껍질이 벗겨지거든. 그러면 현미가 돼. 그걸 키로 까불러서 껍질을 날려. 그리고 또 찧어. 그러면 오분도쯤 돼. 그걸 또 까불러. 또 찧어. 그러고도 몇 번을 더 해야 먹을 만한 보리쌀이 되는 거야. 봄에만 하나? 가을에 벼 익기 전에 벼를 베어서 똑같이 하지. 절구질할 때 손이 다 부르터. 물집이 생기다 못해 터진다니까. 다 여자들이 했지, 그럼 누가 해? 그 세월을 어떻게 다 말로 해….”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