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른들이 제공하는 ‘한 끼’와 ‘쉼터’
매주 목요일 저녁 운영···이용료 1000원
연수구 선학성당 맞은편 평화도서관서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월북 시인 백석의 동화시가 있다. 가난한 개구리가 형에게 쌀 한 말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다. 벌 건너로 가는 동안 개구리는 어려움에 빠진 소시랑게ㆍ방아깨비ㆍ쇠똥구리ㆍ하늘소ㆍ개똥벌레를 돕는다. 날이 저물고 벼 한 말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개구리에게 반대로 어려운 상황이 닥치고, 이번에는 이들이 나타나 개구리를 도와준다. 서로 도와 고난을 이긴 개구리와 친구들은 뜰에 둘러앉아 한솥밥을 해먹는다.

‘밥’은 사람들의 일상에 익숙히 스며든 만큼 관계를 표현하는 제재로 흔히 사용된다. 갓 지어진 밥에는 김뿐만이 아니라 온정도 피어오른다. 이처럼 식당을 ‘밥 먹는 장소’를 넘어 ‘마을 사랑방’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연수구 선학성당 맞은편 평화도서관의 ‘개구리네 한솥밥’이다.

시 제목을 따와 이름을 지은 이 식당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어린이식당이다. ‘공동체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고 밥을 지어 먹자’는 취지로 지난 5월 23일 문을 열었다. 연수평화복지연대와 인천여성회 연수구지회가 주관하고 인천도시공사가 후원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장수진 대표는 “공동체 문화에서 ‘밥’이라는 주제가 커다란 의미를 차지한다”며 “사람들은 매일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친해진다. 그렇게 ‘개구리네 한솥밥’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식당 운영시간은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고 이용료는 1회 1000원이다. 장 대표는 “처음엔 저소득층ㆍ다문화ㆍ한부모 가정 등을 대상으로 운영하려했지만, 복지 혜택이 보편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방침을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메뉴는 장 대표와 주관단체 회원들이 그때그때 정한다. 카레와 불고기에 이어 지난주엔 닭곰탕을 해먹었다. 선학동 상가번영회에서 깍두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영업 첫 날에 다섯 가족이 밥을 먹으러왔다. 둘째 주부터는 소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단골손님도 생겼다.

5월 30일 ‘개구리네 한솥밥’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사진제공 ? 장수진 대표)

초등학교 6학년인 박연제 군은 오후 5시만 되면 제일 먼저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이다. 박 군은 “그 전까지는 집에서만 저녁을 먹었는데, 친구들과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다”라며 “앞으로 양념갈비 등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린이식당이지만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어 부모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 선학초등학교 사회복지사가 이 식당을 방문한 후 홍보용 가정통신문을 돌렸다. 식사시간에 앞서 먼저 들러 반찬 만드는 걸 돕는 학부모가 있는가하면, 소식을 듣고 찾아온 몽골 이주민 가족이 고즈넉한 저녁시간을 보내다가기도 한다.

연수구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청소년들도 이 식당을 찾는 식구다. 장 대표는 “맞벌이 부부 자녀나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학생은 밖에서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있다”라며 “특히 청소년이 많이 찾아와 마음 편하게 쉬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평화도서관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사진제공 ? 장수진 대표)

식당 운영을 돕는 조이슬 인천여성회 회원은 “독서모임이나 축제처럼 공동체를 꾸리는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일시적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쉬웠다”라며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가족뿐만 아니라 혼자 사는 사람도 언제든지 환영한다”라며 “백석의 시처럼 다 같이 들어앉는 식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목표를 묻자, “‘오늘 30인분 다 팔렸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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