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

[인천투데이] 풍경 하나. A 교사는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과정 중심 평가와 논술형 평가를 확대하고 객관식 지필 평가 비율과 횟수를 축소하려했다. 그러나 최종 결재에서 학교장이 허락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작년처럼 객관식 지필 평가를 중심으로 평가방법을 결정해야했다.

풍경 둘.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학생생활규정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하라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방침에 맞춰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기 위해 학생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시작하기 전 교장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너희 결정이 학교 이미지와 학교 명예를 만드니 잘하라고 말씀하고 나가셨다. 그 이후 학생생활규정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학교는 민주적일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곳이 학교이니 당연히 그렇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학교는 그리 민주적이지 않다. 학교 구성원 중 다수를 이루는 학생과 교사에게는 의사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관리자, 그중에서도 교장이다. 학교장은 인사, 재정, 장학, 교육과정 운영, 학생 생활, 시설과 환경 등 모든 영역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학교장이 결재해주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실행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학교가 교장 1인 체제는 아니다. 부장교사들로 이뤄진 기획회의라는 것이 있어 그곳에서 학교 운영 전반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그 기획회의도 별 영향력이 없다. 학교장을 중심으로 좌우 소파에 부장들이 일렬로 쭉 앉고 부서별로 사업이나 행사를 보고한 후 몇 마디 얘기하면 끝이다.

학교에는 가장 큰 규모의 교직원회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부장교사들이 나와서 기획회의 결과를 쭉 교직원들에게 전달한 뒤 교감선생님 발언과 교장선생님 당부의 말로 마무리 된다. 이밖에도 학교에는 교과협의회, 학교운영위원회, 인사자문위원회 등 많은 기구가 있으나 모든 것은 학교장으로 수렴된다. 그만큼 학교에서 교장의 권한은 매우 크다.

학생들은 더 심하다. 학생회가 있기는 하지만, 학생회는 축제 같은 행사를 주관할 뿐이지 자신들 생활을 규정하는 규칙 하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이러한 수직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얘기하면, 어떤 학교장들은 ‘나는 선생님들과 소통을 잘한다.’ ‘나는 학생들 얘기를 잘 듣는다.’ 하며 민주적 리더십을 얘기하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

가정에서 외식하려고 할 때, 아버지가 모든 구성원이 무엇을 먹고 싶은지 다 들은 후 최종적으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으로 결정해버리면 그 가족은 민주적이고 그 아버지는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것일까? 민주주의에서 소통은 기본 전제다. 그리고 그 소통은 최종 의사결정까지 이어져야한다. 학교에서 일원화된 의사결정구조가 분산되지 않는다면 소통만으로는 민주적 학교를 만들 수 없다.

요즘 학교 민주주의, 학교 자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것이 설왕설래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만들려면 학교 구성원에게 자율적인 의사결정권을 줘야한다. 다수 목소리가 상호작용하고 그것이 실천과 책임으로 이어질 때 학교는 민주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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