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동 특고압 문제,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 열려
“인천시가 의지 있다면 도로점용 허가 취소할 수 있어”

[인천투데이 김현철 기자] 인천 부평구 삼산동 특고압 설치 반대 주민대책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해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전예방원칙은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환경파괴 등 인체에 위해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을 때 사전 조치를 취한다는 원칙이다.

부평구 삼산동 특고압 설치 반대 주민대책위원회가 12일 개최한 ‘삼산동 특고압 문제, 그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 장면.

주민대책위는 12일 오전 삼산2동 주민센터에서 ‘삼산동 특고압 문제, 그 해결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김윤신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석좌교수는 정부 부처 간 전자파정책협의회 구성 등, 정부 차원의 전자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삼산동 A아파트단지 땅 속으로 고압(15만4000볼트) 송전선이 지나가고 있다. 주민들이 이 고압송전선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이 고압송전선로에 특고압(34만5000볼트) 송전선을 추가 매설하겠다고 밝혀 일부 주민이 반대하는 과정에서 이미 고압 송전선이 매설돼있다는 것을 알았다.

A아파트에 거주하는 여중생 B양이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은 게 지난 4월 알려져 주민들의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악성 림프종은 전자파와 관련 있는 암으로 학계에서 보고된 바 있다.

“삼산동 전자파 심각한 수준”···“정부가 전자파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이재원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은 발제에서 “지난해 12월 지중(地中) 송전선이 있는 삼산동 일대 전자파를 측정했는데 아파트 실내에서 전자파가 최고 15.7밀리가우스(mG)로 측정됐다”라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통상 전자파 2~4mG면 어린이 백혈병 유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실외에서는 최고 37.2mG가 측정되는 등, 심각한 수치다”라고 덧붙였다.

김윤식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석좌교수.

이어서 발제에 나선 김윤식 건국대 환경공학과 석좌교수는 “특고압선 등에서 발생하는 극저주파(50~60Hz)는 어린이 백혈병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라며 “가정용 전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단기간 노출돼도 심장 박동 변화, 불면증 등이 발생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정부 부처(환경부ㆍ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간 전자파정책협의회를 구성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한다”라며 “사전예방원칙에 의거해 규제 기준을 정해야한다”라고 주장했다.

“인천시가 의지만 있으면 도로점용허가 취소할 수 있어”

이어진 토론은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토론자로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 김종호 변호사,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이은옥 주민대책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김원 실장은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60Hz 이하 전자파인 극저주파는 발암그룹 2B로 규정해 관리하고 있다”라며 “극저주파는 소아 백혈병, 일부 직업군 백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발암 물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인공 심장 박동기 등 인공 장기를 착용한 사람에게 극저주파는 기기 오작동을 유발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일단 전자파 강도가 줄어들 수 있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며 “주중선이든 송전선이든 현재의 위치에 추가 증설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김종호 변호사.

김종호 변호사는 “‘도시ㆍ군계획시설의 결정ㆍ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송전선로는 ‘도시 외곽 공지에 설치할 것’과 ‘저밀도 지역에 설치하되, 인근 토지이용 현황을 고려할 것’ 등을 고려해 설치하게 돼있다”라며 “현재 삼산동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주거지역이 많아 34만5000V를 추가 매설하는 것은 관련 법령상 근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1999년 첫 매설 당시 삼산동은 저밀도지역이라 해당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또, “‘도로법’에서는 도로 점용 기간을 10년 이내로 하는데, 해당 도로 점용은 무기한으로 계약했다”라며 “도로 점용 기간을 두는 이유는 해당 부지 사용처와 환경이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계약 당시 환경을 다시 확인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다른 시ㆍ도에서 주민 설명ㆍ의견수렴 부재 등으로 송전선로 건설 점용 허가를 취소한 사례가 있다”라며 “인천시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여러 사유를 들어 도로 점용 허가 등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15만4000V와 34만5000V 함께 사용하는 곳 국내 어디에도 없다”

이은옥 주민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이 36차 촛불집회를 하며 요구한 것은 지중 송전선로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을 옮기든가, 깊이 매설해 달라는 것이다”라며 “이는 혐오시설이니 무조건 반대하는 님비(NIMBY)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한전에서 지중 송전선 15만 4000V를 평균 8m 깊이에 매설했다고 했지만, 실제 확인해보니 1m도 안 되게 매설한 곳도 있다”라며 “34만 5000V를 매설하는 다른(=삼산동 지역 이외) 구간은 지하 76m, 36m, 56m 깊이로 팠다. 이를 한전에 문의하니, ‘지하시설물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답변했다”라고 말했다.

또, “국내 어디에도 15만4000V와 34만5000V를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라며 “34만5000V 특고압선이 매설된다면 한전은 삼산동 주민들을 실험도구로 이용하는 꼴이다”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한전 입장에선 삼산동 주민들이 지하시설물보다 못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라고 한 뒤 “고압선로 주변에 거주하는 여중생이 악성 림프종으로 투병하고 있는 사실을 한전도 알면서 지하시설물 운운하는 것은 주민 목숨보다 돈을 더 우선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서 “전자파를 측정한 때는 12월이었고 전기 사용량이 많지 않은 달인다.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철엔 송전로로 더 많은 전기를 흘려보내야해 더 많은 전자파가 발생할 것이다”라며 “한전이 차폐막을 설치해 전자파 70%를 저감한다고 해도 여름철엔 주민들이 원하는 수치까지 저감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겨울철보다 여름철에 지중 송전로로 흘려보내는 전기량이 약 1.5배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계산하면 실내에서 최고 약 23mG가 측정될 수 있으며, 70% 저감한다고 해도 6~7mG로 여전히 높은 수치를 보일 것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주장이다.

이 위원장은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게 자녀를 키우고 싶어 1층을 선택한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고 있다”라며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여지가 있다면 효율과 비용만 따지지 말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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