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창훈, 인천마당서 '바다를 바라보다' 강연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사단법인 인천사람과문화가 주최한 제66회 ‘인천마당’에 한창훈 소설가가 강사로, 가수 권순우 씨가 노래손님으로 초청받았다.

‘바다와 섬의 작가’로 불리는 한 작가는 1992년 단편소설 ‘닻’으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바닷가 토착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려낸 소설 ‘홍합’으로 1998년 제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다’라는 주제로 한 작가가 들려준 유쾌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난 24일 열린 제66회 '인천마당'에서 한창훈 소설가가 강연을 했다.

 

더 멀리 있는 바다

한 작가는 거문도에서 태어났다. 여수에서 115km나 떨어진 섬이다.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여서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풍경을 그리면 파란색 크레파스만 닳곤 했었다.

섬 청년들의 유일한 돈벌이이자 목표는 배를 타는 것이었다. 3년 정도 원양어선을 타면 일종의 자격증인 선원수첩을 발급받게 된다. 그럼 외국 무역선의 하급 선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페이도 좋았다. 한 작가의 친구들은 외국으로 나가 2년에 한번 돌아왔는데 종종 카메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찍어왔다. 한 작가에겐 그 필름들이 시처럼 다가왔다.

바다 너머에 대한 상상은 작가가 되고나서 더 커져만 갔다. 한 작가 역시 외국 배를 타고 싶어 선원수첩을 만들었지만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포기하게 됐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해상운송 기업인 ‘현대상선’ 인터뷰를 하다가 한 작가의 얘길 꺼냈더니 홍보실 상무가 한번 태워주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동료 작가 세 명을 이끌고 바다에 갔다.

 

배 위의 사람들

한 작가가 처음으로 탔던 배는 ‘갠트리 크레인’이라는 컨테이너선이다. 1500억 원 가량의 화물을 싣고 무게가 몇 만 톤에 이르렀는데 선원은 고작 24명이었다. 그 가운데 이방인 네 명이 불쑥 끼어있으니 처음엔 선장이 텃세를 부리기도 했지만 곧 친해졌다. 유럽에 갔다 온 때에는 선원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했다.

화물선은 제시간에 물건만 배달해주면 임무가 끝난다. 대신 그만큼 지루해서 체질에 안 맞으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젊은 선원들은 애인 문제로 한 작가에게 자주 상담을 요청했다. 망망대해를 사이에 놓고 떨어지니, 애인과 연락이 조금이라도 뜸해지면 금방 불안해한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애석하게도 없다.

같이 간 작가의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인도양에 갔을 때다. 경북 안동에서 온 시인이 바다를 쳐다보면서, “물 많데이. 이게 수구(水球)지 지구가”라더라. 그러더니 “내 이 별이 뭔고 했더니 우주에 떠있는 푸른 물방울이었구나”라는 거다. 한 작가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인데, 역시 세상에 시인이 있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창훈 소설가는 여행 동안 찍은 150여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강연을 진행했다.

 

바다를 바라보다

거문도의 바다와 태평양은 서로 비슷하지만 딱 하나 다르다. 바다 색깔이다. 수심이 깊고 플랑크톤이 많아 쪽빛이 짙다.

아침에 일어나면 선교에 올라가 바다를 구경하는 게 한 작가의 일과였다. 바다의 특징은 맺힌 걸 풀어준다는 거다. 마음에 응어리가 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바다로 향한다. 그런 게 없는 사람들은 바다를 심심해한다. 바다에 가서 어떤 자세로 얼마나 서있는지 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짐작할 수 있다.

인도양에 지는 노을만큼 한 작가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순간은 그믐달이 지던 밤이었다. 선교의 높이가 아파트 8층 정도 되는데, 드러누워 밤하늘을 구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머리가 목성 바로 밑에 닿을 것 같은 묘한 긴장감에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다.

 

인천의 예술가도 바다를 건너길

우리나라는 해양문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바다를 주제로 하는 소설이 잘 없고, 있어도 밀도가 떨어진다. 대신 바닷가에 치중된 작품이 대다수다. ‘바닷가를 걷는다. 생각에 잠긴다. 회롤 사먹는다. 다시 바닷가를 걷는다’ 이런 전개 속에서 주인공이 하루 종일 수평선만 바라보다 끝난다.

그래서 한 작가가 1년 반에 걸쳐 가까운 바다부터 먼 바다까지 두루 돌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인천에도 이런 프로젝트가 생겼으면 좋겠다. 국가나 관련단체에서 인천의 예술가들을 바다 멀리까지 보내 노을 지는 걸 보고 오게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이날 노래손님으로 초청받은 가수 권순우 씨는 '술과 삶'을 주제로 한 노래 '한잔해'와 '하루아침'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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