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포국제시장 정형도 카페 ‘까미노’ 대표
‘나’를 찾아 떠난 길, 욕심 버리고 마음 편해져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인생의 축소판
가고 싶어도 결국 ‘길’이 허락해야 갈 수 있어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카페 까미노 정형도 대표

여행의 시작...‘나’를 찾아 가는 길

인천 중구 신포국제시장 골목에는 ‘카페 까미노’(cafe camino)가 있다. 스페인어 ‘까미노’는 우리말로 ‘길’을 뜻한다. ‘길’ 카페 안으로 들어가면 인상 좋은 주인장 정형도(53) 씨가 밝은 웃음으로 맞이하고 커피를 내준다.

정 씨는 3년 전인 2016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직장생활하면서 지치고 힘들었다면서 기약 없이 그냥 훌쩍 떠나 ‘나’를 찾기로 했단다.

정 씨는 인천에서 경찰공무원을 했다. 그만두기 전까지 인천 중부경찰서 형사계에서 일했다. 수십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직장생활 하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좀 힘들었다. 몸에 밴 것들과 사고방식을 좀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몸이 조금이라도 성하고 더 늦기 전에 다녀오자 생각했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싶었다. 물론 그러한 결정에는 어려움과 두려움도 함께 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나’를 찾고 그저 무거운 마음을 덜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3개월 동안 준비했다. 처음 계획은 돌아올 일정을 정해두지 않고 편도 항공권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016년에는 프랑스 ‘니스 사건’이 있었다. 니스 해변 중심가에서 트럭이 인도로 돌진하고 운전자가 총기를 난사하면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보안이 더욱 엄격해져 유럽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정 씨는 왕복 항공권을 필히 구매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왕복으로 항공권을 구매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표는 버릴 표라고 생각하고 당시 가장 가격이 쌌던 이탈리아 로마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될 수 있으면 오래 머물기를 바랐는데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또 유렵에는 ‘솅겐조약’이 있어서 때 되면 회원국 아닌 나라로 이동해 다시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은 유럽연합(EU) 회원국 간에 일종의 국경 철폐와 같은 약속이다. 회원국이면 비자 없이 180일 간 상호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단, 회원국 이외의 나라 국민은 90일 이상 체류할 수 없다. 그래서 회원국 아닌 나라로 갔다가 다시 기간을 경신해 들어간다.

“이탈리아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베네치아·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를 횡단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고민하다가 독일로 들어갔다. 뮌헨과 슈투트가르트·하이델베르크·프랑크푸르트를 들렸다. 이어서 프랑스에는 초고속 전철인 테제베(TGV)를 타고 가서 목적지인 스페인으로 넘어갔다.”

ⓒ정형도
ⓒ정형도

길이 허락해야 갈 수 있고, 사람마다 시작과 끝이 다른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북쪽 길(Nothern)과 프랑스 길(French Way), 그리고 은의 길(Via de la Plata), 포르투갈 길(Portuguese)이 있다. 보통 프랑스 길을 많이 간다. 코스는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약 800km다. 보통 30~40일 정도가 걸린다.

산티아고에는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Saint James)의 무덤이 있다. 순례길은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떠난 길이고, 그 길을 순례자들이 따라서 야고보의 무덤까지 가는 성지길이다.

야고보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스페인 북서부 대서양이 마주하는 묵시아까지 갔다고 한다. 그래서 산티아고에서 묵시아까지 100km 이상을 더 가는 사람들도 있다. 걸어가면 총 900km 거리다.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묵시아까지 총 36일 정도 걸은 것 같다. 하루 40km 이상 걸은 적도 있다. 총 900km 이상이다. 완주하는 사람들보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중간에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마다 신체조건과 마음가짐이 다르다. 종교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고 관광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정 씨는 유럽에 간 것도 처음이고 배낭 하나 메고 떠난 여행이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신기함도 있었지만 생각과 의지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가는 길을 완주하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이 허락해야 한다. 중간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산티아고에 못가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가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가는 사람도 드물다. 일부만 가는 사람도 있고, 사람마다 시작과 끝이 다른 길을 간다.”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내가 출발한 바로 그곳

정 씨는 순례길을 걸으며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10일 정도 지나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낭에 있던 불필요한 물건들도 버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게 되면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더욱 공감이 커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그냥 들판과 산이다. 쉬고 싶어도 편의시설은 없다. 걷기 시작해서 10일 정도 되면 몸이 축나기 시작한다.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감정은 피폐해진다. 그동안 살아온 삶에서 느낀 고통과 걸으면서 느낀 고통이 같다고 생각했다.”

“함께 가는 사람들도 며칠만 지나면 싸운다.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욕심이 문제다. 내려놓으면 편하다. 여태 왜 무거운 짐을 쓸데없이 지고 살았나 생각했다. 필요한 옷가지와 물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짐들만 지고 가도 충분하다. 왜 욕심을 부리고 비울 줄 모르고 살았을까 후회가 생긴다.”

40일 가까이 걸어서 도착한 묵시아. 걸어가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많은 번뇌에 시달리기도 하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화가 났던 일도 생각났다. 그는 나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막상 길 끝에 가니까 ‘이제 어딜 가야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내가 출발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다시 시작이다.”

버킷리스트, ‘70세에도 다시 도전’

정 씨는 3년 전에 다녀오고 지난해에도 두 번째로 다녀왔다. 그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람마다 시작과 끝이 다르고 인생도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그의 삶에도 변화가 왔다.

“처음 다녀온 후 오히려 한국 생활에 적응이 안됐다.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달이 해외를 들락날락했다. 그 사이 아내가 직장을 갑자기 잃었다. 고민 끝에 함께 운영하려고 신포국제시장에 카페를 열었다. 그런데 아내가 직장을 다시 구하게 되어 카페는 혼자 운영하고 있다. 길을 걸어갈 때처럼 삶의 변수도 다양하다.”

정 씨는 신포동 카페에 산티아고에 다녀온 사진들을 전시해 놨다. 그리고 손님들이 궁금해 하기도 하고 어느 날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문의가 오고, 상담도 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그룹으로 하고 같이 갈 준비도 하고 있다. 또 인천문화재단에서 중년 이상을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걸어왔던 길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해 두 번째 갔다. 이번에는 길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에 서쪽으로 해가 지고, 생장부터 묵시아까지 동에서 서로 이어진 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함께 걷다가 혼자 가기도 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

“또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의 이치대로 살면 족하고 우리 인간들은 너무 문명과 의학에 기대고 있지 않나. 사람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질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남들과 비교해서 그런 것이고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산티아고에 가면 무슨 준비를 해야 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꿈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였다. 그는 배낭과 신발, 2~3벌의 옷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욕심 부리고 많이 집어넣는 순간 스스로 고난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많이 가져갈 필요 없다. 어차피 버리게 된다. 버리지 않으면 갈 수 없다. 배낭과 신발은 내 몸에 맞는 것이 좋은 것이다. 비싼 고급 브랜드나 기능성 의류 등 모두 내 몸에 맞아야 한다. 또 화장하는 사람도 있고 헤어드라이어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다. 나중에는 안한다. 결국 버리게 된다. 어차피 더러워지고 냄새나고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다. 결국 사람은 다 같은 모습이다.”

정 씨는 인생은 여행이고 가던 길이 다른 길로 이어지고 열리고를 반복한다고 했다. 모두 ‘나’라는 사람이 겪는 한 과정이고, 일정을 못 맞출 수도 있는데 우리들은 너무 아득바득 살고 있다고 하면서 버킷리스트를 밝혔다.

“나는 70에도 산티아고에 갈 예정이다. 물론 그 전에도 가겠지만, 스스로 약속했다. 그 곳 숙소 방명록에도 적어 놨다. 다시 오겠다고. 그 때가 되도 같은 길을 갈 예정이다. 허락이 되는 한.”

“같이 가고 싶은 분들이 있으면 최대한 조언도 하고 함께 가기 위해 기회도 주고 싶다. 꿈을 꾸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행동으로 변하고 행동을 하면 바로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되고 몸이 늙었다고 꿈마저 꿀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꿈을 갖자.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신포국제시장 카페 ‘까미노’ : 인천 중구 제물량로166번길 14-1

▲온라인 네이버 카페 ‘까미노의 친구들 연합’ : https://cafe.naver.com/camino2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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