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빨래는 변색되고 샤워 필터기는 하루면 엉망
주민들 불안에 돌아오는 답변은 '수질 적합'
제일 힘 든 건 "기약없는 기다림"

[인천투데이 정양지 기자]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면 전날 욕조에 미리 받아놓은 물이 있다. 샤워기 필터가 녹물을 걸렀겠지만 안심할 수 없다. 행여나 있을 불순물이 밤새 가라앉았길 기다렸다. 세숫대야로 조심스럽게 물을 퍼 샤워를 한다. 마시는 물부터 설거지 헹굼까지 입과 관련된 물은 생수로 해결한다.

인천 서구 주민들이 수도에서 붉은 물이 나오는 피해를 호소하며 서구청 홈페이지와 지역 커뮤니티카페에 올린 사진들. 물티슈가 붉게 적셔졌고, 붉은 알갱이들이 붙어 있다.

서구 당하동 주민 김○진(46)씨의 일과다. 김 씨가 거주하는 A아파트에 붉은 수돗물 피해 소식이 들어온 건 지난 5월 30일이었다. “옆 동네 B아파트 수도에서 녹물이 나온다는데, 우리는 괜찮은 건가요?” 이때까지만 해도 A아파트는 안전했다. 다행히 오전에 들어온 물의 양이 남아있어서 예방 차원에서 저수조를 잠갔다.

인천상수도사업본부는 이틀이면 끝날 문제처럼 말을 했단다. 저수조에 담긴 물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일정 수위를 유지하지 않으면 모터 고장으로 단수될 위험이 있기에 새로 수돗물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31일 새벽 3시경 입수를 시작했다. 날이 밝자 A아파트 관리사무소엔 항의 민원이 빗발쳤다.

김 씨가 사는 아파트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전화가 한창 왔을 때, 한 시간에 50통을 넘었던 적도 있다. 요새는 한 시간에 10통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수질검사를 세 번이나 신청했는데 결과는 모두 ‘적합’하다고 나왔다. 하지만 녹물은 계속 나왔고, 이미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세탁기를 돌리면 흰 빨래가 변색돼 나오고 새로 구입한 샤워기 필터는 하루만에 갈색으로 변했다. 정수기도 신뢰할 수 없었다. 인천시가 미추홀참물과 케이워터를 지원했지만 턱없이 부족해 1000세대가 넘는 A아파트에 주민들이 꾸준히, 원활하게 공급받지는 못했다.

김씨 집안에 설치 돼 있는 정수기가 붉은 수돗물에서 나온 이물질이 쌓여있다.

집도 엉망이 됐지만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김 씨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선 대체급식으로 빵과 주스가 나왔다. 한 끼 제대로 요리하기도 힘든 집에서 매번 도시락을 싸갈 수도 없고, 서구의 학생 인구를 감당할만한 도시락업체는 점심시간을 맞출 수 없는 먼 지역에 있었다. 영유아를 키우는 집은 사정이 더 나빴다. 젖병을 소독하거나 목욕을 시키려면 온수가 필요했는데, 보일러가 손상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주민들이 제일 답답한 건,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김 씨는 “지원이나 보상은 중요치 않다. 언제까지,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싶다”며 “진정성이 주민의 신뢰를 좌우한다. 무책임할수록 수렁에 빠진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A아파트에는 반상회가 열렸다. 관리사무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는 사건의 배경과 그동안의 대응,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설명했다. 주민들이 입은 피해와 불편사항을 듣고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은 다 같이 고민하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해결책이 될순 없었다. 주민들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시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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