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8) 유럽의 맥주
[연재] 전영우의 맥주를 읽다(8) 유럽의 맥주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6.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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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최초의 맥주 양조 증거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됐지만, 맥주가 가장 발달한 지역은 유럽이다. 영국 ‧ 독일 ‧ 벨기에 ‧ 체코 등 유럽 국가가 맥주 종주국 행세를 하고 있으며, 이 국가들이 현대 맥주 발전에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뜨거운 돌로 발효 ‘슈타인 맥주’

유럽에서 발효 음료 양조 증거는 기원전 4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뜻밖에도 유럽 본토가 아닌 스코틀랜드 유적에서 발견됐다. 에일 맥주 종주국을 영국으로 보는데, 스코틀랜드에서 유럽 최초의 발효 음료 양조 증거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일랜드에는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말굽 모양의 구덩이 수천 개가 산재해있는데, 이 구덩이들은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덩이에 맥아 곡물과 물을 채워놓고 시뻘겋게 달군 돌로 으깨서 당을 분해해 맥주를 만들었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음식을 요리할 때 뜨거운 돌을 사용했는데, 같은 방법으로 맥주를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바이에른의 작은 양조장에서는 고대 방법대로 뜨거운 돌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데 이를 슈타인 맥주(Stein bier)라고 한다. 미국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맥주를 양조하는 양조장이 있다.

날씨 추운 북유럽, 벌꿀로 발효

기후가 온난했던 남부 유럽에 비해 척박한 기후의 북부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발효 음료 만들기가 어려웠다.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인들은 술을 열심히 만들어 마셨다. 북유럽인들은 원활한 발효를 위해 벌꿀을 가미한 맥주를 만들었다. 기원전 1세기 역사학자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고대 켈트족 사람들이 벌꿀을 씻어낸 액으로 만든 맥주를 마셨다고 기록했다. 이 켈트족의 음료는 로마인들에게는 혐오 대상이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북쪽 야만인들이 잔을 사용하지 않고 빨대로 맥주를 빨아먹으면서 덥수룩한 수염으로 맥주를 여과해 마신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은 존재했던 것이다.

다양한 맥주.(사진출처 pixabay)
다양한 맥주.(사진출처 pixabay)

와인 전파, 그래도 북유럽 전통술은 맥주

덴마크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음주에 사용한 매우 호화스럽게 치장된 용기가 있다. 이는 당시 술을 마신다는 것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유럽에서 호화스러운 용기로 술을 마시고 연회를 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지배층이었다. 곧, 맥주는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권력자의 의무이자 특권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듯이, 북유럽에서도 의식이나 연회 말미에 지도자가 술잔을 쳐들고 건배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한국 사회의 회식자리 문화에서도 거의 동일한 풍습을 볼 수 있으니, 맥주와 권위와의 관계는 문화를 초월한 만국 공통의 보편적 문화라 하겠다.

유럽 남부 와인이 차츰 북부로 수출돼 북유럽의 부유한 지배층은 세련된 취향의 상징으로 와인을 마시게 되었지만, 여전히 맥주는 북유럽의 주요한 전통술이었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맥주는 야만적인 술?···‘중요한 음식’

맥주는 유럽, 특히 북유럽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유럽 남부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품질이 개선되면서 와인은 점차 문명화된 생활양식을 상징하는 표상이 됐고 맥주는 야만적인 술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문헌에 보면 맥주를 마시는 북유럽 민족을 야만족으로 묘사하고 폄하하는 표현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곧 야만족이 마시는 맥주는 야만적인 술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와인에 비해 맥주가 폄하되고 북유럽의 지배계급이 점차 와인을 마시게 되었지만, 맥주는 여전히 서민들뿐 아니라 귀족들도 마시는 술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맥주는 중요한 음식이었고 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마뉴 황제는 직접 양조사들을 훈련시켜 맥주를 만들어 마실 정도로 맥주를 삶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수도원의 양조장···‘맥주는 액체 빵’

와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지만, 중세 유럽, 특히 북부와 동부 유럽에서는 여전히 맥주가 가장 일상적인 음료였다.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마시는 음료였다. 전통적으로 와인을 선호한 남부 유럽에서도 하층민들 사이에서는 맥주가 인기 있었고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셨다.

물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당시 깨끗한 물을 얻기가 쉽지 않았고 석회 성분이 많이 포함된 유럽 지역 물의 특성으로 인해 물을 마시는 것보다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위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보다 맥주가 더 위생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석기시대 조상들로부터 경험적으로 전해진 지혜였다.

중세 유럽 맥주 양조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수도원 맥주를 꼽을 수 있다. 수도원에서 양조장을 갖추고 수도승들이 맥주를 만들어 마셨는데, 이는 깨끗한 물이 귀했기에 위생을 위해서 그런 것이었고 아울러 금식 기간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대신 맥주로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맥주는 사실상 액체 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수도원에서는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에게 맥주를 팔아 수도원의 경비를 충당했다. 그런 연유로 중세 유럽에서 맥주 양조 방법이 발달하는 데 있어 수도원의 역할이 매우 컸다. 수도원 맥주의 전통은 지금도 벨기에 트라피스트 비어로 계승돼 생산되고 있다.

※ 전영우는 오랜 동안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직접 재배한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